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끝난 프로배구 챔피언 결정 전에서 현대캐피탈이 11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습니다. 현대의 우승은, 삼성화재의 9년 독주를 끝냈다는데 그 의미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는데요. 삼성의 독주를 끝내고 팀을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은 바로, 현대캐피탈의 김호철 감독인데요. 선수시절, 대한민국, 아니 아시아 최고의 세터로 명성을 날렸고,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해 최고의 선수, 최고의 감독으로서 화려한 배구인생을 보냈던 김호철 감독..고국에 돌아와서도 다시 한번 지도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삼성화재의 독주 우승을 무너뜨리고 배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을 초대해 그의 "배구 인생" 함께 들어 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김호철 감독입니다.
김호철 감독은, 1975년 배구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단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구선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지난 78년 이탈리아 세계 배구선수권 대회에서는 주전 세터로 우리나라를 4강에 끌어 올렸으며, 그 이후 이탈리아 프로 리그에 진출해, 선수와 감독으로 맹활약을 벌여, 대한한국의 이름을 빛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년 전 한국에 돌아와 현대캐피탈의 감독을 맡았으며, 이후 챔피언 결정 전에서, 11년 만에 우승컵을 되찾아 온 주인공이 됐습니다.
박인규 : 김호철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김호철 감독 : 네. 안녕하세요.
박인규 : 우선 축하를 드립니다.
김호철 감독 : 감사합니다.
박인규 : 저는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아마 김호철 감독께서는 굉장히 후련하다..그런 것을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때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김호철 감독 : 굉장히 많이 긴장을 했었는데요. 많은 것도 생각이 났었고, 또 순간적으로 뭐라고 할까요, 멍~해지는 기분도 있었고요. 여러분들께서 많이 속이 시원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은 삼성의 9년 동안의 독주체제에서 이제는 벗어났다는..그런 모든 분들의 바람이 아니었나..생각합니다.
박인규 :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김호철 감독 : 그렇죠.(웃음)
박인규 : 대개 우승을 하면 구단에서는 선물이랄까요, 보너스 같은 것도 주던데 감독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까?(웃음)
김호철 감독 : 글쎄요. 아직까지는 그런 얘기는 못 들었고요. 평상시에 구단에서 많이 지원을 해 주시고요.그리고 또 지금은 우리 그룹의 일이 문제가 좀 있어서 가능하면 지금 조용조용하게 지내야 하지 않나..생각합니다.
박인규 : 운동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징크스가 있더라고요? 어떤 분은 장의차를 보면 이긴다던가..하는 것들이 있던데요. 김호철 감독에게도 어떤 징크스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호철 감독 : 저는 선수 시절 때는 시합을 나갈 때 유니폼이나 옷을 갈아 입을 때는 항상 왼쪽부터.. 왼쪽 발부터 먼저 신는 그런 버릇이 있고요. 징크스보다는 그런 버릇이 있고요. 그렇게 크게 선수 생활을 하면서 징크스나 이런 것은 느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제가 듣기로는 구단 버스 운전하시는 분의 뒤통수를 치면..
김호철 감독 : 항상 시합을 하러 내려가기 전에 우리 구단 버스 운전을 하는 오기사라고 있는데 뒤통수를 툭 때리고 가는.."이기고 올께.."라면서 가는 그것이..그래서 항상 제가 때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죠.(웃음)
박인규 : 어쨌든 3년 안에 우승을 하겠다..라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시기에는 이른바 삼성의 9년 아성을 깨는데 어떤 요인이 가장 주효했다고 보십니까?
