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순혜', 그녀는 1953년 일본 고베에서 출생한 화가입니다. 그녀는 또한 일본의 평화운동가이자 양심적 지식인 오다 마코토(小田 實)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오다 마코토는 우리나라에서 녹색평론사가 펴낸 그의 저서 "전쟁인가 평화인가"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은 역사적 사연, 그리고 근 2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오다 마코토의 저서에는 일본의 전후 역사에 대해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죽이고 태우고 빼앗는 역사의 결과로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지고 빼앗기는 역사를 가졌던 과거를 직시하여, 그 과거를 두 번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전후의 역사를 만들려고 한 그리고 실제 만들어 온 일본인과, 그 과거를 무시하고 전후의 역사를 움직여 온 일본인 사이의 싸움의 역사였습니다."
이 말에는 남을 가해했던 역사를 가진 일본이 전후 핵폭탄의 재앙과 미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현실에 대한 성찰을 담겨 있습니다.
그의 시민운동에 대한 생각을 밝혀 놓은 글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문제제기를 위해 거리에 나가 데모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시민운동의 데모 행진에는 명함 교환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문제 해결을 향한 의지, 느낌, 분노를 공유하면서 걸어간다. 그 때 바로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시민이다."
서로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도 함께 공유하는 생각, 목표, 희망이 있을 때 그 사회는 시민적 위상을 가지고 진보해나간다는 신념을 여기서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오다 마코토는 70년대에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 운동의 선봉에 섰고, 현순혜는 이 때 그와 만나게 됩니다. 식민주의의 희생자와, 그 식민주의의 대본영에서 식민주의와 싸우고 있던 이가 하나의 몸과 영혼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선택을 한 셈이었습니다.
현순혜의 부모는 제주도 출신의 가난한 해녀와 뱃사공이었습니다. 허덕이는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일본으로 갔던 이들 사이에 태어난 현순혜는 일곱 딸만 있는 집안의 막내였고, 그래서 누군가는 그녀를 바리공주라고 불렀답니다.
바리공주는 "버리다"에서 나온 "바리"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는데, 7공주의 막내라고 멸시 당했다가 온 가족의 생명을 구해내는 존재가 된다고 합니다.
현순혜의 어머니가 들려준 자청비의 신화도 남자처럼 사회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다가 결국 죽어서야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연을 맺는다는 이야기도 모두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품었던 슬픔과 희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순혜는 그런 기존의 질서에서 버려진 사각지대의 시선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한국인, 조선인, 일본인이라는 명칭 속에 담겨진 사연과 아픔,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이 그녀를 성숙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를 향한 시선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을 자유케 하며, 누구도 짓밟히지 않는 그런 세계를 향한 마음과 열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내 조국은 세계입니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다 마코토와 현순혜의 조국은 그 지점에서 일치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인류적 지평을 열고 살아갈 수 있을 때 그곳이 바로 우리에게 진정한 조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세계화는 결단코 아니지요.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러한 조국이 되도록 얼마만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요?
부당하게 빼앗기고, 억울하게 짓밟히며 사는 이들에 대한 마음이 깊지 않으면 그곳은 떠나가야 하는 조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녀의 부모님이 떠나온 제주도의 4.3 항쟁 58주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에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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