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초 동북아와 중동의 국제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두 차례의 미사일 발사사건이 일주일 간격으로 연이어 발생했다. 하나는 7월 5일 강행된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발사이고, 다른 하나는 7월 12일 대규모 공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다. 북한이 발사한 일곱 발의 미사일은 발사 직후 폭발하거나 동해상의 공해지역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헤즈볼라에게 잡혀간 자국 병사 두 명을 내놓으라며 시작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은 민간인 대량학살과 지상군 추가투입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통상적인 군사실험으로 간주할 수도 있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관련 국가들의 즉각적인 반발과 신속한 제재조치에 직면한 반면, 레바논 남부를 초토화시킨 이스라엘의 불법침략은 국제적인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중단되기는커녕 미국의 묵인 아래 오히려 점차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사건의 성격과 여파가 뒤바뀐 이런 기현상이 냉전체제 붕괴 이후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세계전략과 그 지역적 관철에 따른 결과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상식에 속한다.
'벼랑끝 전술'을 일삼는 북한의 모험주의 때문이든 아니면 이를 빌미로 동북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패권정책 때문이든,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기로 한반도 정세는 급속한 경색국면에 들어섰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예전만큼 우호적이지 않으며, 일본을 앞세워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이끌어낸 미국은 대북 압박을 한층 강화할 태세인 반면, 북한은 금융제재를 먼저 풀어야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며 한껏 버티고 있다. 남측이 쌀과 비료의 지원 유보방침을 밝히자 북측은 장관급 대화 조기종결과 이산가족 상봉 중단으로 응대하는 등 남북관계도 덩달아 싸늘해진 형편이다.
그러나 사태가 마냥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7월 하순 북한의 엄청난 수재가 알려지면서 대북 여론이 조금씩 변화되고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구호사업과 지원활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을 가리지 않는 자연의 재난에 마음을 열고 함께 대처함으로써 떨어진 상호신뢰를 회복하고 현재의 경색국면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레바논 전쟁은 별다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일단 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재의 휴전안은 사태의 온전한 해결책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영토에서 이스라엘군이 모두 철수할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이스라엘 역시 평화유지군이 파견될 때까지 레바논에 자국군을 주둔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휴전이 발효된 뒤에도 이 지역에서 무력충돌이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헤즈볼라의 군사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쟁은 이미 장기전의 국면으로 접어든 지 오래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라크 저항세력을 과소평가하다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미국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최근 동북아와 중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지역갈등과 명분 없는 전쟁의 배후에는 21세기의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는 거대 제국의 존재가 뚜렷하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전파라는 일방적 목표, '평화'를 위해 '전쟁'을 활용하는 무모한 대외정책 등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많은 비판들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명분과 정당성이 있건 없건 간에 미국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무소불위한 폭력을 행사할 충분한 능력과 의사를 갖고 있으며, 그 여파는 아마도 해당지역에 재앙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고, 한반도는 여전히 그 가장 첨예한 현장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미국의 행로와 사소한 선택마저도 향후 한반도 주민의 생존과 복지에 결정적인, 어쩌면 대단히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미국의 패권주의가 동북아의 평화에 잠재적인 위협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 반미노선을 지지할 수는 없다. 미국을 영원한 '우방'이자 믿음직한 '혈맹'으로 간주하는 순진한 친미노선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모든 사회적 불의와 악덕의 원흉으로 간주하는 편협한 반미노선 역시 미국의 현실적인 힘과 영향력을 무시 또는 과대평가하는 비현실적 방책일 뿐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미국이 가진 특별한 위상 때문에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미국은 세계 제일의 강대국 그 이상의 복잡한 의미를 가진 나라였다. 해방 직후 미군정이 시작된 이래 남한 주민들에게 미국은 문명과 선진의 표상이었고,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였으며, 무한한 풍요를 약속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확고한 모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을 비판하거나 찬양하는 '우리'의 정체성조차, 그리고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는 기준조차 미국적인 가치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형성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우리에게 일종의 '상징적 아비'였다. 적절한 거리와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비록 황제도 없고 식민지도 없지만 현재의 미국은 로마제국 이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적 패권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거대 제국은 완성되는 순간 해체되기 시작하며, 제국의 절정은 바로 그 몰락의 시초이기도 했다. 제국의 위기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오만과 무능력에서 비롯된다면, 제국의 몰락은 강력한 외적의 침입이 아니라 내부의 작은 불신과 회의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싯점에서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새삼스런 질문을 다시 한번 제기해보는 것도 적지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 '우리는 미국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 '우리는 제국적 패권의 일부인가 아니면 타자인가' '우리는 미국의 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도 좋을 것이다. 제국의 바깥에서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사회적 상상력과 우리 안의 제국을 제대로 살피는 내적 성찰의 능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 계간 《창작과비평》 2006년 가을호, 머리말을 손질한 글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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