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심화된 한반도 위기가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요동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가 진행되면서 미국은 금융제재를 더욱 확대ㆍ강화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대북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며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중국과 한국은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기도, 그렇다고 북한을 설득할 만한 실효성 있는 뾰족한 방법 찾기도 쉽지 않은 가운데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금의 미사일 위기는 사실상 북핵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서 지난해 9.19 공동성명 이후 북미대결의 심화가 빚어낸 결과다. 금융제재를 필두로 한 미국의 대북 체제전환용 압박이 전면화되고 이에 맞서는 북한의 체제유지용 버티기와 대미 대결 불사 태도가 맞부딪침으로써 한반도는 9.19 이후 오히려 더 심각한 구조적 대결 국면을 맞게 되었고, 결국은 미사일 시험발사라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북한은 결국 소극적인 '3년 버티기'를 넘어 아예 미국을 협박하는 '적극적 강공'을 선택했고, 급기야 미사일 시험발사까지 강행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근본적 체제전환을 목표로 한 미국의 대북 압박에 대한 북한식 벼랑끝 전술이자 기존 6자회담 틀을 북미 양자협상 구도로 전환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대북 체제전환 의지와 6자회담 고수 입장, 그리고 북한의 체제수호 의지와 6자회담 거부 입장이 마주쳐 지금의 위기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아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아직은 통제불가능한 상황이 아닌 만큼 '관리가능한 위기(manageable crisis)' 정도에서 북미 양자가 상호 양보를 통해 협상할 수 있도록 조건과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상황은 한국에 보다 적극적인 사고와 주체적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과 미국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주도적 노력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원래의 원칙적 입장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접점 찾기에 나서야 하는 바,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대북 체제변환 의지와 북한의 체제수호 의지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고, 또한 미국의 6자회담 지속 및 금융제재 고수와 북한의 양자협상 요구 및 금융제재 해제 주장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한미공조와 남북관계를 통해 이 두 개의 큰 쟁점이 타협할 수 있도록 해법을 찾아 양자간 협상이 가능하도록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미국의 대북 체제전환 의지와 북한의 대미 대결 의지를 완화하도록 북미 양국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9.19 이후 북미간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의 민주확산론이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미국의 이 정책을 원론적으로 지지하되 대북 직접 적용은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북한에는 미국의 공세적 자유확산을 막기 위해 북한 스스로 보다 적극적인 개혁개방을 추진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자발적 체제변형'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진지하게 설득해야 한다.
부시 2기 행정부가 제시한 '민주확산과 폭정종식'은 이른바 반테러 전쟁의 맥락에서 테러의 온상이 될 수 있는 비민주 국가를 민주화하려는 의도다. 따라서 중동지역의 반테러 전쟁을 위해 테러발생의 근본을 없애고 독재체제를 민주화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고 올바른 것이므로 한국정부는 당연히 미국의 대외전략 기조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한반도와 동북아로 옮겨오면 사정이 조금은 달라짐을 또한 미국에 정확하게 설득해야 한다. 즉 미국이 반테러 전쟁의 맥락에서 북한을 폭정종식의 대상으로 고려한다면 이는 북한이 최근 테러와 관련성이 없었음을 감안할 때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반테러가 아니라 북한을 민주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사실 동북아에서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아직 완전히 민주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지적돼야 한다.
