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고구려사와 발해사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중국은 백두산에 대한 세계자연유산등재 신청을 준비중이고, 발해유적 역시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킨다는 계획 아래 유적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일과 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4개국 학자들이 참여한 발해사 관련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발해가 중국의 역사임을 주장하는 중국학계에 맞서 발해는 분명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임을 주장하는 자리였다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국내 발해학 박사 1호인 경성대학교 사학과 한규철 교수를 초대해서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어떤 내용으로 진행됐는지, 발해사가 우리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의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국제사회에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경성대학교 사학과 한규철 교숩니다.
한규철 교수는 1951년 목포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고대사학회 회장,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책위원회 대표, 러시아 사회과학원 극동역사고고연구소 초빙교수, 중국 사회과학원 흑룡강성 역사연구소 초빙교수, 일본 국학원대 대학원 교수 등을 지냈고 현재 고구려연구회 회장과 경성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지난주 이틀동안 동아시아와 발해라는 주제로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4개국이 참여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잘 치르셨습니까?
한규철 :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박인규 : 동아시아와 발해... 발해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많이 않았던 것 같은데 이런 학술대회를 서울에서 열어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한규철 : 발해 건국 1300주년인 1998년에 고구려연구회가 국제학술대회를 발해사를 주제로 한 번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93년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했던 적이 있는데 최근에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고구려와 발해 문제가 상당히 이슈화 돼 있어서 작년에 계획해서 올해는 잊혀졌던 발해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또 여러 학자들과 의견을 나눠보자는 뜻에서 동아시아와 발해라는 주제로 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최근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롯해서 이른바 역사전쟁이라고 할 만큼 역사에 과한 논쟁이 많은데, 우선 저는 어쨌든 그래도 중국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데 많이 오셨습니까?
한규철 : 저희들이 중국학자 세 분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분위기가 한중간에 안 좋은 게 있어서 한 분은 논문만 보내고 한 분은 왔습니다. 끝까지 같은 의견을 갖고 있고. 또 한 분은 최근에 학술대회가 끝나고 오셨어요. 학술대회 동안 안 온 이유는 안 온 분과 똑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학술대회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특히 발해사를 어떻게 봐야 되는지. 한국과 중국이 물론 가장 대립되고 있지만 일본과 러시아 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번 학술대회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한규철 : 올해는 최근에 우리의 연구성과를 한 번 다뤄본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러시아와 중국에서 어떤 발굴이 있었는가. 발해사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을 고고학에서는 어떻게 메워오고 있는가를 알고자 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기도 했는데, 중국의 학자들이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정권과 관련돼 있고, 발해는 고구려 유민의 계승국가가 아닌 말갈을 계승한 고구려와 다른 말갈국가라는 것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국학자들은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다. 그런 것을 문화적인 측면과 종족적인 측면, 여러 가지 고고학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게 입증할 수 있다는 쪽으로 모아졌고. 러시아와 일본 학자들은 발해가 228년간 있었는데 발해는 동아시아의 한 왕조로 국제적인 성격이 강했다. 단순히 당나라와의 관계만을 가졌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일본이나 돌궐등 중앙아시아와도 관계를 가졌던 왕조가 발해였고. 발해의 국제성을 부각하는데, 동아시아와 발해라는 주제에 충실했던 발표가 주였습니다.
박인규 :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라고 주장한 반면에 중국에서는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학술대회에서 그 입장이 달라지진 않았군요.
한규철 : 학술대회에서 보다 첨예화 됐다고 할까요. 요즘의 그런 분위기가 더욱 더 잘 반영돼서 나타났다. 그래서 오지 않으면서 논문을 주신 분도 최근에 이른바 2차 동북공정이라고 올해 문제가 됐던 발해국사라는 글을 썼던 분께서 발해는 처음부터 국호를 말갈이라고 했다. 그리고 원래 사료에는 말갈이 아니라 스스로 진국이라고 했다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학계에서도 진국에서 어느 땐가 이름을 바꿔서 발해라고 했다.. 그랬는데, 처음부터 말갈이라고 하다가 발해라고 고친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고친 게 아니라 당나라에서 국호를 내린 것이다. 이런 것을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비문이나 비문의 말갈사라든지 말갈국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으로 봐서 발해는 말갈을 계승한 왕조라고 주장했습니다.