김호철 감독 : 제가 횟수로는 3년이죠. 2003년 11월에 와서 한 달 만에 겨울리그를 치뤘었고요. 처음 와서 선수들을 봤을 때는 선수들의 신장 면이나 또 선수들이 가능성은 있는데 뭐라고 할까요, 선수들이 아직까지 준비가 되지 않는 선수들..그래서 적어도 선수들의 정신 개조를 하는데 일년은 걸릴 것 같고, 또 선수들의 기술을 요하는 것도 일년이 걸릴 것 같고..그래서 제가 3년을 잡았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그 3년 안에 그것을 이루게 되어서 실없는 그런 소리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승을 하셨기 때문에 다른 말은 없겠지만 1차선 5세트에 14:12로 이기다가 내리 4점을 주고 졌을 때는..저도 나중에 녹화로 봤거든요. 감독입장에서는 정말 속이 탔다고 해야 할까요, 어떠셨습니까?
김호철 감독 : 끝난 그 순간 이겼다는 생각을 먼저 했었고요. 14:12가 되었을 때 '아, 이제 1차전을 이기면 보통 90~100% 정도는 이길 수 있다..' 그래서 작년에도 1차전을 거의 다 이긴 게임을 놓쳤기 때문에 올해도 이 게임이 다시 뒤집어 지나..하는 멍한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갑자기 14:12에서 4점을 주면서 뒤집어 지면서 순간적으로 어떻게 할까..가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멍~하게 10분 동안은 탈의실에서 그냥 앉아서 계속 생각만 했었는데 그 순간 어떤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누가 주는..하늘에서 주는..마의 그런 것이 아닌가..그래서 이것을 딛고 일어서야만이 우승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수들에게 '이 것이 좋은 기회가 되겠다..이 기회를 우리가 잡아서 이것이 가슴 아픈, 또 그리고 가슴 쓰라린, 약 오르는 이런 것을 우리가 넘어서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다..'
박인규 : 선수들을 혼내시지는 않았습니까?
김호철 감독 : 그 순간에는 선수들에게는 큰 소리도 쳐 보지 않았고요. 순간적으로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그 '14:12에서 감독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었고요.
박인규 : 저 같으면 어떻게 4점을 내리 주느냐고 혼냈을 것 같은데..(웃음)
김호철 감독 : (웃음) 그런데 그 순간 선수들은 오히려 저보다 더 안타깝고 힘들어 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선수들에게는 어떤 새로운 기분 전환을 위해서 다른 말을 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더라고요. 그래서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면서 '이런 것을 계기로 삼아서 나머지 게임을 더 하자, 그래서 삼성은 앞으로 두 번을 이기면 되지만 우리는 삼성이 두 번 이기기 전에 세 번만 이기면 된다, 바뀐 것은 그것 밖에 없다, 그러니까 열심히 하자..' 라고 하면서 선수들도 눈물을 머금고 1차전을 끝냈는데요. 그 이후로 선수들이 굉장히 단합하고 또 코트장에서 잡아 먹을 듯이 달려 드는 그런 눈빛을 봤을 때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인규 : 그 뒤로 연이어 두 게임을 이기시고 4번째 게임에도 세트를 이기시다가 또 지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와. 참 대단하구나..라고 해서 5차전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그랬었는데 5차전 마지막에 임할 때는 선수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김호철 감독 : 4차전이 끝나고서는 굉장히 화가 났었습니다. 화가 나서 선수들에게도 상당히 큰 소리로 선수들을 나무라기도 하고요. 또 그 날 저녁에 재방송 되는 것을 제가 봤는데요. 그 역시 보면서 '아, 나에게도 실수가 많았구나..' 너무 이기고자 하는 생각이 앞서서 순간순간의 선수들이 힘들어 할 때 그것을 도와주지 못하고 너무 다그치고 그런 것이 보이더라고요. 그 다음날 선수들에게 '마음을 비우자..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 다한다면 승산은 있을 거 같다..그래서 시합을 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그것에 만족하자..'
박인규 : 이번 챔피언 결정전에서 여러 선수가 활약을 했지만 MVP가 된 미국인 숀 루니 선수가 상당히 큰 활약을 했어요. MVP가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고요. 그런데 그 선수를 스카우트를 할 때 김호철 감독이 상당히 어떻게 보면 모험을 하시고 '내가 책임을 지겠다..' 이렇게 하셨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해서 하시게 된 겁니까?
