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고래사냥과, 깊고 푸른 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의 영화로 흥행 최고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던 배창호 감독... 그의 신작 영화 <길>이 2001년 <흑수선> 이후 5년만에 공식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길은 한국의 70년대를 배경으로 떠돌이 대장장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는데요
이미 제작된지 2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스크린을 잡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배창호 감독은, 영화 상영은 늦어졌지만 모처럼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소신껏 제작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배창호 감독을 초대해서 영화 <길> 의 개봉을 앞둔 소감과 그가 필름에 담았던 한국의 길은 어떤 곳이었는지 얘기 나눠보고 앞으로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배창호 감독입니다. 배창호 감독은 1953년 대구출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영화감독데뷔를 했으며, 다음해 이 영화로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1983년부터 85년까지 감독한 고래사냥, 깊고 푸른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으로 3년 연속 최고 흥행감독으로 기록됐습니다. 이후 황진이, 기쁜우리 젊은 날, 안녕하세요 하느님, 천국의 계단, 젊은남자 등을 제작했고, 주요수상경력으로는 두 차례의 대종상 감독상과 프랑스 베노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지난해 제14회 필라델피아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길이라는 작품이 이번주에 개봉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봉이 몇일이죠?
배창호 : 11월 2일입니다.
박인규 : 작년에 미국 필라델피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는데 1년이나 지나서 개봉하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이 교차하실 것 같아요.
배창호 : 오랜만에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니까 이곳저곳 매스컴에서 인터뷰 요청도 많고, 이 영화는 독립영화 제작방식으로 만들어서 이전보다는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영화를 알리러 다니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선 개봉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상 받았다고 하면 바로 개봉될 것 같은데...
배창호 : 시류를 타는 영화가 아니라 곧 개봉을 할 이유가 없었어요. 이 영화는 제가 아니라 잘 아는 후배가 제작했는데 제작할 때부터 제가 당부를 했습니다. 독립영화는 대단한 인내력과 열정과 투지가 없으면 힘들다. 배급할 때도 어려움이 있을 테니 대단한 각오를 해야겠다고 했는데 제 생각보다는 더 길어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독립영화와 이른바 상업영화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배창호 : 독립영화는 미국영화계에서 나온 말인데 그야말로 자본으로부터 창작의 정신과 주체를 독립해 왔다는 뜻입니다.
박인규 : 돈벌이나 돈의 영향을 가급적 안 받으려 하는....
배창호 : 그렇죠. 자본이 커질수록 자본의 힘이 행사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창작권이 침해되거나 협상해야 되거나 간섭을 받는다든지 이런 것으로 인해 창작자의 창조정신이 깎이지 않기 위해서 자본과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대로 영화를 찍는 것이죠. 일본에서는 자주영화라고 표현하는데 일본에서는 80년대부터 그런 독립영화가 있었고 미국은 70년대. 우리는 제작환경이 과거 4,5년 사이에 바뀌었기 때문에 독립영화의 역사도 짧다고 볼 수 있죠.
박인규 : 보통 상업영화는 사나리오가 나오면 이른바 펀딩이라고 투자를 받는데 독립영화는 영화감독이나 제작하시는 분이 순전히 자기 돈으로 한다, 그래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되나요?
배창호 : 독립영화도 펀딩을 받으면 좋죠. 펀딩을 받되 간섭받지 않으면 좋은데, 자본이 영화의 주체가 되다 보면 자본이 원하는 영화만 만들어집니다. 영화를 깊이 연구하지 않고 금방 시류를 타면서 관객들 입맛과 말초신경적인, 아니면 이벤트적인, 마케팅하기 좋은 영화를 주로 자본주가 선호하기 때문에 삶과 인생을 다루는 영화들은 좀 뒷전에 밀리죠. 그런 영화도 홍보력과 영화의 우수성과 관객들의 입선전으로 흥행할 가능성은 있는데 만들어지기 전부터 재단되는 경향이 있죠.
박인규 : 독립영화 제작방식으로 만든 길은 어떤 영화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창호 : 1970년대를 배경으로, 남도를 떠돌아다니는 한 대장장이가 자기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떠돌다가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러 온 한 처녀를 만나서, 그녀와 동행하면서 인생길에 선 사람들의 관계와 자기의 고통을 어떻게 내려놓느냐 하는 문제를 그린 영화입니다.
박인규 : 흑수선 이후 5년만인데, 특별히 이런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배창호 : 흑수선은 2000년대 들어서 제가 주류영화로 처음으로 관객들과 대중적으로 만난 작품이었고, 그러다 보니 다시 조촐하지만 좀 깊이 있게 제가 그동안 추구해 왔던 한국적 정서와 원형질적인 모습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화는 주류보다는 독립영화 제작방식으로 만들어져야 될거고. 관객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으니까 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뒤처리가 오래 걸렸습니다.