박인규 :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냐 아니냐를 놓고 한중학계의 의견이 다르고. 사실은 근본적으로 고구려가 중국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나 아니냐. 동북공정의 주요한 내용이 그거 아닙니까. 그 부분도 물론 아직 의견이 통일된 건 아니죠?
한규철 : 동북공정이 나왔을 때 발해사의 입장에서는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고 말갈을 계승한 왕조라고 계속 얘길 해왔죠. 그러다가 2002년에 이른바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동북공정이 실시됐는데요. 지금까지 고구려사에 대해서는 평양지역의 수도 고구려는 조선사의 입장으로 이중적으로 봐 왔던 것을 2002년 고구려 고분벽화를 등재하는 관계에서 전적으로 평양수도도 당나라의 지방장권이다. 해서 고구려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국민들이 굉장히 분노했죠. 동북공정 하면 고구려사가 초점이 돼서 많은 국내인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우리는 분명히 삼국사기라는 고구려 본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도 거기에 대해서 한계를 좀 갖고 있었죠. 본기라는 것은 중국의 사기에 정사라는 사기의 본기가 있습니다. 황제들의 역사를 쓴 것이죠. 고구려 본기는 삼국사기밖에 없고 삼국사기는 한국인들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으로 다 인정하고 있죠. 그래서 그들의 외교부 홈페이지에도 한국 역사를 소개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얘기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동북공정에서 지워 버렸어요. 여기서부터 문제가 됐던 거죠. 그런데 발해사는 그 이전부터 홈페이지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해사에 대한 부분은 한편으로는 동북공정을 통해서 새롭게 부각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북공정이 고맙기도 하다는 얘기도 할 수 있죠.
박인규 : 오히려 발해사 문제를 제기하게 됐는데, 발해사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어떤 게 있을까요?
한규철 : 발해사 부분은 일단 기록의 문제와 우리들의 기억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발해의 후손이라고 하는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데요, 기록에서는 중국 측 기록에도 발해의 대조영을 고구려 별종이라고 얘기하고. 그리고 풍속이 발해는 고구려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풍속이 같다는 건 다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기록이죠. 이게 한국 삼국사기에 나온 기록이 아니라 중국 측 기록에 그렇게 나와 있다는 거죠. 발해가 말갈을 계승한 왕조라면 풍속이 말갈하고 같다고 했어야 되죠. 그런 얘기가 없고. 또 세계에서 아파트에 온돌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지 않습니까. 문화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것은 무덤이나 주거문화입니다. 우리의 가장 변하지 않는 문화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게 매장문화와 집짓는 풍습인데 고구려인들이 사용하던 온돌을 발해에서도 사용했어요. 이게 발해 수도의 왕들이 자던 곳에서 많이 나옵니다. 이걸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태씨(氏)들이 발해의 왕손을 자처하고 있다든지. 이런 걸로 봐서도 우리는 발해의 후손 내지는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있다..
