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론 역시 양분돼 있기는 마찬가지이나 그 분할구도는 한국과 차이가 있는 듯 하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장악하고 있는 '네오콘(Neo-Conservatives: 신보수)' 세력이 응징을 강조하는 편이라면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주로 활약했던 정통 보수세력은 진보세력과 함께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주장하는 편이다.
아래에 소개할 칼럼 두 편의 요약본은 네오콘과 정통보수 간의 이 같은 시각차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시가 될 것이다.
첫 번째 칼럼은 패트릭 크로닌 국제전략연구소(IISS) 연구조사국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기고한 것으로, 크로닌 국장은 이 글에서 "북한의 핵 보유는 국제사회 안정과 평화에 명백한 위협"이라는 유엔 제재결의안의 전반적인 기조에는 동의를 표하면서도 "(제재 결의안에 군사조치를 유발할 수 있는)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하는 것은 국제 사회의 분노와 비난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도구일 수 있으나 모두를 위해서는 북한을 둘러싼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적극적인 외교와 봉쇄정책을 적절히 융합해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로닌 국장은 "제재와 동시에 미국은 북한 정권과 직접 협상할 길을 찾아내야만 한다"며 "중요한 것은 당장 수 킬로톤의 효과를 낼 정책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끈질기게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1기 행정부에서 미국국제개발협력처(USAID) 부관장을 지내기도 한 크로닌 국장은 콜린 파월 전 국무부 장관, 리처드 아머코스트 전 국무부 차관 등과 함께 부시 행정부 내 온건파로 분류됐었다.
반면, 독립 통신사인 인터프레스서비스(IPS)의 짐 로브 기자가 17일에 쓴 두 번째 칼럼에는 미국의 보수 정치 사이트인 <내셔널 리뷰 온라인(National Review Online)>에서부터 진보 신문인 <뉴욕타임스>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네오콘들의 목소리의 일단이 담겨 있다.
"미사일 개발을 서둘러 북한을 폭격하자"는 주장부터 "북한의 반체제 단체를 비밀리에 지원해 내부 분열을 도모하자"는 주장까지, 거침없는 주장에서 북한을 여지없는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여기는 네오콘들의 목표는 결국 '북한 정권의 붕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외교 실패의 중량이 수천 톤(Measuring diplomatic failure by the kilotonne)> - 패트릭 크로닌 국제전략연구소(IISS) 연구조사국장 북한 정권의 핵실험 강행은 일차적인 책임은 미국 외교술의 실패에 있다. 핵 확산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강경한 태도가 역설적으로 더 많은 확산을 이끌어 낸 셈이 된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앞으로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겠다며 외교보다 강경한 접근을 앞세운다면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을 잠재우기는커녕 자극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으로 전 세계에 핵이 확산되는 새 장이 열릴 것이라는 두려움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내에서 핵 억지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논의들이 있어 왔지만 이제껏 현명하게도 직접 핵을 갖는 선택을 피해 오지 않았던가. 일본은 원자폭탄의 피해를 본 나라인데다가 핵을 가진 미국과의 동맹도 긴밀한 상황이니 쉽게 핵 보유의 길에 들어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5년 안에 핵에 대한 위협이 있다면 핵무기나 핵물질, 혹은 핵 기술이 북한 같은 나라에서부터 좀더 자기 억제가 어려운 테러 집단으로 넘어가는 경우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북한의 핵 실험과 지난 7월에 있었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고압적인 외교술'에 관한 한 김정일이 부시 대통령보다 낫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목청은 한껏 높였지만 제재를 조금 높이는 식의 '작은 회초리(small stick)'밖에 못 들었다. 반면 북한의 반응은 상당히 조직적이다. 직접 대화하거나 아니면 핵 확산을 눈뜨고 지켜보라는 식 아닌가. 어느 쪽이 더 큰 위협이고 신빙성 있는 위협인가. 미국이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북한 정권은 더 많은 핵 시설을 몰래 건설하는 식으로 위협을 늘려 나갈 것이다. 미국이 갑자기 대화에 나선다 해도 미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없애지 않고 핵 실험과 협상하는 나라가 되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냈다는 '명예'는 김정일이 쥐게 될 것이다. 이에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을 제외한 모든 국제사회가 하나가 돼 북한을 함께 협박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각 국가들의 장기적인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돼 이 기대는 실현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남한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의 안정을 원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해체를 위한 강력한 외교적 조치를 원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러시아는 또 동북아 정세에 끼어들 전술적인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이 '햇볕정책'을 잘못된 교리로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정치적으로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을 위해 북한을 향한 강경 대응이 나올 가능성은 있지만 남한에서는 적극적인 관여정책을 써 나가는 것이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도 북핵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지름길이 없다면 차라리 남한과 같이 '대담한 대북 접근'을 해 보는 것이 비확산 정책을 고수하는 것보다 나을 듯 하다. '은자의 나라'(북한)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핵실험 전 평양에선 군부 지도자들이 '존경하는 위원장'을 위해 목숨을 다해 싸울 것을 맹세했다는 소식이다. 