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의 교도소에는 18만여명이 미결수나 기결수 신분으로 수감돼 있습니다.
그런데 재소자들의 수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가족의 용서, 그에 앞서 가족과의 소통이라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재범을 막는 가장 중요한 장치라고 하는데요. 재소자들이 가족 앞으로 보내는 편지야말로, 그들이 담장 밖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는 유일한 소통 방법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편지들을 모아, 이번에 책이 한 권 나왔는데요. 탤런트 유지인씨가 KBS 3라디오 〈유지인의 음악편지〉을 진행하며 본인이 소개했던 재소자들의 사연을 모아 책을 펴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탤런트 유지인씨를 초대해, 가족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재소자들의 감동적인 사연이야기.. 그리고,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중년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탤런트 유지인씨의 오늘과 어제에 대한 이야기.. 함께 합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탤런트 유지인씨입니다.
유지인씨는, 1974년 영화 〈그대의 찬 손〉으로 데뷔해 7-80년대 한국 영화계를 풍미했던 여배우였습니다. 1979년에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KBS 3라디오 〈유지인의 음악편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유지인씨, 안녕하십니까?
유지인 : 네. 안녕하세요.
박인규 : 제가 탤런트라고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원래는 영화배우셨고 현직은 어떻게 보면 방송 MC이시고요. KBS 3라디오의 〈유지인의 음악편지〉을 진행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유지인 : 한 3년 조금 넘었죠.
박인규 : 그러면 베테랑이시네요?
유지인 : 아니에요. 그래도 항상 설레요.
박인규 : 라디오 MC를 해보시니까 어때요?
유지인 : 라디오는 뭐라고 할까요, 참 즐거워요. 스트레스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74년도에 CBS 기독교 방송에서 〈세븐틴〉이라는 음악방송을 했었거든요.
박인규 : 상당히 오랜 경력이 있으시네요?
유지인 : 네.(웃음)
박인규 : 이번에 나온 책 이름이 〈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라는 책이죠?
유지인 : 〈유지인의 음악편지〉에서요. '새장 속에서도 새들은 노래한다' 라는 코너가 있어요. 그 코너가 작년 3월부터 시작을 했었는데요. 그 코너에서 낭독됐던 편지들 중에서 25편을 엮으면서 뭐라고 제목을 붙일까 했는데 정말 이분들이 '아, 그 전에는 사랑을 못 느꼈고 인정을 못 받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겼구나'..그런 느낌이 와서 〈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렇게 제목을 붙여 봤어요.
박인규 : 제가 며칠 전에 이 KBS 본관을 지나가다가 보니까 출판기념회를 하더라고요. 보니까 노회찬 의원이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던데요. 제가 듣기로는 그 코너, '새장 속에서도 새들은 노래한다' 그 코너가 노회찬 의원이 제의했다고 들었습니다?
유지인 : 노회찬 의원께서 아마 재소자들을 만나면서 느끼셨던 부분이 있으셨나봐요. 이분들이 과연밖에 계신 분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그러면 구치소에서 한, 두 시간 정도는 라디오를 들려 주는 시간이 있대요.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서 나도 인정받을 수 있다..그리고 밖에 계신 분들도 저 사람들이 남의 탓만 하지 않고 내 탓을 하고 살고 있구나..그런 것을 서로 교류하는 것이 어떨까..해서 제의를 했는데 처음에는 저희도 부담이 됐죠. 정말 될까? 그랬는데 정말 좋은 결과가 얻어진 거 같아요.
박인규 : 일단 감옥 안에 있다고 하면 사회의 인식이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그랬을 거 같아요. 그런데 대개 내용들이 그러면 가족들에게 보내는 내용들이 많습니까?
