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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귀 없는 이명박 시장, 전시성 행사에만 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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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귀 없는 이명박 시장, 전시성 행사에만 급급"

중증장애인들, 서울시청 앞에서 '삭발식'

17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동휠체어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문애린 씨를 만났다. 이날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사흘 앞둔 날이자 중증장애인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한 지 29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 소속 장애인 39명은 서울시청 앞에서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요구하는 삭발을 했다. 이들 외에도 수십 명의 장애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여 명이 모여 삭발식을 지켜보았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같아요"**

문애린 씨도 이날 삭발을 했다.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 어깨까지 닿는 단발머리가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깝죠. 하지만 괜찮아요"라고 다부지게 대답했다. 아무리 머리카락이 다시 날 거라 해도 머리를 완전히 미는 삭발에 긴장될 법도 한데, 삭발을 앞두고 그는 오히려 들뜬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2001년에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의 이동권 쟁취 투쟁을 할 때부터 장애인들과 연대해 왔다는 사회당의 이선주 활동가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하고 담소를 나눴다.

(사진1,2)

문애린 씨는 삭발을 결의했음을 알리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었다. 팻말에는 "중증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시혜와 동정의 시각으로 장애인을 보기 때문에 장애인을 주체성과 자기 결정권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활동보조 서비스가 제도화되면 시혜와 동정 차원이 아닌 장애인의 입장에서 서비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애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바라보게 된다"라고 쓰여 있었다.

문애린 씨는 "활동보조인 제도는 장애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제도는 활동보조인들에게는 직업의 기회를,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활동보조인 제도는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을 계기로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 시작했지만, 지금 장애인 외에 노약자나 임산부 등도 엘리베이터를 잘 이용하고 있지 않느냐"며 "활동보조인 서비스도 중증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되면 차츰 치매노인 등 노약자들에게도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성 행사엔 2억원이나 쓰면서, 활동보조인 서비스 예산은 없다니"**

문애린 씨 외에도 팻말을 걸고 있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28살의 서병석 씨는 팻말에 "평일 오전 2시간 동안 복지관에서 연결해준 '가사 도우미'가 와 도움을 준다. 그러나 가사 도우미가 오지 않는 주말에는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차려놓은 밥을 먹는 정도는 겨우 가능하지만, 스스로 밥을 차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만 먹는다. 나는 주말이 싫다"라고 써 놓았다.

27살의 정수연 씨는 부모님과 함께 이날 서울광장을 찾았다. 정수연 씨의 팻말에는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다행히 부모님 덕에 작년부터 야학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활동보조를 구할 수가 없어 등하교와 야학에서의 활동보조 모두를 부모님이 맡아주신 것이다. 3시부터 11시까지 엄마는 나 때문에 아무 것도 하실 수가 없다"고 쓰여 있다.

정수연 씨의 어머니 김수이 씨는 이날 딸의 머리를 손수 깎아주기로 했다. 김수이 씨는 "딸이 노들야학의 교장 선생님인 박경석 씨와 삭발하기로 약속했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노들야학의 박경석 교장은 "나는 머리카락을 6년째 길러 온 사람이라서 누가 나에게 '삭발할래, 단식할래'라고 물으면 단식을 선택하고 싶을 정도로, 웬만하면 머리를 깎지 않을 생각이었다"면서 "그러나 정수연 씨가 함께 삭발하자고 해서 별수 없이 걸려들었다"고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사진3)

그러나 박경석 교장은 장애인들의 요구를 묵살하는 서울시와 이명박 시장에 대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 15일 바로 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서울시 주최의 문화행사가 열렸다"면서 "서울시는 29일째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은 외면한 채 겉보기에만 좋은 전시성, 일회성 행사를 열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용기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 역시 "지난 15일에 연 일회성 행사에 2억 원이라는 예산을 썼다고 들었다"면서 "중증장애인 보조금 1년 예산에 2억4000만 원만 배정하면서 전시성 행사에 2억이나 쓰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서울시가 예산이 없어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속이 훤히 보이는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활동보조인이 생긴 이후 사회생활이 가능해졌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최진영 씨는 이날 자신의 활동보조인과 함께 삭발식에 참가했다. 그는 "나는 지금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활동보조 서비스라는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이것이 제도화되는 날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진 5.4)