김호철 감독 : 사실은 용병 수입을 이태리에서 해 오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가 조금 이태리 리그에서 문제가 있었고 또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갑자기 선회를 하게 됐는데요.
박인규 : 말하자면 대타인 셈이군요?
김호철 감독 : 네. 대타로 숀 루니 선수를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었는데요. 그런데 숀 루니 선수에 대해서는 제가 그렇게 잘 몰랐었고요. 그래서 비디오 테잎을 보고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인데..키가 2m 6cm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요. 그리고 저희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은 레프트 쪽인데 삼성의 김세진 선수와 장병철 선수를 잡으려면 키가 큰 선수라야만 잡을 수 있다..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기량은 전혀 보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회사에서 단장님과 같이 비디오를 보면서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리셨는데 제가 그 자리에서 '내가 책임을 지고 하겠다, 못한다면 키워서라도 하겠다, 그러니까 나를 믿고 스카우트를 하자..'라고 해서 스카우트가 된 거죠.
박인규 : 결과적으로는 성공을 하셨네요?
김호철 감독 : 네. 결과적으로는 저희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었는데요. 또 저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더 이태리에서 수입한 선수들보다는 더 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과의 우정과 경쟁이 굉장히 화재가 됐는데요. 이번에 주제어가 "미안하다, 친구야" 라는 말씀도 쓰셨고요. 신감독과는 40년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인연이 어떻게 되십니까?
김호철 감독 : 신감독과는 초등학교 때 서로 알게 됐고요.
박인규 : 같은 학교는 아니셨습니까?
김호철 감독 : 네. 같은 학교는 아니었고요.
박인규 : 그때부터 같이 배구를 하시면서 아시게 된 겁니까?
김호철 감독 : 네. 그때 배구를 하면서 알게 됐고요. 그리고 신감독은 부산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마쳤고 저는 서울로 와서 운동생활을 했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같은 선수였다는 것만 알았고요. 대학도 신감독은 성균관대를 나오고 저는 한양대학으로 가고요. 그러다가 78년도에 군입대를 하면서 같이 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군입대 같은 동기죠. 9명이 같이 갔었는데..
박인규 : 그러면 배구도 군대에서 같이 하셨군요?
김호철 감독 : 네. 그러다가 저는 외국으로 나가고 신감독은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지도자 생활을 했죠.
박인규 : 배구의 인생을 보면 사실은 선수 시절의 명성을 따진다면 신감독님은 사실은 김호철 감독에 가려져서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었는데 감독이 되신 다음에는 9번을 우승시키시면서 굉장히..
김호철 감독 : 그렇죠. 새로운 인생을 지도자로서 꽃 피운 신감독인데요. 저는 사실 같은 배구를 할 때는 사실 신감독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요. 그래서 굉장히 뭐라고 할까요, 우리가 명장이다..삼성이 9연승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어떤 지도력이나, 어떤 능력이 없이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박인규 : 같은 감독으로서 신치용 감독의 어떤 강점이랄까, 배워야 할 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김호철 감독 : 신감독은 굉장히 승부사 기질이 있는 그런 감독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굉장히 좋은 면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또 어떤 면으로 보면 이기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 하는 그런 승부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감독입니다.
박인규 : 어떻습니까? 이번에 삼 세번 만에 이기기는 하셨지만 작년, 재작년에 지셨을 때는 속을 끓이시던 것도 있으셨을 텐데요. 그때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김호철 감독 : 글쎄요. 가장 제가 참 힘들어 했고 또 어려웠던 점은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보통 면에서 스타들이 스타감독이 될 수 없다..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스타가 스타감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가 운동생활을 했을 때에 스타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지, 과거의 명성만 믿고 있었지 어떤 연구라든지, 사실 지도자는 선수와는 전혀 다릅니다. 지도자 생활을 저도 처음 해봤습니다만 사실은 6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했었는데요. 일주일 동안 선수들을 가르치고 나니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는 거에요. 레퍼토리가 항상 그것이 그것이고, 레퍼토리가 없어서 굉장히..'아, 그래서 이것이 정말 경험이 필요하구나, 이것이 진짜 노력이 없이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정말 지도자로서의 가져야 되는 잘 가르치는 것만은 아니고요. 지도자로서의 사람을 어떻게 다스릴 줄 알아야 하나..이런 것과 또 선수들의 심리상태라든지, 기술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갖추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공부를 제 나름대로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김호철 감독의 별명이 '코트의 카리스마' 이 말은 멋있는 말인데..'독종'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을 보니까 독종 같지는 않으신데 어떻게 해서 독종이라는 별명도 가지시게 되셨습니까?