박인규 : 길에서는 배창호 감독께서 감독 뿐 아니라 주연배우까지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연기를 처음 하신 건 아니죠?
배창호 : 88년도에 이미 개그맨이라는 영화로 연기를 했고 8년 후에 러브스토리라는 영화의 주연을 했었는데 물론 연기가 주는 아니죠. 이번 영화는 사실 제작자의 권유가 컸습니다. 원래는 다른 연기자를 생각했는데 서로 인연이 맞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누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제작자가 저의 연기자적 능력을 알아서 저한테 권했고, 저는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또 나서기가 그렇고.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역할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나름대로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연하게 됐죠.
박인규 : 영화를 보신 분들은 배창호 감독 같지 않다고도 말씀하시던데요..
배창호 : 영화 시사회 때 소개를 하고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고서도 저 사람이 배창호 감독이냐고 수군거리는 소릴 들었는데, 그만큼 제가 변신에 성공했다고 봐야지요.
박인규 : 독립영화 제작방식으로 하셨는데 제작비는 얼마나 드셨습니까?
배창호 : 제작자가 밝히기로는 5억 원이 들었다는데, 실제 영화에 들어간 값어치는 훨씬, 몇 배는 될 겁니다. 스탭, 캐스트들의 헌신적인 참여의식으로 개런티를 많이 줄였고 또 제가 이십몇 년간 영화제작 현장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습득한 현장지휘의 노하우로 많은 경제적 효율성을 가졌기 때문에 실제 들어간 돈은 더 크다고 볼 수 있죠.
박인규 : 요즘 관객들이 아무래도 스펙터클한 볼거리에 치중하기 때문에 흥행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른바 흥행의 한 조건으로 이름난 배우들이 나와야 된다는 게 공식처럼 돼 있는데 배감독님이 주연을 하셨으면 다른 배우들도 무명이랄까요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오셨겠네요?
배창호 : 네. 톤을 맞추기 위해서도 그렇고 오히려 많이 안 알려진 사람일수록 이 영화에는 더 어울렸다고 보기 때문에, 영화의 스타일에 따라서 캐스팅이 달라지거든요. 물론 스타가 주는 화려한 볼거리도 있지만 이란영화나 제3세계권 영화를 보면 진짜 노동자 같고 우리 이웃같은 사람들이 연기하면서 화려하고 멋있고 카리스마나 분위기 있는 연출을 하지 않아도 소위 말하는 진정성을 보여주거든요. 그런 식의 연기패턴을 살렸죠.
박인규 : 아직 개봉은 안 했지만 시사회에서 동료 감독들이나 관객들의 평이 어떻던가요?
배창호 : 매스컴 종사자나 영화 종사자들은 그다지 큰 기대를 안 하고 봐서 그런지 영화가 상당히 좋다. 기대를 안 할수록 반대급부가 크니까 좋다는 평가였고. 관객들은 두 부류였어요. 요즘에 주류영화의 자극적인 요소에 길든 관객들은 무덤덤하고, 특별히 볼거리 없다. 그러나 자기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고 영화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박인규 : 볼거리가 없다는 말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한국에서 상당히 멋있는 길을 화면에 담으셨다는데 어디를 주로 많이 찍으셨습니까?
배창호 : 전국 각지죠. 작품의 무대가 되는 전라북도 지역. 구례, 곰소, 김제평야 쪽도 담았고. 또 강원도 삼척지방에 있는 환성굴, 정선, 임계, 경상북도의 왜관,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박인규 : 로드무비라더니 정말 길을 많이 담으셨는데 혹시 개인적으로 촬영하시면서 정말 이 길은 한 번 걸어보고 싶다. 그런 길이 많던가요?
배창호 : 촬영한 지역은 대부분이었어요. 촬영여건은 열악했지만 촬영 분위기나 일을 해나가는 기쁨은 컸어요. 장소가 제가 좋아하는 지역이니까, 여기 길 정말 좋지 않니 하는 얘길 하고, 흙을 다시 밟으면서 찍을 수 있다는 게 참 기뻤고. 그런데 1년이 지날수록 길이 자꾸 바뀌어서.. 다른 분이 영화에서 본 길을 찾아가면 바뀌어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고. 이제는 우리가 흔히 보던 구불구불한 시골 황토길도 문화재로 구간 구간을 지정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박인규 : 흥행성공보다는 감독의 예술적 소신을 위한 독립영화제작방식으로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일정한 관객이 들어야 만드신 감독으로서 기분도 좋으실 텐데, 대충 예산이 얼마가 들고 관객이 몇 명이 들면 맞는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기대하세요? 우선 스크린을 몇 개나 잡으셨습니까?
