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북한산 비봉 일원에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벌어진다. 색출 대상은 신라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의 머릿돌이다.
북한산 순수비는 원래 봉우리 전체가 험준한 암석 덩어리인 비봉 꼭대기에 무려 1400년 가량이나 우뚝 선 채 사해를 조망하며 모진 풍파를 견뎌 왔다.
19세기 초, 금석학의 대가 추사 김정희가 직접 비봉 꼭대기에 올라 마모가 극심한 비면을 육안으로, 나아가 탁본을 통해 판독한 결과 진흥왕 순수비임을 간파하기까지 무학대사비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반, 이마니시 류(今西龍)을 비롯한 일본의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에 의한 활발한 조사 결과 좀 더 정밀한 판독과 측량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훼손 상태가 극심한 점을 고려해 보존을 위해 1972년 8월16일, 암석덩이 깊이 박혀 있던 비신(碑身)을 강제 분리해내 당시 경복궁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대피'시킨 다음, 현장에는 주변 경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강암 모조비를 세워놓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모조비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곳에 세워졌던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제3호)는 1400여 년의 오랜 풍우(風雨)로 그 비신 보존이 어려워 이를 안전하게 보존관리하기 위하여 1972년 8월16일 국립박물관으로 이전하고 유지(遺址)를 사적으로 지정하다. 1972년 8월16일. 대한민국."
한데 이 북한산 순수비는 비 표면이 극심하게 마멸된 점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결점이 있다. 원래 있어야 할 모잣돌, 즉, 비신 머리 위에 덮어 씌우는 머릿돌(가첨석)이 없다. 원래 머릿돌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같은 진흥왕 순수비의 하나로서 북한의 함흥본궁에 현재 소장된 마운령 순수비와 비교할 때 확실하다. 이 마운령비에는 지금도 머릿돌이 얹어져 있다.
나아가 북한산 순수비 비신 윗면에도 머릿돌이 꽂혔던 곳은 쐐기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다.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북한산 순수비를 답사한 추사 김정희의 기록을 보아도, 이미 이 당시에 머릿돌은 사라지고 없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머릿돌에 대한 이렇다 할 만한 언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라진 지 적어도 200년 가량이나 된 북한산 순수비 머릿돌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9월16일 비봉 일원에서 문화재청 주최로 실시된다.
머릿돌을 찾는 사람이나 그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문화재보호법 48조에 의거해 문화재청장의 공로패와 보상금이 지급된다.
지금도 툭하면 등반 조난 사고를 일으키는 비봉 산세를 고려할 때, 수백㎏은 족히 되었을 머릿돌을 누군가가 운반해 내려왔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자연적 현상이건, 누군가에 의한 인위적 조작의 결과이건, 머릿돌은 비봉 아래 어느 계곡에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문화재청이 머릿돌 찾기 행사를 16일로 정한 것은 이 무렵에 북한산 순수비의 복제품이 비봉 꼭대기에 안치되기 때문이다. 1972년에 설치한 모조비는 철거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원품을 최대한 살린 복제품이 9월15일 안치될 예정이다.
복제품 제작을 위해 문화재청은 5일에는 3D 시뮬레시션 제작을 마쳤으며, 20일에는 모형 제작에 들어갔다. 총예산 9000여만 원을 들인 복제비는 문화재등록업체인 경록건설에서 제작 중이며, 일단 완성되면 헬기로 비봉으로 이동하게 된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지질학자이자 문화재전문위원인 이상헌 강원대 교수가 비 재질에 대한 분석도 진행했다. 그 결과 중 뜻밖의 사실은 순수비가 북한산 일대에서 나는 암석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북한산 일대가 아닌 어딘가에서 암석을 캐다가 다듬은 다음, 지금의 비봉 일대로 옮겨와 비를 세웠다는 뜻이 된다. 신라 진흥왕이 이 비를 세우는 행사를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했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면서, 아울러 이 비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라는 역사학계의 통설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하는 대목이다.
그보다는 중국대륙을 처음으로 천하통일한 진 시황제가 그 기념으로 지금의 산둥성 태산(泰山)에 올라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에게 아울러 제사한 봉선(封禪)이라는 제사를 거행하고 그 기념으로 산 정상에 비를 세웠듯이, 진흥왕 또한 비봉 꼭대기에서 천지(天地)를 제사한 기념물로서 건립한 것이 소위 북한산 순수비일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상헌 교수의 자문을 중시해, 강화도산 화강암을 재료로 삼아 북한산비를 복원하기로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