박인규 : 고구려는 영토가 한반도 북쪽까지 돼 있고 반면에 발해 같은 경우는 만주. 지금 한반도에는 없단 말이죠. 지금의 영토를 놓고 보면 발해사가 중국사니 한국사니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이상하기도 하죠. 러시아나 일본에서는 발해를 국제사의 일부로 봐야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타당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 국내 일부 학자들 중에서는 만주는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니고 요동사, 만주사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싸움을 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한교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규철 : 동아시아사 입장에서 역사를 조명하는 일 중요하죠. 또 고구려는 고구려사고 발해는 발해사입니다. 이걸 우리 역사냐 중국사냐 얘기하는 것이 고구려인이나 발해인이 지금 나온다면 우습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는 보편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고구려와 발해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복원하는 게 가장 학문적으로 첫 번째 목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기억이라는 게 있고 누구의 후손이라든지 이런 의식이 강합니다. 그런 의식을 회상하는 것도 역사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고구려와 발해인들은 과연 어떤 문화를 갖고 있었느냐 이런 얘기를 할 때. 또 그들이 남긴 기록 등을 통해서 그들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중 가장 누구와 가까운...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혈통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인가 하는 부분을 안 따질 수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고구려 역사는 700년 넘게 이어진 왕조입니다. 최근에 국사해체론이라든지 동아시아담론 해서 고구려와 발해사 부분을 지나치게 한국사적 입장에서 보려고 하는 게 아니냐 하는 비판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서양의 근대민족주의나 근대민족의 형성과정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죠. 영국은 지금도 브리튼섬에 어떤 민족이 형성돼 가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차이가 많고 언어도 그렇고. 그런데 700년 왕조의 고구려는 초기 단계에서는 이질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고구려가 700년 됐을 때는 상당히 동질적인 부분. 고대로 올라갈수록 문화가 이질적이었다는 선입관을 버려야 됩니다. 언어도 고대로 올라갈수록 언어권이 넓었습니다. 이런 걸로 봤을 때 고구려가 30년만에 멸망했는데 그 고구려의 영역을 그대로 발해가 이어받았고 오히려 고구려보다 1.5배 정도 넓어졌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넓어진 부분에 대한 이질성은 있겠죠. 흡수말갈이다 흡수인들이다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30년 만에 세워진 발해가 고구려인들이 바로 된 것이지 갑자기 어떻게 이민족인 말갈족이 번식했다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역사의 계기성.
박인규 : 고구려의 상당부분이나 발해가 지금 우리 영토는 아니지만 문화나 혈통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가 이어받았다는 의미에서는 한국사의 일부로 봐야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되는데요,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서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사의 일부다. 또 한국에서는 문화나 정신적으로 한국사의 일부가 돼야 되는 거라고 맞서고 있는데 한교수님이 보시기에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습니까?
한규철 : 사실 학문은 학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평화를 좀 해치는 주장이 있다든지, 저는 적어도 발해사 입장에서는 중국과 한국, 러시아 등 몇 개 나라.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주장하는 것 중 어느 한 쪽이 더 정답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건 역사나 학문이 타협해서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학문적 우위를 통한다든지 학문적 객관성을 담보하는 선에서 진리와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보는 거지. 당장의 평화를 위해서 역사가 타협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우리가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얼마나 학문적으로 잘 해내느냐가 문제가 되겠군요. 우리가 중국의 주장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고구려사나 발해사에 대해서 국제학계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규철 교수님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발해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십니까?
한규철 : 제가 91년에 발해사 박사 1호라는 별칭을 받게 됐습니다만, 처음에는 역사에 대한 열정, 미개척지에 대한 열정에서 출발했죠. 그리고 하면서 보니까, 중국의 주장들을 접하고 이러면서 보니까 발해사의 성격규정 이런 부분을 좀 더 확실히 해야겠다. 처음에 지도교수님께서는 걱정을 했어요. 발해사를 해서 취직이 제대로 되겠느냐. 사실 발해사 해가지고 취직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고대사에서는 가야사 신라사 백제사를 해야 취직이 잘 되죠. 취직은 안정적인 생활 하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중국에 갈 수 없을 때 대만에 가서 발해사를 한다. 그것도 한국사 안에서 한다고 하니까 왜 한국사를 하느냐 당나라 역사를 하지.. 이런 충고를 저한데 하더군요.
박인규 : 역사연구의 질을 연구자의 숫자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중국에서 발해사를 전공하시는 분들과 한국에서 발해사는 전공하시는 인력이 비교가 되나요?
한규철 : 논문을 쓰신 분들은 중국에서 400여 분이 넘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200여 명 정도밖에 안 되고 미치지 못하죠. 그렇지만 논문의 질로 얘기하면 우리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국은 고고관계가 많고 주로 정책적 입장에서 연구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야 상당히 자유로운 아카데미즘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발해사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곳이 한국이죠. 이런 부분에서는 중국과 한국이 약간 다른 분위기가...