배창호 : 전국에 네 군데 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조금씩 확대개봉..
박인규 : 괴물은 6,700개였는데 상대가 안 되는군요.
배창호 : 우리 관객들이나 매스컴 쪽에서 관객동원 수치에 둔감해졌죠. 이젠 천만까지 가니까 그런데 사실 5만 명도 굉장히 많은 숫자고 소중한 숫자입니다. 저희가 숫자에 매달리다 보면 주말에 20만 명이 들었습니다 하는데 관객 한 분 한 분 입장해 들어가면, 영화를 선별해서 오고 기다리고 보고 하는 중요한 관객들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많은 관객이 아닌 소수라도 이 영화가 제공하고자 의미와 정서적 재미를 선택해 오신 관객들이라면 그 분들에게 충분히 즐거움을 줄 수 있고.
박인규 : 혹시 개인적으로, 그래도 관객이 얼마 정도는 보셨으면 좋겠다 하는 기대는 없으십니까?
배창호 : 마케팅이라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라 그만큼 홍보관계자가, 또 영화 자체가 얼마나 마케팅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관객들을 계발하는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서울에서는 어디서 합니까?
배창호 : 서울은 스폰지라는 배급회사에서 운영하는 씨네코아극장의 한 관에서 단관개봉합니다. 단관개봉을 무시 못하는 게 93년에 서편제도 단관개봉으로 70만 이상 관객을 동원했고.
박인규 : 단관개봉이지만 관객들이 몰린다면 스크린이 늘어날 수도 있는 거네요. 많은 관객이 들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영화는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배창호 감독께서 최고 흥행감독으로 명성을 떨친지 20년이 지났습니다. 80년대와 지금, 영화판이 엄청 커지기도 했고 많이 달라졌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요즘 후배감독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드실 것 같아요. 어떠십니까?
배창호 : 물론 저희 때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한다는 점에서는 그런 면도 있지만 어떤 면으로는 안타깝기도 해요. 예전에는 감독이 실패를 해도 작품이 괜찮았으면 또 기회가 주어집니다. 흥행사 분들도 그렇고 제작자 분들도 낭만적이었죠. 흥행은 안 됐어도 저 사람 영화 잘 만들었다, 또 기회 주자. 그런데 지금 현실은 훨씬 냉혹하죠. 한 번 실패를 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지기 아주 힘든 여건이 됐으니까.
박인규 : 아무리 예술성이 있어도 흥행에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힘든..
배창호 : 8,90년대에 비해서는 그렇죠. 그런데 하나의 영화감독이 소위 작가로서 키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패를 거쳐야 된다고 보거든요. 인생도 시련을 많이 겪어본 사람일수록 단단하고 성숙해지듯이 영화작가의 길도 실패를 통해서 자기가 모자랐던 부분과 자만했던 부분을 다지게 되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요즘 시대는 많은 성공한 감독은 있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는 감독이 얼마나 될지는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대중성과 흥행성이 예술성을 압도하거나 리드해 가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말씀이신가요?
배창호 : 그렇죠. 자본이 자꾸, 제작비가 올라갈수록 참여한 사람들은 창작의 주체라기보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진행자가 될 우려가 크죠.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이 그런 말을 했는데, 산업화가 되면서 장인들의 창조의 기쁨이 사라졌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들어도 예전에는 돈을 떠나서 내 새끼, 내 작품이라는 기쁨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영화 제작비가 7,80억 100억 되면 냉혹한 현실이죠. 그러니까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기 소리를 많이 낼 수 없는 형편이 되는 게 우려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되다 보면 영화들이 개성을 잃어버리게 되죠.
박인규 : 배감독님 연세가 50대 초반... 외국으로 따지면 한참 일하실 나이인데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원로랄까, 한 세대가 지나가신 분인 것처럼.. 우리나라 관객들의 취향이 너무 빨리 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배창호 : 우리나라 영화관객들이 너무 10대에서 20대로 세대가 치우쳐 있죠. 그리고 기성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오더라도 젊은이들이 본 영화를 확인하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많고. 자기 세대의 문화를 지키고 있어야 되는데, 그래야 나이 있는 분들은 더 성숙하고 원숙한, 깊이있고 의미있는 영화로 공존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대중문화계의 편중된 기호의 성향이라고 봐야지요.
박인규 : 4,50대로 나름대로 문화를 가져야 되는데 특정 세대가 주도해 버리는...
배창호 : 미국영화도 보면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영화가 늘 만들어지고, 일본도 예를 들면 야마다 요지 감독은 80대에요. 그 분들은 장년층, 노년층의 관객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10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사실 주책스럽죠. 거기 영합하고 마치 눈치보는 것 같은.
