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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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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랴!

[전태일통신 48] '수탈과 동화'로부터 '기여와 상생'으로

"일~어~나! 일~어~나! ···"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의 물감을 가득 담은 종이컵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스치로폼 2장 위에서 두 팔은 마비되고 두 발로 몸뚱아리 겨우 지탱할 만한 지체부자유자가 일어서려고 안간 힘을 쓴다. 일어서려다 고꾸라지고, 또 일어나려다 넘어지기를 무수히 반복하면서 온 몸에 총천연색의 물감이 뒤범벅이 된 채 마침내 기운이 다해 아주 길게 뻗어버린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숨죽인 듯 응시하고 있던 수 십 개의 입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일어나'라며 일제히 합창을 시작하고, 그 소리가 비명에 가까워질 즈음 겨우 그 기운을 받아 굳었던 발을 꼬물거리며 다시 인기척을 보인다. 이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어나서 자세를 가다듬고 입으로 붓을 물고 물감을 찍어 50호 캔버스에 선을 그려 나간다. 부리, 얼굴, 등, 날개, 꼬리가 이어져 새가 살아난다. 다시 발가락 사이에 낀 붓을 따라 산이, 집이 새롭게 창조된다. 작품 중앙을 가로지르는 '나는 할 수 있다'는 마무리 붓질에 이르러 관중들은 졸이던 가슴을 펴고 긴 숨을 내쉬며 일제히 환호한다.

지난 9월 8~9일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소수자와 함께 하는 작은 축제'란 부제가 붙은 <더불어 사는 사회문화제 2006>에서 펼쳐진 <목숨을 걸고 그리는···> 특별 퍼포먼스 장면이다. 청각장애인 방두영 화백이 구족화가의 작업 광경을 연출한 것이다.
▲ <목숨을 걸고 그리는···> 퍼포먼스. ⓒ프레시안

21세기가 문화의 세기가 되리라던 낙관적 전망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초국적 자본의 세계지배가 전일화되어가면서 말 그대로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하여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라크 전쟁, 동북공정, 독도문제, FTA 등 국제적 이슈를 비롯하여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문제, 포항 건설노동자 파업, 바다이야기 파문 등 국내 문제에 이르기까지 응당 지난 20세기의 유물로 사라졌어야 할 수탈, 동화, 전쟁의 논리가 판치고 있고 기여, 상생, 평화의 새로운 메시지는 여전히 수면 아래서 잠자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한국전쟁의 최전선 접경지이자 지난 30년 눈부신 압축성장의 주변부인 경기북부 지역에서 갈수록 목소리가 높아가는 패권주의에 잔잔하게 말걸기를 시작한 '더불어 사는 문화' 축제가 해를 거듭하면서 그 터를 넓혀가고 있는 것은 우리 삶의 기쁨을 넘어 차라리 희망으로 다가온다.
▲ 소수자 공예품 판매(좌), <가난한 마음의 집> 핸드벨 공연(우). ⓒ프레시안

관계로부터 분리된 자가 소수자일진대 패권주의 앞에서 소수자 아닌 자 누구인가! 패권으로부터 소외된 대중 각자는 말할 것도 없고, 패권을 쥔 자도 대중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니그들 또한 소수자가 아닌가?

장애인, 이주노동자, 노숙인, 성매매여성, 불우아동 등이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분리되어 무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소수자이지만, 더불어 사는 문화의 대상으로 관계 맺기 시작했을 때 역설적으로 그들은 소수자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대중을 '무지랭이'로 멸시하며 자기보다 잘 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로 대중과 분리되는 '잘난이'의 막다른 골목이 소수자의 고독이 아니고 무엇인가? 내년 축제 때는 이들 '잘난 소수자'에게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코너도 만들고 참여도 적극적으로 권유해야 하지 않을까? "세 사람이 함께 갈 때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던 공자 말씀에 가슴 더워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은 나보다 나은 교사로서, 또 한 사람은 나보다 못한 반면교사로서 관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낮 12시의 행사에 제대로 닿기 위해 점심도 거르고 용인에서 의정부까지 달려간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태국 볶음밥 카우톰팟, 중국 만두, 몽골 만두, 필리핀 잡채 반싯, 베트남 보쌈 반짱과 싫지 않은 이국 여인의 손님 끄는 소리에 9월의 가을 하늘은 더욱 높아가고 있었다.
▲ 이주여성 먹거리 솜씨자랑(베트남 반짱)(좌), 이주여성 먹거리 솜씨자랑(몽골만두)(우).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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