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이 15일(현지시간) 안보리 15개 이사국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북한은 즉시 외무성 성명을 발표해 "미국의 극단한 적대행위로 인해 최악의 정세가 도래되고 있다"며 "자위적인 전쟁 억지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언론들은 ▲북한을 '감싸오던' 중국이 마침내 북한에 등을 돌린 점 ▲안보리 결의안으로 대북 제재의 첫 걸음이 떼어졌다는 점 ▲북한이 미사일을 또 발사하거나 핵활동을 재개하는 등 상황을 악화시킬 '벼랑끝 전술'을 취할 수 있다는 점 등에 중점을 두고 결의안 통과를 보도했다.
"중국의 외교적 승리"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후에도 '규탄' 대신 '우려'를 표하며 사태의 조용한 해결을 추구했던 중국이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15일 북한을 방문했던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한 채 귀국하는 등 대북 설득이 실패했다는 1차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경고 메지시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은 중국이 이같은 결정을 하게 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더군다나 중국은 지난 6월 말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으로부터 미사일 발사에 대한 사전통보조차 받지 못해 외교적인 '체면'이 손상됐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방법으로 안보리 결의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종 결의안에 찬성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중국이 북한에게 등을 돌렸고 북한은 고립에 빠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압도적인 분석이다.
먼저 이번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보여준 중국의 인내와 적극성은 중국이 대북 제재를 향한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결코 발을 맞추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당초 일본 주도의 초강경 '제재결의안'에 맞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장성명으로 안보리 합의의 격을 낮추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러나 제재결의안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강경 드라이브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한 부분을 삭제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표현을 뺀 '비난결의안'을 추진했다.
이는 만약 미국과 일본이 제재결의안을 고수한다면 중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른 안보리 분열의 책임은 결의안이라는 형식에 동의한 자기네들이 아니라 양보를 몰랐던 미국과 일본에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유엔헌장 7장의 원용을 끝까지 고집했던 일본을 설득해 결국 중국과 러시아의 결의안에 더 가까운 수정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중국은 내용보다는 결의안이라는 형식을 중시하면서 조속한 통과를 바랐던 미국의 입장을 십분 활용하는 '버티기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같은 '인내'와 전략은 '북한을 향해 매를 들었다'는 일부 언론의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향후 계속될 대북 설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결의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에 대한 과거 안보리의 성명에 비해 강도가 낮아 미국, 일본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했다"며 "중국이 국제사회에 일정한 양보를 했지만 기본적인 것은 지켜낸 중국의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중국은 다시 북한에 대해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으니 이제 내 말을 들으라'고 말할 수 있어 대북 영향력을 지켜냈다"며 "이 과정을 지켜본 북한도 일부 섭섭한 마음이 없진 않겠지만 중국에 대해 다시 한 번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북중-미중 관계의 절충
물론 중국 역시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호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만은 사실이었고, 결국 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참여로 '덮어놓고 북한 편만 든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에 대해 중국 전문가인 한신대 이희옥 교수는 미국과의 관계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중국의 정책이 과거처럼 북한의 입장만 대변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
이 교수는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과제가 있는데 국내적인 취약성이 있는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그를 만회해야 했다"며 "특히 대만문제를 '근본이익'으로, 북한문제를 '핵심이익'으로 상정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중관계와 북중관계 모두를 훼손시킬 수 없어 결의안에는 참여하되 대북 제재의 내용은 제외시키는 절충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줄었거나 늘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중국의 프리즘으로 사태를 보는 것"이라며 "북한이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가 핵심 변수"라고 지적했다.
한국, 전화위복 계기로 삼아야
한편 안보리 결의안 통과로 대북 제재의 첫 걸음이 떼어졌다는 것도 성급한 결론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출입과 관련된 제재는 이미 취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번 결의안으로 특별히 새롭게 사용될 제재가 마땅치 않고, 중국과 러시아의 부정적인 견해가 확인된 마당에 안보리 차원에서 추가적인 제재를 취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유의하기로 결정한다"는 결의안의 마지막 문구를 두고 추가 제재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구절은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유의하고 필요한 경우 안보리 차원의 추가적인 행동을 고려한다"는 1994년 안보리 의장 대언론 성명 마지막 구절에 비해 구체성이 떨어져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이번 결의안을 근거로 미국과 일본이 개별적인 제재에 나설 경우 그 정치적 상징성에 있어 북한의 반발을 불러오는 상황은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이 결의안에 반발해 상황을 악화시킬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아직은 미지수다.
일부에서는 "보다 강경한 물리적 행동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북한 외무성 성명을 근거로 북한이 미사일을 또 발사한다거나 핵활동을 재개하는 등의 추가적인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안 통과 과정에서 입지를 굳힌 중국이 6자회담 복귀나 미사일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북 설득에 나선다면 이번 결의안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오는 상황이다.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의 북한 설득도 일단은 실패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한 번에 끝날 것은 아니다. 잠정적인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박순성 교수는 "중국만큼 한국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며 "남북관계에서 예정된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며, 국제사회에서 균형 잡힌 입장을 유지하고 중국과도 긴밀히 협의하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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