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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버스 운전사의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화제의 책] 안건모의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목소리'라는 모토를 내건 월간 <작은책>이라는 잡지를 아시는지. 흔히 '일하는 사람들의 잡지'라고 불리는 이 월간지에서는 노동자부터 음식점 주인까지, 평범한 이들이 진솔하게 털어놓는 삶의 희노애락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이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안건모 씨가 그간 <한겨레>와 <작은책>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이 글들은 편집장으로서 쓴 글들이 아니라, 편집장을 맡은 지난 2005년 1월 직전까지 20년간 버스운전사로 일할 때 썼던 글들이다. 책 제목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 얻길"

출판사 '작은책'은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글을 많이 쓸 수록 세상이 더욱 좋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건모 씨도 버스운전사이던 시절 이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서 글쓰기를 새롭게 접했다.

"글은 '배운 사람들'만이 써야 하는 줄 알았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문법을 먼저 알아야 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996년 우연히 월간 <작은책>을 보면서 '아! 우리 같은 노동자도 글을 쓸 수 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글은 일하는 사람들이 써야 하고, 누구나 읽기 쉽게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이 생겨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살아 온 이야기와 일터 이야기를 쓰면서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렵게 살아 왔던 지난 이야기들을 풀어냈고 일하면서, 사업주와 관리자들이 탄압하는 그 유치한 행태를 마음껏 비꼬면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주눅 들고 억눌렸는데, 그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 노동자가 이 세상 주인이라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 '머리말'


이 덕분인지 안건모 씨의 글은 쉬운 우리말로 쓰여져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또 그가 종종 사용하는 입말은 글 전체를 경쾌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읽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쉬운 우리말과 우리 글을 살리면서 글을 많이 쓰게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고가 나거나 말거나' 관심없는 회사"

버스 운전만 20년이면 그야말로 베테랑이다. 하지만 안건모 씨는 버스 운전이 결코 녹록치 않다고 털어놓는다. 여러가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버스 운전사를 가장 고되게 하는 것은 쉴 틈도 없이 몰아대는 버스 운영 체제다.

"오전반 첫차는 일산 종점에서 새벽 5시에 나간다. 그때부터 5분 간격으로 버스가 차례로 나가는데, 오전반 막차가 7시에 나가면 내가 첫차로 노선을 한바퀴 돌고 와서 7시 5분에 두 번째 탕을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차로 6시 40분까지는 노선을 한번 돌고 와야 한다. 그래야 밥 먹는 시간을 한 20분쯤 벌 수 있다. 아니 똥을 누고 자판기 커피 한 잔 뺄 시간이라도 있으려면 밥을 한 10분 안에는 먹어야 한다. 그래야 7시 5분에 나갈 수 있으니까. 그러려면 1시간 35분 안에 노선을 돌아야 한다는 얘기다."
-'첫차'


그렇기 때문에 버스 운전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난폭운전을 하게 된다. "버스 운전사들이 그렇게 빠르게 다니게 되는 건 회사에서 주는 빠듯한 운행시간 때문인데 그 까닭은 단 한 가지, 사업주의 이윤 때문이다. 종점에 쉬는 차가 없고 길거리를 돌아다녀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그 간단한 까닭이다."

만약 운행시간이 빠듯한 것만이 문제라면 시내버스에는 난폭운전은 있을지언정 사고는 잘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스 회사는 버스가 서 버리지 않는 한 고장난 버스를 잘 고쳐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 때문에 갓 입사했거나, 영업소가 바뀌어 자기가 모는 버스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모르는 운전사들은 사고를 내기 쉽다.

"버스 바퀴가 다 닳아서 바퀴를 갈 때는 두 짝을 한꺼번에 갈아야 하는데 대개 버스회사들은 타이어를 아낀다고 한쪽씩 갈아 줄 때가 많다. 그렇게 바퀴를 한 쪽만 갈아 끼우면 균형이 잘 맞지 않아 속도가 좀 붙으면 사시나무 떨 듯 와다다다 떨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장 난 게 모두 곧바로 사고와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당연히 사고가 많이 날 수밖에 없고, 또 바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회사에 차가 고장 났으니 고쳐달라고 하면 부속이 없어서 못 고친다고 한다. 세상에 부속이 없다니! 아무리 버스 회사가 투자를 안 하기로 소문났다 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기사들은 차를 고쳐 달라 사정하다 포기하고 그냥 끌고 다닌다."
-'버스사고'


"운전사들이 내버려두니 회사는 제멋대로"

사고는 사고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고는 버스 회사가 운전사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빌미가 된다. 본래 근무 중 사고는 노동자들이 책임지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회사는 여러가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어물쩡 버스운전사의 책임으로 넘겨버린다.

