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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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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41>

잘 산다는 것은...

살다보면 삶이 단조롭고 지루하게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당신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다 떨쳐버리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삶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느낀 당신이 어느 날 올라보지 못한 산에 오르기로 했다고 하자. 처음 가보는 산이니 재미도 훨씬 더할 것이지만, 어려움도 비례하여 클 것이다.
  
  일단 그대가 산 입구에 서면 거기에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은 그대보다 먼저 산을 올랐던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생겨난 길이다.
  
  그대는 산에 오르기 전에 멀리서 산의 정상을 볼 수 있기에 목표는 그 정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산에 들어가 보면 정상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길 옆의 나무들과 개울, 그리고 작은 언덕들을 바라보면서 그 산길을 가게 될 것이다.
  
  어쩌다 산 정상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대가 가는 길은 곧장 그 정상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 또 일방적으로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는 내리막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멀리 돌아간다 싶은 길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심지어는 산 정상과 전혀 반대의 길을 걷는다는 느낌도 들 것이다.
  
  왼쪽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길은 자꾸만 오른쪽으로만 뻗어가고 있다면 그대는 망설일 것이고 더러는 덜컥 겁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그대는 그저 재미를 위해 시작한 산행이 이제 제법 심각해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나온 길에 문제가 없었나 하고 곰곰이 되짚어보기도 할 것이고 혹은 내친 김에 그냥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산 속에서 만나는 모든 길은 어쨌거나 산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거나 아니면 산 입구로 돌아나가는 길밖에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 정상으로의 직선 방향이라고 해서 길이 아닌 숲 속으로 파고드는 어리석음이나 지금부터 스스로 길을 내는 무모함을 범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벼운 산행(山行)이라면 별 탈이야 없겠지만 실은 우리의 인생길도 그 본질은 지금까지 말한 산행과 같다.
  
  우리는 길을 모를 때 그 길의 전모를 일러주는 지도나 로드맵을 찾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길은 지극히 다양해서 어찌 보면 저마다의 길이 주어져있고 또 다른 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로드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길을 갈 때 알아두어야 할 요령 같은 것, 일종의 지혜라고나 할 까, 그런 것을 바랄 수 있을 뿐이다.
  
  필자를 찾아와 자신 앞에 놓인 운명 길에 대해 물어보는 이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운명을 연구하고 또 상담해주는 필자이지만, 그 사람의 전체 로드맵을 줄 능력은 없다.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저 필자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먼저, 그 사람이 자신에게 부합하는 산길로 들어선 것인지 하는 문제, 또 그가 가고 있는 그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나아가서 좀 더 말해준다면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두 갈래 길이 있을 터인데 왼쪽 길이 좀 더 나은 길이라는 조언 정도에 불과하다.
  
  더러 그 사람이 현재 길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면 조금만 더 가면 쉼터가 나올 것이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급한 자에게는 좀 돌아가면 어떠냐고 달래기도 하고, 길이 없다고 느낀 자에게는 그렇지 않고 조금만 더 가다보면 넓은 길이 나올 것이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가장 중요한 얘기가 있다면, 길이 어떤 모습인가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길을 가면서 곁에 피어난 꽃들과 나무들을 구경하는 것이 중요하며, 콧속으로 신선한 산의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즐겁게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하다. 간간하게 비치는 먼 산의 정상은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일단은 그냥 그림으로서 보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방황하기도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길을 떠났으면 그냥 길을 가면 되지 왜 도중에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삶은 누려야 하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삶의 필요조건이고 누리는 것은 충분조건인 것이다.
  
  길을 가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즐겁지만, 주린 배로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동기는 지극히 다양하다. 경제학에서는 이윤 동기를 사업의 가장 으뜸가는 동기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필자가 그간 만나본 다양한 삶의 경우들을 놓고 볼 때 그 동기는 대단히 다양한 것 같다는 얘기이다.
  
  다만 이윤은 그 사업이 이어지기 위한 필요한 최소한의 추동력일 뿐이다. 이윤이 나지 않으면 주린 배로 여행을 할 순 없다는 의미에서의 동력 말이다. 다시 말해 이윤은 먹고 살게 하는 힘이지만, 그것이 사업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사업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변화 자체를 즐기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이 더 많으며, 옷이 좋아서 옷을 만지고 팔고 고객과 대화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옷가게를 하는 사람이 옷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옷가게를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길을 나서고 보니 또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이 어려워졌을 때 사람들은 길에서 방향을 잃고 때론 방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길가의 숲 속에 아름다운 꽃만이 아니라 먹을 열매도 열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점이 온다.
  
  그러면 여행은 즐거우리라. 먹어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세상의 변화를 즐기며 가는 삶, 즉 잘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길을 떠나는가 하는 이유를 실로 잘 설명해놓은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영국 고전문학인 '캔터베리 이야기'의 서막을 장식하는 시(prologue)이다. 이로써 그간 이어온 운명과 길에 대한 이야기들을 마감하고자 한다.
  
  4월의 감미로운 소나기로
  3월의 가뭄을 뿌리까지 꿰뚫고
  꽃피우는 힘을 가진 물로
  온갖 물관을 적실 때
  서풍 또한 감미로운 숨결로
  모든 잔가지 숲과 히이드에서
  부드러운 새싹을 움트게 하고 젊은 태양이
  백양궁(白羊宮)의 여정을 반 쯤 달렸을 때;
  그리고 밤에 뜬 눈으로 자는
  (그렇게 자연은 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작은 새들이 노래 부를 때;
  이 때 사람들은 순례를 가고 싶어 하며
  성지순례자들은 여러 나라에 있는
  먼 이름난 성당을 찾아 낯선 해안을 헤매고자 한다.
  특히 영국의 방방곡곡으로부터
  캔터베리로 사람들은 간다.
  병들었을 때 그들을 도와준
  성스럽고 복된 순교자를 찾아.
  
  (전화:02-419-7250, E-mail :1tgkim@hanmail.net)
  -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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