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과 함께 '주요 검색어'로 떠오른 단어가 바로 '핵우산'이다. 당장이라도 북한이 핵을 이용한 선제공격에 나설 것처럼 안보위기가 과장된 가운데 핵우산은 그 공격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줄 '수호신'인 양 여기저기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빗발 치는 핵공격 와중에 억지력을 우산처럼 펼쳐 비핵국가들을 보호한다는 낭만적인 명명이 무색하게도 핵우산이 선언에 머물지 않고 구체화될 경우에는 핵전쟁을 촉발시키는 '핵화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치적 '핵우산'은 이미 이중으로 존재
정치권에서는 17일 작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우리 정부가 핵우산 조항의 삭제를 미국 측에 요구했다는 주장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지난 1978년 제11차 SCM에서 브라운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이 계속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구두 약속을 한 이래 양국은 매년 SCM을 통해 이를 확인해 왔는데 9.19 공동선언이 나온 직후 열린 작년 SCM에서 우리 정부가 미 측에 이 조항의 폐기를 건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작년 공동성명에도 핵우산 조항이 포함된 바 있기 때문에 한국이 여전히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는 상태'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차원뿐 아니라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을 통해서도 이중으로 핵우산을 보장받고 있다. 핵을 보유한 5개 국가가 핵을 가지지 않은 국가에 대해 핵을 갖지 말라고 권유하는 대신 핵 억지력에 해당하는 보호를 제공한다는 것이 NPT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다시 들여오자'는 핵우산은?…핵무기!
이처럼 한국은 이미 핵우산의 보호를 이중으로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핵우산을 다시 들여오자"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한국 정부는) 미국이 핵우산을 한국에 제공한다는 명시적인 입장이 나오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10일자 중앙일보>며 에둘러 표현했지만 퇴역장성들의 성명이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에서 "다시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되는 핵우산은 정치적 의미의 '보호 선언'을 넘어선 핵배낭, 핵포탄 등 실질적 전술 핵무기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요컨대, 1991년 미-소간 전술핵전력 감축선언에 따라 주한미군이 폐기했던 700여 개의 핵탄두를 다시 들여온다면 '손쉽게' 국가 안보를 지킬 수 있지 않냐는 식의 주장인 것이다.
이에 국방부 쪽에서도 "핵우산은 미국의 핵 지원 능력을 가정한 것"이라며 "20일 워싱턴에서 열릴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핵우산 제공 문제를 과거보다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 나왔다.
정부는 이와 관련, 선언적 의미가 컸던 미국의 핵우산 제공 약속을 한반도 위기 형태별로 나누고 형태에 따라 어떤 전술핵무기를 지원할 수 있는지 구체화해 주도록 미측에 요청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58년 주한미군을 통해 한반도에 처음 핵을 들여온 이래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때까지 30여 년간 한국에는 전술 핵무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전술핵 재도입은 '핵전쟁' 위험성까지 내포"
이처럼 북한의 핵실험 한 번으로 15년 전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번복이 너무나 가볍게 거론되는 기류에 안보관련 전문가들은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철기 동국대 교수는 "전술핵의 재도입을 운운하는 것은 북한과의 협상 기회를 스스로 없애는 짓"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1985년 NPT에는 가입하면서도 남한의 전술핵을 이유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보장협정은 거부했으며 1991년 주한미군의 핵이 폐기되자 협정을 맺고 핵사찰을 받았던 전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전술핵 도입은 오히려 북한에 핵무장 명분을 제공할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교수는 또 △미국이 다른 핵보유국들과 달리 재래식 무기로 공격을 받더라도 핵으로 받아칠 수 있는 전략적 능력을 갖고 있고 △북핵의 현 수준은 억지력을 유지하는 선이지만 전술핵은 실제 사용 가능한 무기인 점을 들어 전술핵 도입 주장에 대해 "핵전쟁 가능성까지 내포한 위험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는 SCM에서 실제적으로 전술핵무기 도입이 논의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하는 편이었다. 핵폐기 선언이 전 세계적인 약속인 만큼 실제로 핵무기를 한반도에 들여오는 일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박 교수는 국방부가 논의 가능성을 거론한 것과 관련 "북한 측에 핵억지에 관한 강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알리는 의미"로 풀이하면서도 "이미 미국과 NPT라는 중층적인 핵억지 보장을 갖고 있는데 이를 더욱 더 심도 있게 하자는 것은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보수층을 중심으로 전술핵의 도입을 가볍게 거론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SCM에서 전술핵 반입을 논의하는 것은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겠다며 핵실험을 강행한 것과 같은 논리로 오히려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국가 안보에는 상대가 있는 만큼 한 편의 안보 증강이 상대편에는 위협으로 전달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시민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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