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서편에는 유독 그렇게 서러운 사연이 많았나 봅니다.
기세가 우람하고 활달하게 펼쳐지는 섬진강 동편의 노랫가락과는 달리, 서편 쪽의 소리는 끊어지듯 이어지고 애절타 못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계면조(界面調)의 흐름이 주조가 됩니다. 광주에서부터 해남에 이르기까지 이 섬진강 서편의 가락은 그래서 따로 "서편제(西便制)"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이청준 원작의 〈서편제〉를 임권택 감독이 1993년 영화로 올리면서 서편제의 존재는 우리 문화사에 새삼 뚜렷이 새겨집니다.
소리꾼 유봉과 그의 딸 송화, 그리고 그녀의 의붓오빠 동호의 그 애처롭고 비절(悲絶)한 인생사와 굽이굽이 꺾어졌다 오르고 다시 내려앉으려다 솟구치는 가락은 우리의 가슴 속에 쌓여 왔던 한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냅니다.
서편제의 곡조로 부르는 "진도 아리랑"은 구성지기 짝이 없고, 정든 이와 이별하며 애가 타는 심정과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붙잡지 못해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한 많은 세상 놀다나 가자는 회한이 허무하게 몰아칩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응응응~아라리가 났네"로 열리는 세계는 가락은 빼고 읊어보면 이렇습니다.
"문경 새제는 웬 고갠가/구비야 굽이굽이가 눈물이로다...약산 동대 진달래꽃은/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피네....나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떨떨거리고 내가 돌아간다....만경창파 둥둥 뜬 저 배야/저기 잠깐 닻 주거라 말 물어 보자...아리랑 고개에다 집을 짓고/우리 님 오시기만 기다린다...노다 가세 노다 가세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노다 가세"
우리네 선조가 그렇게 서럽게 목 놓아 불렀던 노래는 눈먼 송화의 소리와, 동호의 장단에 맞추어 우리들의 심장에 깊이 잠기는 놀라움을 안겨다주었습니다.
소리꾼 유봉의 그 질박한 음성과, 딸의 눈을 멀게까지 하면서 서편제를 전수받는 소리꾼으로 붙잡아 두려 했던 그 사무치는 집념은 평생에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소리를 팔아야 했던 나그네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 〈서편제〉가 〈왕의 남자〉로까지 오는 세월 동안 우리네 전통 소리와 가락, 그리고 민중연희는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천시 받았던 처지에서, 무형문화재의 칭호도 얻게 되었으며 비공식 공간의 소리에 불과했던 것에서 공식적인 공간의 주빈으로 올라서는 위상의 변화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대가도 치르는 것 같습니다.
분명 아픈 현실이 있는데도 아파하지 않는 몸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진정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내려 하지 않는 곳에서 구성진 가락이 태어날 리가 없습니다.
짓밟힌 마음에 대한 울분과 결국 이루어낼 꿈을 버린 가슴에서, 아리고 쓰린 세월을 보듬어 안는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이 피어오를 수 없습니다.
서편제의 유봉으로 주연을 맡았던 김명곤, 그가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자 내놓은 일성은 `개인의 소신과 장관의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소신을 꺾어야 하는 자리에 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크린 쿼터 이상의 것을 요구했던 그가 문화 권력이 되면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서편제의 소리는 혹 까맣게 잊었나 봅니다. 아마 그는 이미 섬진강 동편으로 가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의 유봉은 자기 딸 송화의 눈만 멀게 하고 사라진 모양입니다. 서편제의 소리가 더욱 서럽게 들립니다.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에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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