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사실은 1984년부터 무려 22년간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의 19세기 사진을 수집해 오던 영국인 테리 베닛(56) 씨가 한국 관련 소장품 2600여 점 가운데 포함돼 있는 독일인의 사진첩을 25일(한국시간)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독일 출신 사진작가는 을미사변이 일어나기 직전인 1894년부터 1895년까지 독일 전함 '카이저'를 타고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와 모두 33장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이중에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이 포함돼 있다.
베닛 씨는 3년전 런던의 고서적상으로부터 이 사진첩을 확보했으며 그동안 사진을 수집하면서 구한말 동아시아 역사를 꿰뚫고 있던 그는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을 발견하고 이번에 전격 공개한 것.
사진첩의 한 페이지에는 4장의 사진이 배열돼 있으며 윗쪽 왼편에는 고종과 순종의 사진이, 오른편에 명성황후 추정 사진이 있으며 아랫쪽에는 대원군의 사진 2장이 배치됐다.
특히 명성황후 추정 사진 설명문에는 필기체로 'Die Ermordete Königin'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시해된 왕비'라는 뜻이다.
또 이 사진의 바로 아래쪽에 있는 대원군 사진은 명성황후 추정 사진의 배경과 정확히 일치,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것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사진에 등장하는 여성은 과거에 공개돼 논란을 일으키다 결국 궁녀 또는 가짜일 것으로 결론 내려지고 있는 '명성황후' 사진들과 달리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이고 실제로 명성황후를 만났던 이들이 평가했던 '눈빛이 차가우면서 예지력을 갖췄다'는 지적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점도 일단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베닛 씨는 이와 관련, "과거 명성황후로 널리 소개됐다가 궁녀로 추정되어 온 사진은 1906년 발간된 호머 헐버트 씨의 '한국견문기'에 실린 것이고 이 사진의 설명에는 분명히 '궁녀'로 적혀 있다"며 "헐버트 씨는 1886년 소학교 교사로 내한해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을사조약 후 고종의 밀서를 갖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등 당시 명성황후를 정확히 알고 있는 터여서 이 사진이 더 이상 명성황후 논란에 등장해서는 안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학계에서 이번 추정 사진의 진실 규명을 위한 작업을 실시한다면 기꺼이 돕겠다"며 "한국은 내년 초 다시 방문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진의 주인공이 명성황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진 작가와 촬영 배경 등이 규명되어야 하고 명성황후에 대한 여러 인상기를 종합 평가해 일치하는지를 판단하는 등 학계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이태진 교수는 이와 관련, "문제의 사진이 사실이라면 고종, 대원군과 함께 배열되고 대원군 사진과 배경이 같은 점 등 참고할 만한 사항들이 적지 않아 매우 흥미롭다"며 "베닛 씨가 소장한 사진을 확보,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