"회사에서는 요즘 기사들이 사고가 나면 '자부담'이라고 기사한테 물릴 때가 많다. 분명 노사끼리 맺은 단체협약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 기사들이 돈을 물어주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사고가 난 기사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절대 돈 물어주지 마. 아마 회사에서는 가불 처리 해준다고 꼬실 거야. 거기 넘어가지 말고. 일하다가 난 사고는 기사들이 물어줄 책임이 없는 거 아니냐고 따져' 하고 우리 권리에 대해 가르쳐 주고 설명을 해 주어도 기사들이 사무실을 들어갔다 나오면 달라진다. '에이, 그냥 내가 문다고 했어.'

그러고 한다는 소리가 '그거 안 물어주고 버티면서 며칠 더 일 못하면 그게 그거지 뭐' 한다. 맞는 말이지만 자기가 받는 조그만 이익 때문에 노동자들 전체 힘을 빼는 소리다."
-'핑계'
▲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씀, 보리 출판사 펴냄. 2006).

안건모 씨가 동료 운전사들에게 가하는 비판도 매섭다. 안건모 씨는 회사가 운전사들을 마구잡이로 굴릴 수 있는 것은 일단 어용노조가 있기 때문이고 또 자신의 안위 때문에 단결하지 못하는 버스 운전사들의 이기적인 행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조합원들은 알면서도 어용조합을 만들어주니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조합원들은 '나는, 잘못된 건 알아.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해' 하며 핑계를 댄다. 하지만 '먹고 살려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먹고 살려면 그렇게 설쳐야 하나? 그런 조합원들 가운데는 그 쪽 편에 서서 더 열성으로 뛴 조합원도 있었다.

시내버스에서 조합원들이 회사에 빌붙어 아부하는 까닭이 있다. 남보다 좋은 차를 배정받고 싶거나, 집하고 가까운 영업소에서 일하고 싶거나, 회사에 잘 보여 혹시나 사고가 나면 잘 봐 달라고 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다. 그런 조합원들은 대개 꼬투리가 잡히면 강제로 사직당하고 퇴직금과 상여금 따위로 300에서 500만 원쯤 손해보면서 지문이 없어지도록 손을 비벼 재입사한다.

선거가 끝나고 회사는 원당 915번 좌석버스 가운데 일곱 대를 한 탕 더 돌게 만들었다. 조합원들은 그제서야 아이고 내 발등 도끼로 찍었구나 하지만 별수 있나. 더 좆뺑이 쳐봐야 알지."
-'시내버스 조합장 선거'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처럼 반가운 단골 손님들"

하지만 안건모 씨가 사람을 대하는 시선은 언제나 따뜻하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에는 이런저런 활동으로 만나는 동지들과 오랫동안 한 버스를 몰면서 친해진 단골손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안건모 씨는 이들과 쌓은 돈독한 정을 유감없이 내보인다.

"달님이는 내가 길이 막혀 조금 늦게 가면 회사에서 기다렸다 나오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시원한 주스를 사서 주기도 했다. '달님아, 이런 거 왜 사와? 돈도 없을 텐데' 하면 달님이는 그저 환하게 웃었다. 달님이는 3년 넘게 직장을 다니다가 올해 경기도 평택 근처에 있는 연암축산원예전문대를 갔다. 한 2,3일 강의가 없어 오늘 집에 올라왔는데 내 차를 탄 것이다.

우리 회사 차 번호 전체를 외우고 내 차 1774호를 알고 기다리느라 어떤 날은 정류장에서 3,40분씩 일부러 기다리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만났던 수연이, 그 동생 정우. 내 차를 타고 내릴 때 인사를 한 열 번은 하던 현지.

또 조금은 까불까불 하던 미정이.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수연이랑 면회 왔던 윤이. 뚱뚱했던 소영이와 그 남동생. 주유소에 아르바이트를 나가면서 옷차림을 이상하게 해 나쁜 길로 빠질까 봐 마음 졸였던 미숙이. 키가 작아 놀림 받던 덕제. 덕제 동생 은영이….

이제 그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사를 간 아이도 있고 또 졸업을 해서 하나 둘 화전에서 떠나 이제는 우리 147번을 타고 다니지 않는다. 내 차를 타면 그렇게 반갑던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단골손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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