김호철 감독 : 사실 제가 운동할 때는 저도 성격이 남에게 지고는 못사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지면 밤새도록 잠도 안자고 연습도 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생각도 하고 연구도 하고 더군다나 제가 키가 크다면..
박인규 : 제가 알기로는 키가..
김호철 감독 : 176cm입니다.
박인규 : 배구선수로서는 작은 거죠?
김호철 감독 : 네. 그래서 키가 크면 배구하는데도 참 쉽게 할 수도 있었는데 키가 작은데다가 키가 작은 사람이 해야 되는 그런 어려움이라든지,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사 기질이 생겼고요. 그것에 진짜 연습만 할 줄 아는 연습 벌레가 됐었고요.
박인규 : 최근에 언론 보도를 보니까 한 팀이 계속 우승하는 배구계는 재미가 없다, 여러 팀이 경쟁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부분도 있고, 또 언론보도에는 앞으로 3년 간은 현대캐피탈이 독주할 것이다..그런 말씀도 하셨는데요. 어떻습니까? 앞으로의 몇 년 전망을 어떻게 하십니까?
김호철 감독 : 글쎄요. 지금 현재 현대의 전력으로 보면 제가 볼 때는 2~3년 동안은 무난하게 우승을 할 수 있는 그런 전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매 경기에 전력질주를 하면요.
박인규 : 내년엔 다시 삼성화재 쪽에서 도전해 오지 않을까요?
김호철 감독 : 물론이죠. 이제는 다른 팀에서도 삼성뿐만 아니라 현대에게 이겨야 한다는 그런 도전을 받게 되겠는데요. 그런데 그것을 생각하고 팀을 꾸린다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우리가 삼성이라는 팀이 9년 동안 독주를 해 오면서 우리 한국 배구계가 많이 침체가 됐다는 거죠. 우리 배구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이 코트장을 떠났었고요. 그럼으로 해서 대표팀의 전력에 저하도 가져왔던 것이고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팀이 독주를 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하는 것이 제 생각이고요. 또 지금 우리 현재 한국 배구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매해마다 선수들의 우승하는 팀이 바뀌어야만 같은 구단에서도 굉장히 좋아하지 않겠나..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아무도 쉽사리 우승팀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접전을 벌여야 배구가 발전할 수 있다?
김호철 감독 : 네. 그렇죠.
박인규 : 지금부터는 김호철 감독님의 살아온 인생이야기 잠깐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하셨다고 하는데 상당히 일찍 하신 겁니다. 어떻게 해서 배구를 하시게 됐어요?
김호철 감독 : 처음에는 배구가 아니고 육상선수를 했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저를 새벽 6시가 되면 깨워서 뛰게 하셨는데요. 초등학교 때는 전국에서도 일등을 하고 그렇게 했었는데..초등학교 때 배구부가 그때 생기는 바람에요. 그때 보니까 볼을 들고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모습들이 굉장히 보기 좋아서..배구 선수들이 볼을 때리면 운동장에서 하니까 실내 체육관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하니까 볼이 멀리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열심히 뛰어 가서 주워 주고..이러다 보니까 코치 선생님께서 "너도 배구할래?" 하셔서 운동신경은 있으니까..그때부터 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그때가 그러면 초등학교..?
김호철 감독 :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했습니다.
