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가인 이정철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17일 세교연구소(이사장 최원식 인하대 교수)가 주최한 토론회 발표문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위협을 축소하는 것은 오히려 군사적 모험주의를 조장하는 것일 수 있고, 그 결과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의 연관성에 주목
이정철 교수가 북한의 핵능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근거는 10월 9일의 핵실험과 그에 두 달 앞서 있었던 미사일 시험발사의 연관성.
이 교수는 미사일 시험발사가 미국의 대북 선제(예방)공격에 대해 북한이 보복능력을 보여준 '지휘소 훈련'이었다는 미 정보당국의 평가에 대한 일부 보도를 주목했다.
지휘소 훈련이란 국가의 전쟁지휘 능력과 전쟁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고 전쟁 발발 시 작전 단계별 수행절차를 실시하는 가상훈련으로 한미연합군의 경우 을지포커스렌즈훈련이 대표적이다.
미 정보당국의 평가에 관한 보도들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미국의 핵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지휘·통제시스템 시험을 한 것으로, 이 시험이 성공적이었으며 북한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2단계 발사 장거리미사일 능력을 갖췄다고 재평가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의 <인사이트 온 더 뉴스>는 지난 8월 30일 "북한은 산악지대에 미사일을 배치해놓은 뒤 대체로 핵 공격의 피해를 입지 않을 벙커에서 통제한 것"이라며 "북한은 이 훈련에 기초해 미국이 공격하더라도 핵미사일의 절반가량을 보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미국이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교수는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의도적으로 미사일훈련을 과시한 후 핵실험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 순서가 바뀔 경우 북한의 보복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이 예방 공격론에 따라 압박과 군사 위협을 고조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먼저 지휘소 훈련을 통해 보복능력을 과시한 후 실행된 핵실험은 북한의 억지력을 최고도로 과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평가는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과 미사일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개시할 때 북한이 이를 뚫고 보복할 수 있는 이른바 '2격 능력'이 있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을 공격할 수 없었던 군사적인 이유로도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북한 핵실험 후 예상됐던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의 동해상 무력시위가 실제로는 없었다는 사실이 미 정보당국의 이같은 판단에 따른 게 아니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 교수는 특히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북핵 정책은 '레드라인을 설정하지 않는 정책(No Red Line Policy)'이자 '위협을 무시하는 정책(hawkish neglect)'이라며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 현실 자체가 위기"라고 지적했다.
"4자 핵군축 회담 - 2자 군축회담으로 나아갈 것"
한편 이 교수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대해 "미국 측의 태도 변화가 전제됐던 것이 분명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거기에 북한이 중국과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세워준 측면도 공존"한다고 분석했다.
6자회담 복귀 후 북한의 협상 전략과 관련해 이 교수는 북한이 '4+2 회담의 틀'을 주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는 핵보유국인 중국, 미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마주할 핵군축회담이고, '2'는 남북간의 대화를 통한 군축협상을 뜻한다.
실제로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8일 "현시기 지역에 형성된 국제관계의 구도는 '4 대 2'이다"라며 "동북아시아의 리해당사자들 가운데 조,미,중,로의 4개국이 핵보유국이라는 것이야말로 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6자회담은 핵군축회담으로서의 4자회담으로 변용하고 , 그리고 남북 간에는 독자적인 군축회담 틀을 동시에 운용해 동북아 상황을 북한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전망에 따라 일부에서는 우리 정부도 남북간 대화를 위해 대북 특사를 파견하고 남북대화가 진전될 경우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뤄지는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관측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북한의 의도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알 수 없으나 국제사회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만은 사실"이라며 "북한 핵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인가, 북한 핵을 폐기하는 것을 실제 목표로 할 것인가라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북한 핵 보유는 양과 질에서 증대할 것이고 그 폐기라는 목표는 수사로만 남을 것"이라며 "협상이 장기화되고 고착 상태가 장기화된다면, 차라리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단기간에 북핵을 폐기시킬 방법도 마땅치 않고 그 방도가 있다고 해도 실현할 힘이 분명치 않다는 현실적인 진단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상황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이 선택할 입장에 대해 그는 "차라리 4자회담 체제가 북핵관리 체제로 기능하게 두고, 한국은 남북간 직접 채널을 통해 군축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한국의 경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는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물론 북한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한미동맹의 틀을 깨는 것이 아니라면 한국에게 유리한 길이 북한에게 유리하다고 해서 배척하는 제로섬의 시대는 지났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 시대에 '시체'가 된 비핵화보다는 '핵 군축'이 더욱 실제적인 요구가 될 것임은 물론"이라며 "그것이 차선의 선택이지만 전쟁이라는 최악의 길을 피하는 것이라면 이를 배척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할 이유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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