김정일은 한동안 내부 쿠데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 위협을 가정함으로써 자신의 통치 기반을 탄탄히 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참에 미국이 김정일 정권을 지켜주고 있는 셈인 그 '외부 위협'을 부정한다면 그는 어떨까? 미국 정부는 전체적인 한반도 전략보다는 하루하루 '눈에는 눈'이란 식으로 응징하는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김정일의 핵 프로그램을 되돌려 놓기 위한 손쉬운 선택지에 골몰하느라 장기적인 고찰이 충분치 않은 것이다. 만약 북한에 군사조치를 한다면 이라크처럼 내전이 벌어질 우려는 없는가 하는 데까지 세밀하게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유엔 제재 결의안에 군사조치를 유발할 수 있는)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하는 것은 국제 사회의 분노와 비난을 표현하는 데에 적절한 도구였을 수 있다. 그러나 모두를 위해서는 억지력을 변함없이 유지하면서도 북한을 둘러싼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적극적인 외교와 봉쇄정책을 적절히 융합해 구사해야 한다. 이런 정책들을 함께 사용하면서 미국은 꾸준히 북한 정권과 직접 협상할 길을 찾아내야만 한다. 직접 대화가 곧 미국 외교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재치 있는 외교는 미국을 '악의 제국'으로 묘사해 온 김정일을 궁지로 몰아넣는 효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당장 수 킬로톤의 효과를 낼 정책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끈질기게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
<미국의 네오콘, 일본의 핵무장과 북한의 정권교체를 요구하다 (U.S Neo-Conservatives call for Japanese nukes, regime change in North Korea)> -짐 로브 인터프레스서비스(IPS) 기자 북한의 핵실험으로 역시 불량국가인 북한과는 협상이 필요 없고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네오콘들 사이에서 힘을 받고 있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진 반응은 전 부시 대통령의 연설 담당 비서관이었던 데이비드 프럼의 주장이다. '악의 축'이란 단어를 고안해 내 유명해진 프럼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북한 정권을 복종시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중국을 책벌하라"라고 주장했다. "북한에 대한 모든 인도적 지원을 끊고 남한에도 이를 요구하라. 북한이 도산위기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들은 모두 중국에 떠맡겨라.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동북아 관련 국가들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참여시키고 중국이 배신자로 여기는 대만에는 NATO에 옵서버 자격을 주자. 그리고 특히 일본에는 NPT 정신을 재선언하게 촉구한 후 일본만의 핵억지력을 갖도록 도와주자" 특히 프럼은 일본의 핵무장을 강조한다. "일본의 핵무장은 한국과 대만의 핵무장 다음으로 중국과 북한이 두려워하는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프럼은 또 "일본의 핵무장은 중국과 북한에 대한 응징일 뿐 아니라 핵무기를 가지려는 이란을 단념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서 이란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독려할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낄 것"일 테니 일본의 핵무장은 중국-북한뿐 아니라 이란까지 견제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란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1기 부시 행정부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무장관 아래 있다가 현재는 보수 싱크탱크인 '미국 기업연구소(AEI)'에서 동북아 전문위원이 된 댄 블루맨살은 보수 정치 사이트인 <내셔널 리뷰 온라인(National Review Online)>에 올린 글을 통해 6자회담은 폐기돼야 하며 다른 6자회담 유관국들이 요구하는 워싱턴과 평양 간 양자회담은 철저하게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미 양자회담 요구가 곧 다시 불거질 테지만 양자회담을 하는 것은 미국의 실수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 주장의 골자다. 미국외교정책회의 주임 연구원인 제임스 로빈슨은 좀 더 '은밀한 조치'를 요구하는 편이다. 비밀요원을 보내 군사시설을 파괴한다거나 정탐, 매수 등을 통해 북한 정권 해체를 위한 내부 작업을 진척시켜 나가자는 주장이다. 로빈슨은 "김정일처럼 의심이 많은 독재자는 이 같은 방법에 예민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주장은 좀 더 도발적이다. 그는 "예전처럼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되 비밀리에 지원해서 독재 정권을 서서히 침식해 들어가자. 낙하산이나 잠수함을 이용해서 식료품을 은밀하게 지원하면 된다. 반 정권 성향을 가진 관료들을 통해 물품을 보내서 정권에 반대하는 조직에 들어오면 좀 더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주장했다. 안보정책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프랭크 가프니는 아예 "아직 초기 단계인 미사일방어시스템의 개발을 촉진해서 다양한 사정거리의 탄도미사일로 북한을 치거나 아니면 미국 해안과 먼 곳에서 북한의 배를 초토화시켜버리자"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정부가 핵실험을 자국 지하에서만 하는 방침을 재고해야 한다"며 아버지 부시가 1991년 선언한 미-소간 전술핵전력 감축 협정도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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