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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대치선,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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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대치선, 그리고 우리

김민웅의 세상읽기 〈246〉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나온 후지무라 미치오(藤村道生)의 저작 <일청전쟁(日淸戰爭)>은 당시 중국과 일본의 전쟁에 대한 규명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근대사에 대한 역작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책의 부제는 "동아시아 근대사의 전환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이와나미(岩波)문고에서 나온 총 230페이지에 불과한 작은 책이지만 우리의 오늘의 현실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격동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이 지역에 만들어진 세계적 질서의 성격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지무라 미치오는 결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겨 놓습니다.
  
  "청일전쟁은 그 이후 50년에 걸친 일본 제국주의의 중국 전쟁의 발단이자, 1945년 일본 제국주의 패배에 이르는 중일 50년 전쟁의 제1차전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일본은 아시아 전체의 주도권을 놓고 중국과 대결해 온 셈입니다.
  
  고대사로 잠시 눈을 돌리면,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백제가 국가형성의 단계로 들어서면서 왜라고 불린 일본과 한반도는 인연을 갖게 됩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최초의 격돌은 7세기 신라와 당의 연합군과 백제와 왜의 연합군 간의 "백촌강 전투"라고 불린 사건이었습니다.
  
  백촌강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은 한반도에서 일단 물러간 뒤, 율령국가체제를 정비하게 됩니다. 국가적 충격을 수습하는 과정으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 뒤 몽고가 건국한 원이 13세기, 고려를 앞세워서 일본을 공략하면서 일본은 대륙으로부터의 공세에 직면하게 됩니다.
  
  16세기말 임진년의 7년 전쟁은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무리하여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일대 전환을 꾀하려 했던 사태였습니다. 그것은 조선에 대한 지배를 축으로 하여 대륙에 대한 공략을 도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1000년에 걸친 일본과 한반도, 그리고 대륙의 관계는 한반도를 통로로 하여 대륙과 일본의 무력이 서로 격돌하는 양상을 빚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근대사도 그런 각도에서 보자면, 한반도를 중심에 놓고 중국과 일본이 서로 패권을 겨루는 형국이었습니다.
  
  후지무라 미치오가 그의 책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주목하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청일전쟁은 제국주의 세계질서의 형성과정에서 전란의 희생자가 된 아시아 민중들의 저항과 도전이 시작된 과정이었다고 밝힌 대목입니다. 특히 조선민중들의 항전이 동아시아 근대사의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동아시아의 질서는 여전히 불안하기만 합니다. 중국을 상대로 미국과 일본의 전쟁은 이미 시작된 셈입니다. 고대로부터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독자적으로 중국을 상대해 왔으나 이제는 미국과 동맹의 관계에 있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이 와중에 대치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우리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대결의 위험성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전체가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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