유지인 : 네. 가족들에게요. 아들이 부모님에게 보내는 경우, 또 엄마에게 보내는 경우, 아니면 자식에게.. 사실은 그 자식들은 거의 부모님들이 그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손자, 손녀들을요. 그곳에 들어가서 부모 된 심정과 또 자식 된 심정..이런 것을 토로하면서 내가 정말 뒤늦은 후회지만 앞으로는 더 희망적으로 살겠다..정말 행복하게 살겠습니다..그리고 여태껏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그리고 그 동안에 왜 부모님이 나를 회초리로 키웠는데 몰랐을까? 이제는 깨닫고 있습니다..그런 얘기들이 참 많죠.
박인규 : 비록 한때의 실수로 교도소 안에 있기는 하지만 그분들도 모두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게 아닙니까? 25가지 사연 중에서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면 어떤 사연이 있습니까?
유지인 : 그런데 거의 다 마음에 많이 남는데요. 제가 항상 하는 얘기가 어느 경우에 부모인 줄 알았는데 아, 엄마가 양엄마였다..그런 경우..그랬을 때에 처음에는 엄마에게 부딪치기도 하고 스킨십도 하고 했을 텐데 그것을 알면서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니까..점점 멀어지고 자기만 소외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죠.
박인규 : 말하자면 그렇게 삐뚤어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유지인 : 네. 그러다 보니까..엄마는 학교에 급식도 가고 하는데 엄마가 와도 그냥 못 본 척 지나가다가 엄마가 나중에 도시락에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보지 않고 던져 버렸어요. 그랬는데 어느 날 며칠 되지 않아서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 가셨어요. 그리고 뒤늦게 그 편지를 읽어보니까 정말 사랑하는 사연이 적혀 있으니까..그것을 보고 참 잘못했다, 뉘우친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못했을 때..
박인규 : 그분이 쓰신 편지를 잠깐 읽어주시겠습니까?
유지인 : 안동교도소에 계셨던 안철규 님이 보내주신 사연인데요. 〈내게 당신은 봄이요, 사랑입니다〉중간에 조금만 발췌해서 제가 읽어 드릴께요.
박인규 :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지인 : 어리고 철없는 꼬마였던 제게 오셔서 따뜻한 사랑과 행복,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을 주고 가신 어머니.. 그날 당신이 제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던 날 그 동안 해왔던 모든 일상이 불편해 졌고 저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학교가 끝나고는 집에 돌아오기가 싫어 여기저기 방황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가출 아닌 가출과 이유 없는 반항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늘 그래왔듯이 절 대해주셨고 반항이 깊어질수록 그 사랑과 관심은 더 깊어져 갔습니다. 그럼에도 못난 저는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려 했고 어머니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락을 여는데 잘 익은 계란 반찬 위에 한 통의 작은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언뜻 보아서는 어머니의 편지인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저는 도시락 뚜껑을 닫음과 동시에 편지를 가방에 넣어 버렸습니다. 어머니,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 당신의 마지막 모습.. 꽃들이 만발하던 화사한 봄 어느 날 동네 사람들과 1박 2일로 벚꽃 구경을 가시던 날.. 어머니는 여느 아주머니들처럼 예쁜 옷을 차려 입으시고는 설레는 모습으로 집을 나서셨죠. 하루가 지난 이른 오후..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은 아버지께서는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오열을 금치 못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치우지 않은 식탁을 보면서, 열린 채 똑똑 물이 새는 화장실 수도꼭지를 잠그면서, 어머니의 빈 자리에 대한 쓸쓸함과 그리움에 다시 한번 슬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방을 뒤적여 떨리는 손으로 며칠 전 어머니께서 정성껏 쓰신 편지를 꺼내어 읽어 내려갔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철규야.. 요즘 철규가 부쩍 어른이 된 것 같구나..엄마는 그런 철규가 대견하단다.. 지금은 말할 수 없겠지만 나중에라도 네 마음속에 엄마가 들어 갈 수 있다면 예전처럼 큰소리로 엄마라고 불러 줄 수 있겠니? 엄마는 그때까지 기다리마. 이젠 아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구나. 밥 맛있게 먹으렴. 엄마가..
