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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내 양자접촉'은 해결책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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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내 양자접촉'은 해결책 안돼

<분석> 대북금융제재 풀든가, 북한 불법활동 증거 제시해야

'6자회담 틀 내에서의 양자접촉'
  
  중국과 한국을 방문했던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던져놓고 간 이 말이 6자회담 재개와 미사일 위기 해소의 지름길처럼 비춰지고 있다.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6자회담이 다시 열리기만 한다면 북한이 그토록 원해 왔던 북미 양자접촉도 그 안에서 성사될 수 있고, 양자간 쟁점이 되어 온 금융제재나 미사일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언론들, 특히 주말 동안의 방송들은 힐 차관보의 이 말을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마치 '이런 묘안을 모르고 있었네' 하는 투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6자회담 내 양자접촉'은 너무나 오래된 레퍼토리이고, 별다른 효용도 없었으며, 따라서 미사일 시험발사만 했을 뿐 그 외의 모든 조건들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북한이 그 말 하나만 믿고 6자회담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짚지 않은 채 '6자회담 내 양자접촉'을 무슨 새로운 '도깨비 방망이'인 양 전하는 것은 사태를 균형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할 뿐더러 반북(反北) 캠페인의 근거로나 쓰일 수 있어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결국 그 제안을 받지 않을 확률이 높은데, 그 경우 '미사일 발사라는 '중대범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보인 아량에 응답하지 않는 북한'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간의 입장차이만 확인'하는 양자회담은 해법 안 돼
  
  현재 북한이 어떤 방식의 6자회담이건 받기 힘든 이유는 단 한가지다.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지난 9개월여 동안 외쳐온 '금융제재 해소'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미사일 발사와 상관없이 변함없는 북한의 입장이다.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사일 발사는 6자 회담과 무관하지만, 미국이 최소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동결자금을 풀어야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늘 하는 제안인 '6자회담 내 양자회담'에 대해 북한도 '늘 하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6자회담 내 양자회담'의 효용성도 회의적이다. 그런 방식의 접촉은 실은 그간 있었던 6자회담에서 종종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6자회담이 열렸던 지난해 11월 9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서로간의 입장차이만 확인했다'는 보도 일색이었다.
  
  또 6자회담 내 양자회담을 하더라도 북한이 미사일 사안에 대해서는 대화를 거부할 가능성도 높다. 6자회담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문제를 풀기 위한 다자간 회담 테이블이기 때문이다. '미사일 발사는 6자회담과 무관하다'는 한 차석대사의 발언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표(6일)는 그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논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북한이 '6자회담은 핵문제를 위한 다자회담, 미사일은 양자회담'으로 정식화한 상태에서 억지로 미사일 문제를 넣으려 했다간 6자회담 교착의 또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6자회담 내 양자접촉'이란 형식은 언뜻 보기에 절묘하지만 실제로는 알맹이 없이 공허한 말장난밖에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대화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마리를 주지 않는, 핵심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차석대사는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조미(북미) 양자회담이든, 6자회담이든 회담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며 회담 형식이 아니라 전제조건의 해소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희망사항'만 난무하는 6자회담 복귀 전망
  
  북한이 주장하는 전제조건에 대해 수없이 들어온 힐 차관보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합의하면 관련국들로부터 받는 에너지 지원금만으로도 BDA 은행 제재로 인한 손실액을 채울 것"이라는 묘안을 또한번 제시했다.
  
  노련한 협상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힐 차관보의 이같은 발언을 겉으로만 본다면 설득력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북미 양측이 '경수로 제공이 먼저냐 핵포기가 먼저냐' 하는 핵심 쟁점에서 한치도 물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에너지 지원금'을 받는 시점은 까마득한 미래의 일이 될 게 뻔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진 부시 행정부 내에서 협상파인 힐 차관보의 말은 혼자만의 '희망사항'이 될 가능성도 높다. 북한이 미국에 가지고 있는 엄청난 불신을 고려할 때 그런 말로 북한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시각 역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정부는 북한 수뇌부가 미사일 발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군부 고위층을 물갈이하고 핵·미사일에 대한 전반적인 전략을 재검토한다면 6자회담에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북한의 속성상 설사 고위층을 물갈이하고 전략을 수정하더라도 '뱉어 놓은 말'에 대해 어떠한 변화도 없다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뱉어 놓은 말'이란 '금융제재를 풀어야 회담에 나간다'는 말이다.
  
  중국은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6자회담 앞에 '비공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17일이 시작되는 주에 수석대표끼리라도 만나자고 제안해 놨다. 그러나 '회담 형식은 중요치 않다'는 한 차석대사의 언급을 보면 중국의 제안 역시 별 소용이 없을 듯하다.
  
  이제는 미국이 답할 차례
  
  결국 문제는 금융제재다. 미국이 진정으로 6자회담을 재개하고 그 안에서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풀기 원한다면 금융제재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 그게 없다면 북한을 움직이기 어렵다. 미국이 택할 수 있는 길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따라 금융제재를 일단 풀어주고 회담에 복귀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미사일에 대한 해법을 어떤 식으로 건 찾을 수 있고, 핵심 쟁점인 '선(先) 핵포기'를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명분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북한이 또다른 '트집'을 잡는다면 중국과 한국도 북한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금융제재를 풀 수 없다면 북한이 위조 달러를 제조·유통했고, 마약과 가짜담배를 팔았으며,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BDA 계좌로 세탁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불법활동의 증거를 내놨을 때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더이상 북한을 두둔할 명분을 잃고, 한국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미국은 이제 증거를 대야 한다. 위폐 제조창을 발견했느니 동판을 찾았느니 말만 무성했지 북한의 불법활동에 대해 모든 이들이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smoking gun)'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결국 거짓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기 1개월 전인 2003년 2월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제조했다는 증거라며 제시했던 정도의 자료조차 나오지 않았다.
  
  불법활동의 증거와 관련해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 미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은 지난 6일자 <한겨레> 칼럼에서 대니얼 그래서 재무부 테러자금·금융범죄 담당 차관보를 만났던 일을 소개했다. 글래서 차관보가 해리슨 연구원에게 제시했던 북한 불법활동의 유일한 사례는 1996년 한 북한인이 BDA에 위폐 60만 달러(약 6억 원)가 든 배낭을 들고 온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게 해리슨 연구원을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의 북한 문제 전문가는 "북한이 BDA와의 거래에서 다소 불투명한 회계거래를 했던 것은 사실로 보이나 그 자체로 위폐를 만들었다거나 돈세탁을 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며 "미사일과 핵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려면 우리 정부와 언론도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을 추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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