박인규 : 75년도에 만 20세에 국가대표가 되셨고요. 특히 78년도에 이탈리아 세계 배구 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가 4강이 됐는데 아마 우리나라 배구팀으로서는 역대 가장 최고 성적 아닙니까?
김호철 감독 : 네. 그렇습니다. 78년도 당시에 강만수 선수라든지, 장윤창 선수라든지, 또 지금 이인 선수라든지 모두 화려한 멤버들이었는데요. 사실은 그때만 해도 우리 한국배구가 세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할 때였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희들이 78년도에 로마 시합에 가면서 언론 쪽에서는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었어요. 예선 탈락을 하고 올 것이라는 그렇게 생각만 하고 갔었는데 사실 저희들이 그때 굉장히 시합도 잘했고요. 멤버들도 좋았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세터로서 부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대회가 됐고요.
박인규 : 그 당시 별명이 컴퓨터 세터라고 불렀었죠.
김호철 감독 : 네. 78년도 그때까지는 그 얘기는 잘 안 하셨고 주로 마술사, 볼이 어디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어떻게 숨겼다가 끄집어 낼지 모르는 그런 토스라고 해서 환상적이다..또 어떤 면에서 보면 원숭이가 나무에서 재주를 하는 것 같다..이런 식으로 많이 표현들을 하셨죠.
박인규 : 이탈리아 프로리그에 데뷔하신 것은 78년도 대회에서의 활약이 가장 컸던 때문인가요?
김호철 감독 : 네. 그 78년도에 그 대회를 보고 이탈리아 쪽에서 3년 후에 콜이 왔었는데요. 그때 여러 가지로 조혜정씨, 양희은씨..이렇게 주선을 해서 이태리 땅을 밟게 됐죠.
박인규 : 그러면 이탈리그에 진출한 한국선수로서는 처음인가요?
김호철 감독 : 저 말고도 이인 선수도 있고요. 또 박기훈 선수도 있고요. 그리고 김성호 선수도 있고요. 여자 선수들은 좀 많습니다.
박인규 : 이탈리아 프로리그에서 활동하시면서 별명이 마니도로, 마지코라고 했다던데 이것이 아까 말씀하신 마술사라는 뜻입니까?
김호철 감독 : 네. 마지코는 마술사라는 얘기이고, 마니도로는 황금의 손이라는 뜻입니다.
박인규 : 지금 이탈리아에서 40세까지 선수로 활동을 하셨고 그 이후로 감독을 하셨는데요. 이탈리아에서도 감독을 하시면서 우승을 이끄신 적이 있습니까?
김호철 감독 : 네. 트레비소에서 1부 리그에서 우승을 했고요. 2부 리그에서도 우승을 한 번 해서 두 번을 했고 올해가 세 번째이죠.
박인규 : 이탈리아에서 상당히 오래 사셨는데 어떻게 해서 현대캐피탈에 다시 오시게 된 겁니까?
김호철 감독 : 제가 사실 81년도 그 당시에는 금성통신이었습니다. 지금의 LIG에 있다가 81년도에 갔다가 84년도에 LA 올림픽을 들어 오면서 현대 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어서 현대 쪽으로 갔다가 현대에서 3년 동안 선수생활을 하다가 87년도에 다시 나갔는데요. 나갈 때 현대가 2연패를 하고 제가 들어와서..3연패를 할 당시입니다. 그래서 3연패까지는 회사에서는 해야 한다고 하고 저는 나가야겠다..도와달라..외국에 나가서 다시 선진배구를 배워서 현대가 어려울 때, 현대가 필요할 때..그때는 꼭 돌아오겠다..그러니 인재를 키운다 치고 나를 보내달라..그렇게 좀 고집스럽게 해서 그 어려운 시기에 승낙을 받았죠. 대신 약조는 현대가 어려울 때는 돌아와야 한다..
박인규 : 그 당시의 약속을 지키신 거군요?
김호철 감독 : 네.