박인규 :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그런 말도 있고요. 어떻습니까? 그런 재소자들의 사연들을 읽어주시면서 우리가 흔히 알던 이른바 전과자들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잖아요? 많이 달라졌을 거 같아요?
유지인 : 저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어요. 똑같고요. 그리고 오히려 어떻게 보면요. 이 안에 있다 보니까 순백의 마음이 될 수 있구나..왜냐하면 출소하게 되면 사람들이 왜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잖아요. 그렇죠? 그것을 저희가 더 많이 보듬어 주면 그분들이 재범은 하지 않지 않을까..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아이들을 키울 때도 어떤 것을 잘한다~ 잘한다~ 하고 하면 그건 잘한다고 해요. 왜 못하냐~ 못하냐~ 하면 삐뚤어 진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에서 전과자라고 하는 것도 그런 시선 때문에 있지 않나..
유지인 : 잘하려고 해도요. 인정하지 않으니까..사람이 그렇잖아요. 화가 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사실 이 죄가요. 욱해서 생겼더라고요. 그러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전과자..이게 아니었어요.
박인규 : 지금 사연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말씀을 들어보면 상당수가 가정환경..가정환경이 비정상적이라고 할까, 그런 부분들이 사람을 삐뚤어지게 만드는 상당히 큰 요인인 거 같아요.
유지인 : 문제아의 뒤에는 문제의 부모가 있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가정에서 처음에는 사랑을 했는데도 물론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받아들이는 방법도 그렇고요.
박인규 : 저희가 소통이라는 말을 했는데 사실은 대화죠. 말하자면 문제가 있는 가정환경이라는 것은 부모와 자식지간..또 부부지간..이런 것에서 대화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요?
유지인 : 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요즘 가끔 얘기하는 것이요. 표현을 하라고 해요. 마음 속에 담아 두면 어떤 것도 몰라요. 미안하면..그 자리에서 미안해~ 사실 자존심이 어디 있겠어요. 가족간에요.
박인규 : 이런 재소자들의 편지를 듣는 일반 청취자들 그런 분들의 어떤 반응 같은 것은 들어 보셨습니까?
유지인 :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정말 그분들은 저희와 다른 상황에 있는 분들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군요, 똑 같은 사람이었군요, 그리고 그분들을 보면서 일상에서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저희도 느껴야겠군요..
박인규 : 다만 환경이 나빴을 뿐이다?
유지인 : 네. 맞아요.
박인규 : 지금 하시고 계신 3라디오가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전문 채널이라고 들었습니다. 3년 동안 계속 하시다 보면 여러 가지 듣는 것도 많으시고 경험도 많으실 거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이 3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면서 어떤 것을 느끼셨어요?
유지인 : 저희 프로에 〈아침 우체통〉이라는 코너가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이요.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고요.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굉장히 오히려 더 우애가 돈독하고요. 우정이 더 쌓여 가는 것 같고요. 조그만 일에 이분들은 감사를 해요. 누가 그래요. 어딜 밖에 나가다가 거름을 밟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분들이 느끼는 것은 우리가 평상시에는 "에이, 또 밟았어.." 이러는데 그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라 "밟을 수 있는 발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항상 그런 것을 접할 때마다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박인규 : 생각하기 나름이다, 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유지인 : 네.
박인규 : 〈유지인의 음악편지〉가 3라디오라고 했는데 혹시 차제에 들으시는 분들을 위해서 주파수가 어떻게 되죠?
유지인 : KBS 3라디오 〈사랑의 소리〉 방송인데요. FM이 아니라 AM이에요. 그래서 639khz이거든요. 그래서 서울과 지방이 조금은 다른데요. 주파수가 조금 잡기는 힘드시기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애청을 해 주세요.
박인규 : FM은 없습니까?
유지인 : 네. FM은 없습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 장애인이 전체 인구에 10%가 넘는다고 하는데 장애인을 위한 FM 정도는 하나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유지인 : 맞아요. 그리고요. 장애우들을 위한..특히 시각 장애우들을 위해서 신문을 읽어주거나 그렇게 소리로 들려주는 방송이 참 많거든요. 그럴수록 정말 맑아야 하는데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유지인의 음악편지〉는 몇 시에 합니까?