박인규 : 일각에서는 고구려사에 관한 문화유산 등재 등과 관련해서 정부의 지원이라고 할까요. 고구려사를 제대로 진흥시키기 위해서 정부에서 조직적으로 재정지원이나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우리가 너무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 것 같아요.
한규철 : 약해 왔죠. 그러다가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돼서 제가 공동대표도 했습니다만 그 결실로 고구려연구재단이 발족됐었죠. 그런데 특히 한반도 부분은 역사문제가 크지 않습니까. 일본과의 관계도 있고 독도문제도 있고, 그래서 최근에 동북아역사재단이 발족됐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이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흡수돼서, 어떻게 보면 역사에 대한 대응이 체계적으로 본격화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고. 또 국민들의 관심이 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기대하고 학문적으로도 그에 부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려고 서로 모여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고구려연구회가 생긴지 12년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 연구 관련해서는 상당히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구려연구회는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소개를 해주시죠.
한규철 : 고구려연구회는 1994년 전임 서길수 회장님과 서영수 회장님 등을 비롯해서 고구려사 연구자들이 중심이 돼서 중국의 고지겸씨라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 갔더니 그 분이 장수왕 존영을 놓고 제사를 지낸다고 해요. 93년이었는데 한족이라 한국말을 하나도 모르는데 장수황 후손을 자처하면서 집안에 가서 제사를 지냈던 분인데, 그 분을 한국에 초청해서 국제학술회의를 처음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고구려사에 대해서 상당히 미지의 부분 내지는 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들을 모아주는 역할을 했고, 또 유적을 답사한다든지 이런 일을 하면서 국제학술회의를 지금까지 12번 했고. 고구려 고분벽화 광개토왕비라든지 이런 학술활동을 해왔고 시민들의 답사에도 동참하면서 시민들과 고구려문화부흥운동에 같이 참여해 왔습니다.
박인규 : 학계에서의 제대로 된 연구와 무관하게 국제사회에서 고구려가 한국역사라는 걸 알리는 홍보랄까 그런 작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와 관련해서 정부에 주문하거나 요청하고 싶은 건 없으십니까?
한규철 : 정부 부분은 사실 한쪽으로 외교적인 부분도 있고 한쪽으로는 우리가 우리 목소리를 내야 되는 부분도 있는데, 그래서 정부는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이라든지 연구자들을 북돋우는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되고. 기초작업인 자료조사 등에도 많이 지원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시민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역사의식을 보다 본격적으로.. 고구려 발해사 바로알기라든지 문화체험운동이라든지 이런 걸 통해서 우리가 고구려 발해의 후손임을 공고히 할 때 어떻게 보면 고구려 발해사가 좀 더 부각되고 바로 아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발해사 관련 학자시면서 고구려 연구회 회장으로서 고구려사 발해사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학문적 활동을 하고 계신데, 고구려 연구회 회장으로서 고구려사나 발해사의 의미를 우리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대내적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지 마지막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규철 : 시민들과 관계되는 부분은 요즘에는 시민연대운동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담당하고 있고, 거기에 학술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면 저희들이 어느 때고 가서 얘길 하고 있고. 또 바로알기에 대한 강연이라든지 시민들과의 교류관계에 있어서 고구려 연구회가 학술단체면서 시민과 가장 가까운 단체라고 자부합니다. 시민들에게 당부랄까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너무나 감정적인 대처는 문제가 있다. 심지어는 언론에까지. 우리는 언론이 많이 북돋워주면 활동하기가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정답은 아니다. 자제하면서 우리는 바로알기 운동이라든지 내부적으로 문화체험 또는 페스티벌, 고구려 동맹이라든지 축제라든지, 여기에 대한 정신 살리기 운동에 더 치우쳐서 고구려 발해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가져 줬으면 더욱 더 고맙겠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한민족의 정체성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제대로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앞으로 학자로서, 또 고구려 연구회 회장으로서 한민족의 뿌리찾기에 많은 역할을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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