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사일 발사라는 카드를 실행에 옮겼다. 이를 두고 북한은 '자위적 국방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훈련의 일부'이며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제사회는 즉각 '북한 위험'을 부각시키면서 다양한 제재에 착수했다. 나아가 미국과 일본은 이 사태를 미사일방어체제의 당위성을 강화하는 구실로 내세웠으며, 그나마 유지되던 남북관계의 동력도 크게 떨어지면서 동북아는 군비경쟁의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선택은 현명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북한은 왜 미사일을 발사했을까? 몇가지 측면에서 추정해보자. 첫째, 미국의 '악의적 무시정책'으로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핵운반 능력을 과시하면서 상황을 스스로 벼랑끝으로 몰고가 국면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는 19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페리 프로쎄스를 통해 미국과 협상했던 경험도 고려됐을 것이다.
둘째, 중미간의 균열대(fault line)를 좀더 넓혀 자국의 입지를 확대하고자 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미사일 문제에서 이익상관자(stake holder)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회피한 채 중국을 활용해 자신의 부담을 줄이는 전략(burden-cut strategy)을 구사해 왔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은 1/6의 지분으로 참여하는 현재의 불리한 6자회담의 틀을 흔들어보려고 한 것이다.
셋째,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한국은 2005년 '경주선언' 이후 미국과 조건부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한미FTA 조기협상에 착수하는 등 흔들렸던 한미관계를 빠르게 복원하고 있다. 반면 남북관계는 해상경계선 재설정, 역사문제, 한미연합사 훈련 등 '근본문제'에 대한 아무 진전 없이 교착국면이 넓게 형성되어 온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6월부터 괌 인근에서 '용감한 방패' 작전을 실시한 데 이어 사실상 북한을 가상적국으로 상정한 채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2006 환태평양' 훈련을 시작한 상황을 환기시키고자 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미사일 국면이 한창 고조되는 동안에도 주변국가들이 '(북한이) 합리적 행위자라면 미사일 발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론에 경도되자 군부의 요구를 수용해 의표를 찔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활은 시위를 떠났다. 하지만 미사일 정국은 북한의 의도대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나쁜 행동에는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북한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아무 일이 없던 것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언급도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현국면을 군비증강과 팽창주의의 호기로 삼고자 하는 일본은 유엔에 대북제재 결의안을 내고 선제공격까지 주장하는 등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 강경책을 내놓고 있다.
한편 중국은 '예방외교'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외교적 체면'을 손상한 뒤로 나름의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북한에 대한 부담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한국정부는 5.31 지방선거 패배 이후 정치적 추진력에 한계를 노출하면서 입지가 더욱 위축됐으며 이로 인해 남북관계의 동력도 제약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감정적 대응보다는 이성적 성찰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위기의 고조는 종종 설계가 아니라 사고에 의해 발생한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서 '대화'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이 말해준다. 물론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대화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통일부 성명처럼 "북한이 그들의 행위로 인해 실질적인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조치를 검토하여 추진"하는 것도 배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부 여론에 떠밀려 인도적 지원이나 대북경협의 축소와 쉽게 연계할 경우 한반도의 긴장은 고스란히 우리의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구나 중국이 미일 경제제재에 참여할 가능성이 적은 상태에서 대북 강경책을 고수한다면 향후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당할 것이며, 이에 따라 남북관계의 냉각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제1차 북핵위기 당시 북미간 제네바합의로 화해국면이 조성됐으나 남북관계는 4~5년간 냉각기간을 거쳐야 했던 선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북 강경책은 동북아판을 흔들어 체제안전을 확보하려는 북한 강경세력의 입지를 확대해줄 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다시 악화시켜 한미관계를 재조정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국제사회는 위기의 고조보다는 외교적 해법에 동의했다. 특히 중국은 "현재의 국면을 긴장시키거나 복잡화하는 행동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유엔의 대북한 제재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한 이미 비공식 6자회담을 제의하고 미사일 발사 이후에도 6자회담의 계기를 살려나가는 외교적 노력을 강조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외교적 해결에 대한 각국의 인식차이는 크다. 그러나 그 핵심은 긴장국면을 협상국면으로 바꾸는 것이다. 강한 사람의 양보는 유연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약한 사람의 양보는 굴복으로 비치는 것이 오늘날 국제관계의 현실이며 북미관계도 이러한 구도 속에서 작동한다.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통해 북한을 회담장으로 강제로 불러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다양한 협상의 통로를 마련하는 현실적 고민이 필요하다. 출구를 마련하지 않은 강경책은 정치적으로는 무책임한 행위다. 상대를 추측하거나 상상력으로 문제를 풀게 될 때에는 해법이 없다. 남북 장관급 회담이나 고위 접촉창구 등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이번 파국은 서로에 대한 가치관과 문법이 달라 예견된 일이었다. 이 기회에 끊임없이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며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일방주의로는 국제관계의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교훈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