유지인 : 아침 8시부터 9시까지입니다.
박인규 : 중파 639khz..아침 8시부터 9시까지..〈유지인의 음악편지〉 앞으로도 계속 이 방송을 하실 거죠?
유지인 : 네. 그렇죠.
박인규 : 이 방송을 계속 하시면서 재소자 편지까지 소개하시고 진행하고 계신데요. 앞으로 어떤 소외계층..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내가 해보고 싶은 일..방송이든 일이 됐든 그런 것이 있으십니까?
유지인 : 그런데 저희가 봉사라고 하면요. 굉장히 사람들이 커다랗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조그마한 것부터 시작하시면 될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제가 가진 것..이런 것 보다는요. '아, 내 가 가지고 있는 게 뭘까, 내가 가지고 재능은 뭘까..'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이런 재능 봉사인 거 같아요.
박인규 : 저희 프로그램에 탤런트 정애리씨가 한 번 나오셨어요. 달란트라고 하나요? 탤런트와도 비슷한데..이 달란트를 나눠주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앞으로도 계속 활약해 주시길 부탁 드리고요. KBS 3라디오는 제가 보기에는 FM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유지인 : 네. 많은 도움 부탁드릴께요.(웃음)
박인규 : 방송위원회라든가, KBS에서 힘을 쓰시면 되겠죠.
유지인 : 네.(웃음)
박인규 : 지금부터는 유지인씨 개인에 대한 말씀을 나눠볼까 합니다.
유지인 : 갑자기 두려워 지네요.(웃음)
박인규 : 저와 연배가 비슷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영화 많이 찍으셨죠?
유지인 : 한 50여 편을 찍었죠.
박인규 :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라고 해서 제 2의 트로이카 시대이다..라는 말들도 했었는데요. 그 당시에 세 여배우간에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했을 거 같아요?
유지인 : 그런데 저희 셋은 참 즐거웠어요. 왜냐하면 셋 모두 독특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것은 저 사람이..저 사람이 할 것을 내가..이것이 아니라 서로 각자의 맡은 부분에서 열심히 했고 오히려 더 윈-윈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박인규 : 자주 어울리시기도 했습니까?
유지인 : 그렇죠. 저희가 셋 모두 동양방송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요.
박인규 : 요즘도 가끔 보세요?
유지인 : 그냥 지나가다가 아니면 어떤 모임 자리에서 보는데요. 굉장히 반갑죠. 그리고 덕분에 그 70년대, 80년대가 즐거웠었죠.
박인규 : 연극영화과에 출강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유지인 : 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겸임교수로 나가고 있어요.
박인규 : 요즘 신입생들은 그때 태어나지 않은 친구들도 많고 유지인씨가 왕년에 그런 톱스타였다는 것을 대개들 알고 있습니까?
유지인 : 아니에요. 잘 모르죠. 지금 저는 3~4학년을 맡고 있는데요. 부모님들이 말씀하신대요. 그러면서 아, 옛날에..라고 말씀하신다면서.."학번이 어떻게 되세요?" 그러면 "알 거 없다, 그냥 엄청난 선배다.."이러죠.(웃음)
박인규 : 유지인씨 아버님이 군인이시더라고요? 기갑부대 여단장을 하시고 대령으로 예편하셨다고 들었는데 지금이야 젊은 친구들이 전부 꿈이 연예인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랄까, 썩.. 아니었던 거 같아요?
유지인 : 썩이 아니라 굉장히 반대하셨죠.
박인규 : 어떻게 그런 반대를 뚫고 계속 탤런트도 하시고 영화배우도 하셨습니다?
