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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가 그럴 줄 미처 몰랐다"

김민웅의 세상읽기 〈222〉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가 그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나온 영화 〈어느 멋진 날(One Fine Day)〉에 미셀 파이퍼 (Michelle Pfiffer)와 함께 나온 매력적인 남자, 〈배트맨〉 시리즈 4편에 주인공 브루스 웨인으로 나온 귀족적인 풍모의 사나이, 그리고 2001년의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의 머리 좋고 능수능란한 범죄자.

그는 거의 언제나 여자에게 너무도 매혹적인 인상으로 다가서는 카사노바형 연기자였습니다.

그런 조지 클루니가 1950년대 매카시즘의 정치적 모순을 파헤친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을 감독하고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리고 이번에는 영화 〈시리아나(Syriana)〉를 통해 미국의 중동 전략에 얽힌 비열하고 잔혹한 내면을 그려냈을 때 우리는 그의 새로운 면모와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건 한 연기자가 당대의 문제를 치열하게 사색하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말하자면 '대중적 지식인'의 모습을 지닌 의미 있는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시리아나〉는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스티븐 개건이 감독한 영화로서, 그 내용의 골자는 미국의 석유재벌들이 어떻게 미국 CIA를 비롯해서 정부와 하나가 되어 중동정책을 요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음모가 일어나는지를 조명했습니다.

또한 파키스탄의 젊은이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미국의 권부와 자본,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중동지역의 세력들에게 자살테러를 가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 CIA 요원으로 나와, 자신의 정부와 기관으로부터 배신당하고 마는 인물을 매우 무게 있게 표현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그의 모습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잔인한 국가폭력이라도 서슴지 않고 얼마나 비정하게 휘두르고 있는지, 그래서 누가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말게 되는지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미국의 범죄에 대한 폭로였습니다.

조지 클루니가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에 이어, 이렇게 미국 부시 정부의 핵심인 석유자본과 네오콘, 그리고 비밀정보기관의 동맹체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계 내부의 진보적 요소가 가지고 있는 힘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가 주연한 무기 밀매상의 이야기 〈전쟁의 맹주(Lord of War)〉가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고발하고 있다면, 〈시리아나〉는 그 군산복합체가 어떤 음모를 통해 지구의 자원을 독점하고 제3세계 정치를 왜곡시키며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날카롭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대미는,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정보기관의 요원이 자신을 버린 국가를 배신하는 것이 곧 조국의 장래와 제3세계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는 장면입니다. 실로 1970년대 미국 CIA 요원들이 미국 정부를 비난하면서 비밀공작을 공개한 바가 있었던 바로 그런 역사의 재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조지 클루니의 이야기는 연기자가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자신의 사회철학을 가지고 당대의 문제를 끌어안고 고뇌하는, 그리고 이를 공적 발언의 대상으로 삼는 연기자들이 하나 둘 보이고 있습니다.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운동을 통해서 성장해가고 있는 이들 연기자들의 의식은 그 지평을 오늘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민중적 현실과 한반도의 운명, 미국의 전략, 그리고 세계의 미래로 확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조지 클루니나 니콜라스 케이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인 폰다 등 당대의 사회적 고뇌와 역사적 숙제를 외면하지 않는 연기자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등장하는 것은 분명 시대적 발전입니다.

이제 우리도, 과거의 이야기로 오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생생한 이야기로 미래를 가늠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에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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