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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범죄, 절망 사회의 '동전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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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범죄, 절망 사회의 '동전의 양면'

[2012 정책토크] 대한민국 여성, 불안을 말하다 : 절망범죄와 여성폭력

4월 오원춘 토막살인 사건, 7월 통영 초등학생 살인사건, 8월 전자발찌 살인사건, 나주 성폭력 사건, 서산 아르바이트생 성폭행 사건, 여의도 칼부림 사건, 울산 슈퍼마켓 살인미수 사건 …등. 지난 몇 달 간 한국 사회는 연이은 강력범죄에 시달렸다.

곧 강력범죄에 대한 각종 형사대책이 하나씩 거론됐다. 전자발찌 제도 강화, 화학적·물리적 거세 도입, 사형제 존치, 불심검문 부활 등이 차례로 고개를 들었다. '묻지마 범죄'란 단어가 유행처럼 언론 보도를 타고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여성·아동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근절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 왔던 이들은 한마디로 "심정이 복잡하다"고 말한다.

이 복잡한 심정을 나누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18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토론회 "대한민국 여성, 불안을 말하다 - 절망범죄와 여성폭력"가 정동 성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진행됐다.

이 토론회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프레시안이 공동주최한 "'2012 정책토크': 시민사회,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야기하다"의 1부 행사로 마련됐다.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절망 범죄'

이날 토론회는 '묻지마 범죄'를 '절망 범죄'로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함께 시작됐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승자독식의 사회, 사회적 배제와 빈곤이 갈수록 공고화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구조적 벽에 가로막혀 절망하고 좌절하고 있다"며 "최근 잇따라 발생한 묻지마 범죄는 생존 욕구와 사회적으로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가 좌절된 사람들의 분노의 표출"이라고 말했다.

▲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하얀)
그는 "따라서 이런 범죄를 '묻지마 범죄'라고 낙인찍지 말고 '절망 범죄'라고 표현하며 무엇이 그들을 절망시켰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비슷한 관점에서 '자살률 증가'를 주목했다. 그는 "극단적인 범죄 증가추세와 자살률 증가는 동일한 이유를 가진다"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범죄와 자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노인자살률 증가에 주목해야 한다"며 "원기 왕성한 젊은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노인들은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찬진 변호사도 자살과 절망 범죄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이 변호사는 "이들은 범죄와 자살이란 수단을 통해 사회에 SOS(긴급 도움요청)을 친 것이다"라며 "이들의 SOS를 사회가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

하지만 절망범죄에 대한 '호들갑'에 가까운 과잉반응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정춘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장은 "최근 언론에 보도된 각종 범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현실에는 이웃아저씨, 남편, 아버지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이 훨씬 많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가정폭력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성폭력은 매우 심각한 범죄이고, 가정폭력은 사소한 집안사(事)라는 태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각각의 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국회에 설치된 '아동 여성 성범죄 특별위원회'도 오직 성폭력에만 한정해서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폭력, 가정폭력을 분리하지 말고 '여성폭력 근절'이라는 통합된 의제가 국정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며 통합적인 여성폭력 예방책을 주문했다.

"제수 성폭행한 김형태 의원도 제명 안 했는데, 어떻게 믿나?"

현재 정부에서 쏟아내는 관련 대책들은 부처 간 경쟁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춘숙 위원장은 "강력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온 나라의 여론이 들끓고, 법정형을 높이고, 국회에서 공청회 토론회를 열고, 대책을 강구하는 연구용역을 주지만, 곧 이런 관심은 사라진다"며 "그러다 사건이 다시 발생하면 똑같은 과정을 다시 밟는 일이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이번에는 관심이 한 달은 갈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우려를 표했다.

▲ 정춘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장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프레시안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제수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김형태 의원을 제명시키는데도 국회는 실패하지 않았냐"며 "성폭행 처벌 강화를 외치는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믿겠는가"라고 물었다.

김형태 의원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당선 직후 제수 성폭행 의혹이 불거지며 의원직 제명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국회는 김 의원을 제명하지 않았다. 대신 김 의원은 4월 18일 새누리당을 자진 탈당했다.

이수정 교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 기관이 관련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는지 감시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그는 "정부 간담회를 가보면, 각 부처에서 실무자가 자신들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기관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시민·사회가 구체적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고, 그 방안들을 시행하는지 정부기관을 적극 감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음란물, 성폭력 발생 원인 맞나?

이수정 교수는 "음란물은 공격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중학교에서 윤간 사건이 급증하고 있는데, 가해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음란물을 본 후 첫 경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윤간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음란물 제한을 무작정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 시중에 유통되는 음란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력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나영 교수는 포르노 규제가 근본적 대안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포르노가 가진 폭력성은 여성을 성적인 대상물로 생각하는 남성중심 사회의 산물"이라며 "보수진영은 이러한 사회인식과 한 번도 결연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가해자 인권 위해서도 보호 감호제 필요하다"

가해자 인권 보호에 관한 논쟁도 이어졌다. 이수정 교수는 "여타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범죄자 인권보호 문제와 맞물려 아직도 성범죄자 정보공유와 이들에 대한 불심검문 등을 쉽게 결론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하얀)
그는 "범죄자 인권을 고려해 처벌이 아닌 교정·교화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범죄학 분야의 실증적 연구들은 아무리 열심히 교화프로그램을 진행해도 재범률을 약 10% 정도만 감소시킬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는 물론 중요하지만, 과연 이 가치들이 절대적인 개념인지 돌아봐야 한다"며 "전자발찌 가해자인 서진환 같은 사람을 위해서는 한 가정주부의 목숨이 필요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이수정 교수는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 뒤에 보안 처분 등에 의존하며 재활을 할 것이란 기대는 과도한 낙관론"이라며 "보호감호제도에 대해 '이중 처벌'이란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호감호는 사회에서 배제된 범죄 고 위험군을 위한 보호조치이지 자유박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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