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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이 퍼져 '간장선생'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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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이 퍼져 '간장선생'이 필요한 시대"

김민웅의 세상읽기 〈239〉

1945년 일본의 패전이 임박했던 시기, 섬마을 의사인 아카기는 만사에 간염 진단을 한다고 해서 간장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놀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환자가 있다고 하면 언제든 두 발로 열심히 뛰어 환자를 돌보는 열성을 지닌 의사였습니다.
  
  지난 5월 30일 사망한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 영화 <우나기>로도 유명한 그가 일흔이 넘은 1998년에 만든 영화 <간장선생>의 주인공은 그런 시골 동네 의사였지만, 알고 보면 동경의대 출신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인재였습니다.
  
  일본인들이 전쟁체제에 시달리면서 만성피로와 영양부족 때문에 간염이 퍼지고 있는데, 일본 정부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우려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간염"은 다만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질병으로만 그치는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생체실험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순진한 처녀가 몸을 팔아야 살 수 있으며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현실과 체제 전체에 대한 반발이 만들어 내는 몸과 영혼의 고통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간염에 대한 연구와 치료는 곧 전쟁으로 치닫고 있으나 곧 패전의 참담함이 올지 모를 제국 일본에 대한 고발이자, 그 교정에 대한 절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탈출한 네델란드인 전쟁포로와 함께 현미경의 확대배수를 발전시키는 모습은 국경을 초월한 평화적인 협력이 일구어내는 성취를 상징합니다.
  
  아카기 선생의 옛 친구 하나는 뛰어난 외과의이자 군의관이었지만 전쟁에 대한 혐오로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친구인 승려 역시 언제나 술만 찾는 주정뱅이였습니다. 모두 전쟁이라는 현실에 대한 고뇌 속에서 소극적인 저항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만은 매우 강했습니다.
  
  동네 처녀 소노코는 가난한 집안으로 인해 몸을 팔기도 했으나, 아카기의 병원에서 일하게 된 이후 아카기의 훌륭함에 반해 아버지와 같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모두가 제 살길을 찾기에 바쁜데, 아카기는 언제나 두발로 뛰면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 열정을 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간염연구에 바쁜 나머지, 그만 그는 한 할머니의 죽어가는 현장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간염연구 보다 더 절박한 것은 당장의 환자들을 하나라도 살려내는 일이라고 깨우치게 됩니다. 간염의 원인은 보다 큰 역사의 현실 속에 있었고, 그건 그가 어떻게 다루기 어려울 정도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일본이 핵폭탄의 재앙을 맞게 되는 것으로 이 간염의 진정한 정체를 드러냅니다. 모든 야만의 집합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영화 <간장선생>은 의료영화가 아니라 반전영화였던 것입니다. 일본도 간염에 걸려 있고, 핵을 떨어뜨린 미국도 간염에 걸려 있다는 이 고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미국과 일본이 군사적으로 합체가 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합니다. 간염에 걸린 줄도 모르고 전쟁으로 치닫는 자들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는 일이 없도록 간절히 기원하는 겁니다. 간염이 우리에게까지 퍼지지 않도록 말이지요.
  
  우리에게도 이런 <간장선생>은 계속 필요합니다.
  
  *이 글은 〈프레시안〉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에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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