박인규 : 말하자면 배감독님 세대, 7080 분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없는 우리 영화판의 상업적 특징이 있어서 그런 건가요?
배창호 : 그것보다는 기성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많이 오지 않죠. 그러니까 계발이 안 되고, 그런 분들을 위한 영화들이 가끔씩 만들어져요. 그런데 아무래도 경제적 사회적인 활동에 치중하다 보니 문화적인 생활을 등한시하게 되죠. 그러니까 자연히 만드는 사람들, 기획하는 사람들 쪽에서 멀어지고 편중돼 가고. 또 자본이 많이 투여될수록 꼭 성공시켜야 되니까 확실한 관객층만 겨냥하게 되고.
박인규 : 7,80년대에는 이장호, 배창호 감독. 8,90년대에는 강우석, 강제규 감독, 그러다가 요즘에는 봉준호, 이준익 감독 하는데, 요즘 젊은 감독들과 가끔 교류가 있으십니까?
배창호 : 이번에 배급사의 이벤트로 젊은 감독들을 초청해서 제 영화를 같이 봤는데 그것 외에는 자주 모임을 갖진 않습니다.
박인규 : 중국 같은 경우는 3세대, 4세대 영화감독.. 이런 식으로 감독간에 계승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배창호 : 그건 평론가들이 만들어낸 구분이죠. 거기서도 그렇게 자주 교류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박인규 : 배감독님이 보시기에 요즘 이른바 잘 나간다는 감독들의 영화 만드는 스타일과 배감독님 세대와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배창호 : 요즘 감독들은 영화가 많이 사실적이죠. 간결하고 관찰력도 뛰어나고 영화에 대한 정보량이 많아서 이것저것 구사하는 테크닉이 많고. 그러나 아쉬운 건, 왜 영화를 하는가 영화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성찰이 부족해서 영화를 다루는 깊이가 부족하고. 영화적인 솜씨가 덜 무르익었다. 제가 서예를 지금 한 4년째 하는데 이게 10년을 해도 어디 명함을 못 내밀 것 같아요. 조형적인 면에 치중하는 서예도 그런데 인생을 다루는 영화야 한참 농익어야 솜씨가 무르익을 수 있거든요.
박인규 : 인생의 깊이나 내면적인 깊이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 최근에 괴물이 상영될 당시에 상당히 개성있는 감독으로 알려진 김기덕 감독이 배창호 감독님이 만든 것 같은 예술영화가 너무 대접 못 받고 있다. 말하자면 대중성은 없지만 그래도 예술적으로 괜찮은 영화들은 최소한 상영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예술성 위주의 영화들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배창호 : 지금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나름대로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고 실제 지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자기 철학대로, 자기 가치관대로 길을 가는 거죠.
박인규 : 감독으로서 흥행감독의 영예도 누려보셨고 만들고 싶은 영화도 많이 만들어 보셨는데 아직도 하시고 싶은 영화가 많을 것 같아요.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어떤 겁니까?
배창호 : 글쎄요. 구체적으로 열거하긴 그렇고, 제가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제 애정을 많이 담을 수 있는 영화가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대중영화의 경향이 많이 가벼워지고 어느 의미에서는 좀 경박해져 가고 있는데 여기서 다시금 깊이를 찾아야 되는 문제가 저로서는 숙제입니다. 그렇게 두 가지. 대중성과, 제가 그리고자 하는 깊이가 맞는 지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박인규 : 다음 영화도 구상하고 계실 것 같은데 계속 독립영화로 나가실 건 아니죠?
배창호 : 안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해온 영화의 길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고래사냥을 했다가 황진이를 했다가 깊고 푸른 밤을 했다가 전 같은 한국적인 영화를 했는데... 다음에는 주류영화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소재로 많은 관객들과 만나 뵙기를 희망하죠.
박인규 : 마지막으로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팬들도 많으니까, 마무리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창호 : 어제 제가 가족들과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에 여행을 갔다 왔는데 가을 단풍도 좋고, 탑사도 많더라구요. 그런데 등반객들이 탑사나 단풍을 즐기기 보다는 너무 이야기들이 많고, 조용히 역사에 귀 기울이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휴게소에서도 보면 너무 시끄러운 음악이 많고, 우리의 감성이 시끄러운 것에 둔감하다는 건 감성이 많이 둔해졌다는 거거든요. 우리 감성을 마비시키는 것으로부터 빨리 깨어나서 자기 감성을 예민하게 다시 되찾았으면. 그렇게 된다면 '길' 같은 영화도 재미있고 의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지만 영화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셨기 때문에 앞으로 인간의 내면을 짚어볼 수 있는 깊이있는 영화 많이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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