박인규 : 그래서 삼성화재가 우승을 하니까 안 되겠다..돌아와라..
김호철 감독 : 그래서 그 중간에 계속 얘기가 오고 가면서 와라, 어떻게 하라..했는데 아직 저의 아이들도 그곳에서 낳고 자랐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로 오지 못하다가 이번에 마지막으로 현대가 정말 어렵다..와야 하겠다고 해서 사실 아무 조건 없이 그런 약조를 제가 했기 때문에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왔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우승하시면서 이탈리아의 과학배구에서 배운 바가 많다, 그것을 접목시켰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탈리아의 배구 수준이 우리보다는 높은 모양이죠?
김호철 감독 : 이탈리아의 배구 수준이 지금 10년 전부터 세계의 상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지금 브라질이 1위를 하고 이태리가 2위를 하면서도 지금 계속 서로 주고 받고 하고 있는데..
박인규 : 한국은 따지면 몇 위권이 됩니까?
김호철 감독 : 예전에는 한국이 10위권 안에는 들어 갔었는데 요즘은 많이 침체되어서 지금은 많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우리가 이탈리아 배구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호철 감독 : 글쎄요. 이탈리아 배구는 특별히 철저하게 데이터에 의한 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학적으로 선수들의 데이터를 뽑아내서 그 뽑은 데이터를 연구해서 어떻게 방어를 하고, 어떻게 공격을 하고, 어떻게 연습을 하고..하는 것이 데이터 상에 나옵니다.
박인규 : 철저한 분석을 하는군요?
김호철 감독 : 철저한 분석을 하면서 상대방이 시합에 나오면 상대방이 시합을 다섯 번 이상..이렇게 시합을 한 것을 모두 데이터로 뽑아 내서 그것에 맞추어서 연습을 하고요. 또 한가지 잘하고 있는 것은 선수들의 부상관리 때문에 체력을 철저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체력 위에 기술을 얹는 그런 배구를 지금 하고 있죠.
박인규 : 지금 가족들은 모두 이탈리아에 계시죠?
김호철 감독 : 네. 아직까지도 이탈리아에 살고 있고요.
박인규 : 부인되시는 분도 예전에 여자배구 국가대표였던 임경숙씨이셨고요. 따님도 지금 배구를 하고 아드님은 골프를 하고 있습니다?
김호철 감독 : 어떻게 하다 보니까 스포츠 가족이 됐는데요. 저희 집사람은 제가 운동을 하면서 태릉 선수촌에서 만나서 알게 되어서 대표선수 커플이죠. 그리고 81년도에 결혼을 하자마자 이태리로 건너갔었습니다. 큰 딸은 지금 현재 프로팀의 배구선수로 활약하고 있고..
박인규 : 아드님이 골프를 굉장히 잘 친다고 들었습니다?
김호철 감독 : 글쎄요. 이태리에서는 진짜 1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해서 이태리 협회에서 전적으로 키우고 있는 선수 중에 한 사람입니다.
박인규 : 이름을 알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살이죠? 지금..
김호철 감독 : 지금은 18세이고, 이름은 김 준입니다.
박인규 : 몇 년 있으면 난리가 날 것 같습니다.
김호철 감독 :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웃음)
박인규 : 마지막으로요. 배구인생으로 40년을 살아오셨는데요. 앞으로 지도자로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죠?
김호철 감독 : 글쎄요. 저는 배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70년, 80년도에 우리 한국 배구가 부흥되는 시기였는데요. 지금은 많이 침체되어 있는 것 같고요. 많은 배구 팬들이 배구를 사랑하면서도 배구장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배구인들이 현재 잘못하고 있지 않는가..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배구가 좀 더 예전의 옛 영광을 살릴 수 있도록 그런 길을 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 부분의 배구인이 됐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박인규 : 이탈리아에서 선진배구를 배우고 돌아오셨으니까요. 삼성의 신치용 감독과 선의의 경쟁을 하시면서 우리나라 배구를 많이 발전시키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호철 감독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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