유지인 : 그런데 저희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할 일은 자신이 하자..이렇게 하셨기 때문에요. 가는 것은 반대하셨지만 "네가 맡은 일은 네가 충실히 해야 한다.." 라고 하셔서 가끔은 걱정이 되셔서요. 그때는 짚차를 타고 양쪽에 항상 총을 차고 다니셨잖아요. 계엄령도 있고 많았기 때문에..그래서 가끔 느닷없이 닥치시죠.
박인규 : 닥치신다는 게 촬영장에..?
유지인 : 촬영장에요. 우리 딸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웃음)
박인규 : 아버님이 보시고 그러시면 부담되거나 그러시지 않으세요?
유지인 : 그런데 워낙 제가 넘어져도 꼭 "아버지~" 하고 넘어지는 아이들이 있죠. 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하는 딸..
박인규 : 아버님이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지인 : 네. 돌아가셨어요. 89년도에요.
박인규 : 오래 전에 돌아가셨네요. 아버님이 유지인씨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유지인 : 거의 사각의 틀 안에서만 키우셔서요.
박인규 : 워낙 군인이라는 분들이 규율이 강하신 분들이니까요.
유지인 : 그래서 아침형 인간이죠. 새벽 6시면 일어나야 하고 기상 나팔소리에..그런데 지금도 그래요.그리고 저녁 10시 정도면 통금이 있었고요. 영화 촬영을 할 때는요. 꼭 항상 지키고 계셨죠. 그리고 새벽 4시에 촬영을 가도 아침을 꼭 먹고 가게 하셨어요.
박인규 : 자기 절제라고 할까, 규율을 확실히 몸에 베게 하셨군요.
유지인 : 네. 저에게 저는 굉장히 철저하죠. 지금도 그런 거 같아요.
박인규 : 한 50편의 영화와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셨는데요. 굉장히 대중들의 인기를 누린 것도 있고, 대중들의 외면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본인이 애착이 가는 작품은 따로 있을 거 같아요? 혹 시 꼽으라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유지인 : 제가 참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좀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떤 시대가 변하면서 그 이슈에 맞춰서 한 영화들도 많은데요. 제가 79년도 대종상을 탔던 〈심봤다〉 가 물론 가장 기억에 남을 거에요. 왜냐하면 고생도 많이 했고 또 설악산에서 거의 살다시피 죽을 혼을 다해서 찍었던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데요. 한동안 지금은 버스 차장이 없지만 옛날엔 있었죠. 안내양..그들의 애환을 담은 〈도시로 간 처녀〉 같은 영화가 있었고요. 또 한동안 소외계층에서 물러나서 산을 타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 〈메아리〉라는 드라마도 있었고 또 지금은 성형들을 굉장히 많이 하지만 그런 70년대에는 성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었는데요. 성형 중독이 됐던 〈성형미? 이런 영화도 있었고요. 나름대로는 다양하게 했죠. 왜냐하면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면서 그래도 연극학도로서 무언가 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에..
박인규 : 지금이야 〈왕의 남자〉다..뭐다 해서 한국 영화가 그야말로 큰소리를 뻥뻥 치고 있지만 70년대는 사실은 저도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닐 때 주로 한국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그리고 외국 영화를 수입하기 위해서 억지로 한국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요. 그 당시 영화계를 생각하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본인이 활동하실 때의 영화계와 지금과는요? 물론 격세지감을 많이 느끼시겠지만요.
유지인 : 글쎄요.(웃음) 그때 저희는 일에 쫓겼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많이 할 겨를은 없었죠. 영화하랴, TV 드라마 하랴..
박인규 : 요즘 영화가 말하자면 한국을 선도하는 문화산업의 첨단..이런 것을 보시면서 '나도 다시 한번 영화를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은 안 드세요?
유지인 :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박인규 : 그런데 혹시 출연섭외가 안 들어옵니까?(웃음)
유지인 : 그런 거 같아요.(웃음) 이 방송을 들으면 아마 출연 섭외를 하겠죠.(웃음)
박인규 : 약간은 시사적인 질문이기는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스크린 점유율이 60% 정도라고 나오는데요. 스크린쿼터 가지고 영화인들이 많이 싸우고 있거든요. 어떤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스크린쿼터 축소에 관련해서요.