최진영 씨의 활동보조인인 김지영 씨는 8개월째 하루에 7~8시간씩 최진영 씨의 일상생활을 돕고 있다. 그는 "활동보조인은 말 그대로 식사나 화장실 가는 것 등 중증장애인의 아주 일상적인 활동을 돕는 것"이라며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정말 활동보조인이 중증장애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보조 서비스와 자원봉사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그는 "자원봉사자는 봉사하는 사람의 시간대에 맞춰 식사준비 등의 단순한 활동만을 하지만, 활동보조인은 장애인의 일상생활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장애인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서비스를 하는 하나의 직업"이라고 말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공급자보다는 수요자에 초점을 맞춘다는 이야기다.

최진영 씨는 활동보조인을 둔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나는 언어장애가 심해 다른 사람들과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활동보조인이 말을 전해주어 내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답했다.

최진영 씨가 목에 건 팻말에는 "서른살. 처음 전동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했을 땐 힘들었지만 혼자 힘으로 밖에 나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았다. 어머니께 드릴 카네이션을 사는 것. 꼭 한번은 내 손으로 카네이션을 사서 어머니께 선물하고 싶었다"고 쓰여 있다. "어머니께 카네이션을 사드렸느냐"는 질문에 그는 "꼭 한번 사드렸는데, 그 이후 돌아가셔 한 번밖에 사드리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삭발 이상의 투쟁도 불사할 거에요"**

3시 반 쯤 되자 삭발식이 시작됐다. 노들야학에서 활동하는 이승연 씨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은 관리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삭발을 당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머리모양을 선택할 수 있으나 그러한 권리조차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시설장애인들의 억압된 분노, 눈물의 세월까지 담아 몸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삭발식의 사회를 맡은 전장연의 박현 씨는 "단순히 이명박 얼굴 한번 보기 위해 여러분의 소중한 머리카락을 깎아내야 하느냐"고 반문한 뒤 "오늘 삭발은 이명박 시장과의 면담을 넘어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 약속을 받아내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39명의 장애인들이 서울시청을 등지고 일렬로 늘어섰다. 문애린 씨도 그 열의 끝에 섰다. 문애린 씨가 활동하는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함께 있는 다른 활동가들이 찾아와 "겁나지 않느냐", "울면 안 돼"등의 농담을 던졌다. 그는 밝게 웃으며 응대했지만 '바리깡'이 머리에 닿자 금세 표정이 굳어졌다.

삭발식은 순식간에 끝났다. 앞에 놓인 박스에 차곡차곡 쌓이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던 문애린 씨는 "담담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한 심정이네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까 삭발식이 시작되기 전에 무심코 곁에 있던 언니의 손을 잡았는데 그 곱던 손이 노숙농성을 하던 한달 새 손 끝이 갈라질 정도로 거칠어졌더라"면서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밤에는 칼바람을,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노숙을 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저 시청 안에 있는 시장이란 사람은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고 남들 보기 좋은 행사에만 2억 원이나 되는 돈을 썼다니 분하다"고 말했다.

(사진 6,7,8)

39명의 삭발식이 끝나고 마지막 정리발언자로 문애린 씨가 지명됐다. 그는 이러한 자리가 익숙치 않은지 "참 부담스럽다"며 말문을 뗀 후 "우리가 이렇게 삭발까지 하는 것은 집안이나 시설에 갇혀 방치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데서 그쳤지만,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그 이상의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빼기도 안 비치는 이명박은 각성하라"**

삭발식 이후 39명의 중증장애인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종이상자에 담고 서울시청 별관 사회복지과를 항의방문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러나 집회신고 지역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경찰이 가로막아 충돌이 빚어졌다. 장애인들은 경찰들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 2명이 부상을 입고 전동휠체어가 부서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진 9,10)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시청 앞 노숙농성을 앞으로도 무기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들은 장애인의 날인 20일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정하고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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