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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뭘 하는 걸까?

김민웅의 세상읽기 <258〉

우리의 근대는 제국주의의 위협 앞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비판되지만, 문을 열면 들어오려는 상대가 이 나라를 총칼로 집어 삼키려는 국가였다면 그의 쇄국정책이 마냥 비판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이 아편을 팔아 중국을 혼미하게 하고, 여의치 않자 함포로 중국의 영토를 강탈해간 전쟁의 결말을 보면서 쇄국정책을 국가보위의 전략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건 항복을 뜻하는 정세였습니다.
  
  문제는 '문을 열지 않았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준비 없는 개방의 위험성'이었습니다.
  
  대원군에 맞섰던 개화파 김옥균이 대원군을 적대시하지 않고, 중국에 끌려갔던 그를 도로 데리고 오려 했던 까닭도 내부의 개혁과 대외적 방비가 서로 결합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서양제국의 위력에 눌린 중국과 일본은 각기 다른 방식의 대응을 취했습니다.
  
  중국의 청조는 권력 유지를 위해 서양제국의 협박을 받아들였고, 이에 분노한 중국 민중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저항의 근대사'가 펼쳐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체제의 한계를 절감한 지배계층의 일부가 천황을 통합의 상징으로 삼고 매우 빠르게 국가 개조에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국가와 민중이 일치되어 가는 개혁에 진력합니다. 물론 이는 위에서부터의 강제력이 동원된 방식이었기 때문에 점차 총동원 체제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민중은 얌전하게 길들여져 갔습니다.
  
  중국에서의 저항과 달리 일본 내부에는 '순응의 근대화'가 이루어져 갔고, 이는 마침내 파쇼체제의 등장과 제국주의 전쟁을 거쳐 패전으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일본의 중국학 전문가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는 바로 그 중국의 저항적 근대화의 중심에서 노신을 발견합니다. 노신은 서양의 근대적 진로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에 대해 중국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역시 순응파였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잘 알려진 대로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아시아에서 벌어나 서구의 일원이 되는 것이 일본의 근대라고 이해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서구에서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따른 일본의 지도자들은 최대로 서양의 복사판이 되어 서양의 인정을 받고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서양 제국주의의 똘만이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에는 이러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젠체하는 서양식 근대화 풍조에 딴지를 건 문호 나츠메 소오세키(夏目漱石)도 있고, <근대의 초극>이라는 책을 통해 서양적 근대를 극복하면서 일본의 정체성을 발견하려 했던 히로마츠 와타루(廣松涉)같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이 근대의 문제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초반에 우린 아직도 진로선택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미국이 구축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순응의 논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저항의 논리를 택할 것인가? 그것만으로 우리의 현실을 해결하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복잡해지고, 국제적으로 걸쳐있는 이해가 다양해졌습니다.
  
  물론 저항해야 할 바를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항의 시대를 넘는 전망을 우린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이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에 더하여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도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에 치중해 여전히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한 건 아닐까요? 순응과 저항, 그 사이에서 먼저 우리 자신의 진실을 향해 육박해 들어가는 진지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근대 100년의 역사를 보내면서 우리는 휘둘리기만 하고 정작 자신의 중심을 잡는다는 측면에서는 아직도 만족할 만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입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지금 무엇에 몰두해 있는 것일까요?
  
  민족의 장래와 인류의 꿈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갖지 못한 지도자들과, 공부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세상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도처에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힘이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진정한 능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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