유지인 : 그런데 저도 그것이 사실 오래 전부터 80년대부터 이어져 내려왔어요.
박인규 : 그때도 그런 말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있었는데 유명무실 하다고 들었습니다.
유지인 : 네. 그러면서 지금 많이 떠오르는데요. 사실 영화를 잘 만들어도요. 극장에서 걸리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박인규 : 유지인씨는 제가 지금 봐도 굉장히 조신한 스타일인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그런 역할을 많이 하셨는데요. 실제 성격은 아니라고 하던데요?
유지인 : 누가 그런 모함을 할까요?(웃음)
박인규 : 실제 성격은 털털하고 터프하고 화통하다고 하던데요?
유지인 : 네. 연기는 연기일 뿐이고 제 성격은 조금 그렇지는 않아요. 좀 밝고 명랑하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오늘 너 때문에 많이 웃었어.." 그러면 오늘 임무 완수!
박인규 : 최근에 아직 연배로 봐서는 엊그제에 신상옥 감독께서 돌아가셨지만 최은씨 같은 경우는 아직 최근까지도 영화를 쭉..그야말로 일생이 영화였다는 말씀도..
유지인 : 얼마 전에 뮤지컬도 하셨잖아요. 예술의 전당에서..
박인규 : 지금은 방송 MC만 하고 계신데 혹시 다른 계획은..?
유지인 : 아마 5월 정도면요. 〈솔저 패밀리〉 라는 드라마를..작년 겨울부터 사전 제작하겠다고 했었는데 계속 미뤄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군인 역할로 여러분들을 뵙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드네요.
박인규 : 〈솔저 패밀리〉라는 것이 TV 드라마 입니까?
유지인 : 네. TV 드라마에요.
박인규 : 그 드라마에서 맡으신 역할이..?
유지인 : 군인 대령이에요. 저희 아버지 역할을 제가 드디어 맡게 됐습니다.(웃음)
박인규 : 군인 역할을 혹시 처음 해보시는 게 아닙니까?
유지인 : 제가 고등학교 때요. 1일 입대 같은 것도 해보고요. 저는 어려서부터 사실 군에서 많이 있었죠. 전곡에서부터요 진해까지..안 가본 곳이 없어요.
박인규 : 거의 생활로 하시겠네요?
유지인 : 그렇겠죠.
박인규 : 이번 연기가 얼마 만에 하시는 거에요?
유지인 : 1년 정도요. 제가 KBS에서요. 〈금쪽 같은 내 새끼〉가 끝난 지가 한 1년 반 정도 됐거든요.
박인규 : 젊었을 때 2~30대에 히로인으로 여주인공으로 나왔을 때의 연기와 나이가 드시면서 조연같은 역할을 하시면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유지인 : 차이는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어떤 역할이든 간에, 그 부분에 꼭 필요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에요. 단지 중추적인 역할을 얼마만큼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인데요.
박인규 : 약간은 유치한 생각일지는 모르지만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주인공을 하다가 주인공을 젊은 사람들이 하고 그러면 약간 시샘 같은 것은 안 느끼세요?
유지인 : (웃음) 그러면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죠.
박인규 : 얼마 전에 저희 프로그램에 펄시스터즈의 배인순씨가 나오셔서 말씀을 나눠 봤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여쭤봤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그랬더니 이분이..저는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
유지인 : 네. 정말이에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여라." 라고 저도 그런 얘기를 참 하고 싶어요.
박인규 : 사랑이라는 것이 가족간의 사랑도 있지만 이 사회의 어떤 소외된 재소자라든지, 장애인이라든지, 그런 분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하더라고요.
유지인 : 그렇죠.
박인규 : 앞으로 〈유지인의 음악 편지〉를 통해서 좋은 일 많이 해 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 드립니다.
유지인 :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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