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 격퇴하겠다'는 테러세력의 정체가 막연했을 뿐 아니라 국내외의 비난 여론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는 피를 나눈 부자 간이지만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고 국제 여론을 모아가는 외교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신간 <카우보이들의 외교사>(김봉중 지음, 푸른역사)를 따라 '건국의 아버지들의 시대'부터 9·11 이후까지 미국 대통령들의 외교적 선택을 훑다 보면, 200년이 조금 넘는 미국 외교사가 차곡차곡 정리되기는커녕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냉온탕을 오가듯 달라지는 미국의 스탠스에 실타래가 엉켜드는 혼란마저 느끼게 된다.
'카우보이의 전형'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가 중남미의 패권을 잡기 위해 스페인과의 전쟁까지 불사하는 등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전방위 외교 노력을 기울였다면 후임인 우드로 윌슨(1913~1921)은 '민족 자결주의'를 설파하며 열강들의 땅따먹기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나려 애썼던 모습을 보면서 20세기 초반 외교의 기조를 '팽창주의'로 이해해야 할지, '이상주의'로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진다.
소련 반체제 인사에게 친서를 보내 소련 인권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보이기도 했던 지미 카터(1977~1981)가 물러나자마자 정권을 잡은 로널드 레이건(1981~1989)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힘의 외교'를 펼치는 대목에 이르러선 이 나라의 외교사라니, 도무지 맥을 잡을 수 없어 책을 덮고 싶을 지경이다.
서두에서 저자가 밝힌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미국 외교의 다양성과 복잡함, 그리고 제국으로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어설픔에 혼란스러워진다면 아이러니하게도 필자의 의도는 정확히 전달된 것"이란 고백이 괜한 으름장은 아닌 듯 하다.
미국 외교는 실체를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미국 외교를 특정 이론의 틀에 맞춰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외교 방향을 직접 주도하는 존재는 대통령이지만 그 대통령도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기에 결국 국민들이 관심 없어 하는 외교 정책까지도 여론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책 이곳저곳에서 미국 외교의 흐름을 가급적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군데군데 눈에 띄는 것도 이 같은 저자 나름의 고집에서 비롯된 듯 했다.
정직하게 쓰여진 역사서임에도 관심만 있고 지식은 없는 일반 독자 수준으로 책장을 넘기노라면 막히는 부분이 적잖다. 일반 서술이 길고 에피소드가 적은 탓이 아닐까 싶다. 사진과 지도, 각주 등 관련 자료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성실함이 역동적 서술과 맞물렸다면 좀 더 많은 독자들의 시선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