보다 결정적으로는 민주확산론에 따른 대북 체제전환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 기간 동안 북한의 핵무장이 강화되고 핵능력이 증대되는 부정적 결과는 미국에도 정책적 실패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있다. 따라서 미국이 폭정종식의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을 지속하는 것은 부적절함을 우리 한국정부가 나서서 설득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민주확산과 폭정종식론이 반테러 전쟁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고 지지할 것이지만 동북아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내정간섭과 정권교체 의도로 나타난다면 이는 잘못된 것임을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중국 정도의 개혁개방 및 체제변화를 적극 권고하면서 미국의 민주확산론이 김정일 정권의 교체나 제도 변경을 요구하는 미국의 공격적 정책으로 발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북한이 먼저 나서서 개혁개방의 적극적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사업의 필요성도 단순히 남북관계의 유지발전이라는 차원 말고 오히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중요한 지름길이며 향후 체제변화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에 대해 남한 및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방해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임을 당당하게 알려야 한다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민주확산에 대해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 천명으로 맞대응해야 함을 북한에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권고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지금 미사일 위기의 핵심 쟁점인 미국의 6자회담 복귀 요구와 북한의 양자협상 요구, 미국의 금융제재 지속 입장과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과 미국의 요구가 절충점을 찾지 못하는 형국에서 한국은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대북 설득의 통로와 지렛대를 마련하고 동시에 불필요한 한미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한미공조의 정신에 토대를 두고 대미 설득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북미간의 대립점을 해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의 이견을 봉합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일은 미국이 주장하는 6자회담 내 양자 접촉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는 북이 받을 수 있는 게 못 된다. 그렇다고 6자회담을 완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없다. 따라서 북한도 서명한 9.19 성명이 바로 6자회담에서 합의된 만큼 북미간 양자 협상을 진행하되 그와 병행해서 6자회담은 지속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북미의 타협 지점은 금융제재와 관련된 미국의 최소한의 성의를 전제로 북이 6자회담에 복귀하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제재 해제 문제와 미사일 발사 중지 문제를 다루기 위한 북미간 양자 회담을 따로 병행해서 진행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6자회담 개최의 관건으로 되어 있는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불법과 합법'의 범주로 구분해서 북한의 불법 활동과 관련된 계좌는 엄정히 제재를 가하되 정상적 경제활동과 관련된 계좌는 허용하는 방식으로 북미간 접점을 찾아야 한다. 최근 레비 미 재무부 차관은 "북한 자금 중 불법적인 것과 합법적인 것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북미 양자가 협상을 통해 금융제재의 범위에 대해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금융제재 해제와 관련된 미국의 일정한 성의표시가 있다면 6자회담 복귀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6자회담에서 얻을 게 많다'면서 6자회담 유용론을 강조하고 다만 미국의 금융제재로 인해 회담 참가가 힘들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북미 양자협상을 선호하되 금융제재 문제만 풀린다면 6자회담 복귀도 가능함을 시사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북한도 자금세탁 방지와 관련된 국제활동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누차 밝힌 만큼 불법행위와 관련된 명백한 계좌에 대해서는 북한이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난 3월 리근 국장의 방미 당시 미국 은행에 북한계좌의 개설을 요구한 바가 있는 만큼 북한의 정상적 경제활동과 관련된 계좌를 미국 은행에 합법적으로 열어주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금융제재와 관련해 불법과 합법을 구분하고 북미 모두 수용가능한 접점을 찾는다면 북한의 양자협상 요구와 상관없이 6자회담 자체의 재개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이와 별도로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미간 별도의 양자협상 채널은 병행되어야 한다.
금융제재 해제나 양자협상이 수용되지 않고 대북 제재가 가시화될 경우 북한은 오히려 더 강경한 벼랑끝 전술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역시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덥석 북한의 요구조건을 받을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의 요구 사이에 일정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 위기의 해결책은 난망한 것이다. 결국 북한과 미국 모두 체면을 구기지 않는 범위에서(face-saving) 상호 요구사항을 적절히 절충하면서도 향후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남북관계 복원과 유지를 통해 북에게 6자회담 복귀를 꾸준히 설득하고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한미관계의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에게 대북 협상에 나설 것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요구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수재피해 복구를 계기로 시급히 남북관계 복원을 이루어 내고 이를 토대로 대미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9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번 부시 대통령에게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북미간 직접 협상에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의 시작은 지금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 복원을 시급히 이루는 데서 출발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한국은 지금의 위기국면을 조금이라도 호전시킬 수 있는 상황변화의 터닝포인트를 찾을 수 있도록 전략적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미국의 정세인식을 쫓아 6자회담 복귀 요구만 되풀이하는 안이한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위기라고 간주할 수준까지 더 이상 문제해결을 뒤로 미룰 수는 없다. 위기가 심화될수록 문제해결은 오히려 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시기에 한국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신중한 자세를 가지는 것은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문제해결을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4차 6자회담이 장기간 소강상태였던 2005년에 한국정부는 남북관계의 유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6.17 김정일 면담을 이끌어냈고 이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6자회담 복귀를 유도했으며, 아울러 6.11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부시 대통령의 '미스터' 발언을 얻어내기도 했다. 그 결과로 어렵사리 4차 6자회담이 개최되었고 결국 9.19라는 로드맵이 도출된 것이었다. 북핵이 남북관계를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남북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이 오히려 북핵문제 해결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수도 있음도 분명하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북핵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유지하는 데서 더 나아가 북핵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즉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한반도 정세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북핵국면을 호전시킬 수 있는 적극적 역할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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