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스펙트럼상 리버럴과 라이트는 중도우파와 우파의 위치에 서있다. 라이트는 우파적 속성이 더 많은 '더 우파'이며 리버럴은 상대적으로 적은 '덜 우파'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자유주의를 지향하므로 진보적 자유주의와 보수적 자유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좌파가 허용되지 않았던 한국의 제도권 정치에서 여야 정당을 가르는 기준점도 이곳이었다.
이런 정치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남북 분단뿐 아니라 미국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정치는 리버럴과 보수주의로 나뉘는 구도여서 유럽의 좌파 우파와는 다르다. 리버럴이 한국에서는 진보로 불리지만 좌파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가 있다. 민주당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의료개혁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보수 시민운동단체인 티파티의 운동가들로부터 "당신 소셜리스트지?"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오, 노우! 나는 소셜리스트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몇 해 전 인터넷 서핑하다가 우연히 본 이야기가 기억난다. 어느 미국동포가 서울 거리를 지나다가 종북세력을 경계하자는 구호가 실린 플래카드를 보고 매우 놀랐단다. 그가 주목한 것은 구호의 내용이 아니라 이 플래카드의 아래에 쓰여있는 자유총연맹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런 의문에 빠졌다. "아니, 미국에서 자유는 진보의 것인데 한국에서는 왜 보수단체가 가지고 있지?"
간단한 의문이지만 여기에는 자유가 진보의 것인가 보수의 것인가 라는 심오한 문제가 담겨있다. 어느 미국동포가 무심코 던진 말에서 드러났을 뿐 우리 모두 겪고 있는 일이다. 우리 정치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다음 사례에서 보듯 상반된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유주의가 진보라고 말한다.
덜 우파와 더 우파, 서로 자유는 자기 것이라고 말해
"왜 한국사회에서 진보가 사랑받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유주의를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진보주의가 자유주의를 계승했었다. 그래서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 진보가 확장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 토대를 확보해야 한다." -유시민 "선거연합, 가능한가?" (2011년 3월 프레스센터 대토론회)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만이 진정한 진보의 길을 걸었다. 보수주의도 혁신주의도 자유주의와 같은 길을 걷는 동안에는 진보의 편에 설수 있었지만 자유주의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진보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 순간 예외 없이 인류를 고통에 빠뜨리는 멍에로 작용했다." (2009년 7월 자유주의진보연합 창립선언문 중에서)
2011년 3월에 열린 토론회에서 노회찬이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는 따로 가는 게 좋다고 주장하자 이에 반대하면서 유시민이 위와 같이 말했다. 문제는 유시민의 발언과 뉴라이트 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의 창립선언문의 취지가 너무 흡사해서 구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유가 어느 쪽의 것인지 헛갈린다는 점에서 미국동포가 서울 거리를 지나다가 겪은 혼란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유주의가 진보다"라고 주장한다. 자유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논란은 복잡한 만큼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자유전쟁"은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자유에는 동의하는 완전히 합의된 핵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 다른 중요한 부분들은 모두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아 있다. 자유에 대한 해석은, 이 여백을 진보주의자가 채우는가 아니면 보수주의자가 채우는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르게 도출된다. 바로 여기서 전쟁이 시작된다. (레이코프 자유전쟁 27쪽)
자유의 개념 영역은 워낙 넓어서 진보 보수가 함께 둥지를 틀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유를 두고 벌어지는 개념 쟁탈전이어서 자유전쟁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그 전쟁은 미국에서 이런 식으로 수행된다고 레이코프는 말한다. "진보주의자는 말한다. 보수세력들이 자유를 탄압한다고.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말한다. 우리야말로 자유를 신봉한다고."
미국의 자유전쟁이 태평양 건너 한국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유시민의 발언과 뉴라이트 단체의 선언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차이를 판별해주는 도구를 얻기 위해 멀리 찾아갈 필요는 없다. 정치사상 개론서에 나와 있는 두개의 자유주의로 충분하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가 리버럴과 라이트를 가르는 기준으로 안성맞춤이다. 7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자유의 깃발을 들고 민주화운동을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정치적 자유주의의 진보성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동의어와 다름없다.
신자유주의와 싸우는 자유주의자 장하준
이 두 가지 자유주의의 차이를 현실 속에서 확연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리버럴의 투쟁이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 교수 장하준은 반신자유주의 전사를 자처한다. 그는 비슷해 보이는 두개의 자유주의가 얼마나 치열하게 맞설 수 있는지 보여준다.
▲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 |
장하준은 2010년 펴낸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통해서 신자유주의를 통쾌하게 쳐부수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렇다고 그가 좌파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이 책으로 현대자동차의 포니정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의 수상은 장하준이 좌파가 아님을 "신원보증"해 주는 것과 다름없다. 그는 리버럴이며 그가 공격한 것은 신자유주의 현상들이었다. 그는 자유주의자였으므로 또 다른 자유주의의 어두운 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리버럴과 라이트의 대립은 몇 가지 특성을 갖는다. 장하준의 경우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에서 리버럴이 더 치열한 전투력을 보여준다. 가까이에 있어서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념상의 근접성 때문에 좌파와 우파처럼 구분이 명확치 않아서 이념대립보다 사람간의 대립이 우선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우리사회가 오랫동안 이념갈등으로 피곤함을 겪었던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념적 차이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보니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싸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갈등이 아니라 사람갈등이었는데 이것을 이념갈등이라고 부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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