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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앞에 '비극의 침묵'에 빠진 방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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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앞에 '비극의 침묵'에 빠진 방송들

[기고] 공영방송의 붕괴와 방송의 상업화 방치하려나

9.11 직후 한 방송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대신해 노엄 촘스키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가 NAFTA(북미 자유무역협정)와 미디어에 관해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자본을 중심으로 한 권력은 NAFTA 결정 과정에 다중이 끼어드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권력이 보기에 다중은 '민주주의'의 방해꾼일 뿐이다. 그래서 배제돼야 한다. 미디어가 바로 이 배제의 역할을 맡는다. 권력의 선전도구에 불과한 방송과 신문은 '환상의 제조', '합의의 공작'을 통해 다중이 NAFTA에 대해 무지하도록, 무관심하도록 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한다. 결국 대다수가 내용에 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NAFTA가 통과된다. 그 폐해는 무지를 강요받은 힘없는 자, 가난한 다중에게 고스란히 떨어진다."

***'촘스키 공식'을 코미디로 재현하려는 한미 FTA**

2006년 한국에서 바로 이 촘스키 공식을 라이브로 보게 됐다. 우선 코미디 한 편을 보자.

"일국의 경제를 책임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묻는다. '미국과 FTA를 맺으면 뭐가 어느 만큼이나 좋다고 해야 합니까?' FTA 실무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게 아직 정확한 자료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거든다. "솔직히 한미 FTA를 하면 감이 좋다는 것일 뿐 이를 뒷받침하는 수치는 아직까지 정부 내에 없습니다."

〈개그콘서트〉의 대사나 우스개 패러디가 아닌, 〈서울경제〉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이걸로 성이 차지 않는 독자는 TV가 친절히 릴레이 보도하는, 대통령의 아프리카 통신을 읽어보라. 대통령은 "한미FTA를 반드시 추진해 병원의료 등 서비스 전 분야를 개방하겠다"고 확인하고 "잘하면 성공하는 것이고…"라고 말한다. 다음 말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이것은 분명 투기적인 발상이다. FTA가 부동산 투기, 로또 판이라도 되는가? 한미 FTA는 대체 누구를 위한 친절한 서비스인가?

***한미 FTA에 대한 대중적 무지는 언론 탓이다**

허술한 정권이 FTA를 졸속으로 밀어붙이고 미국이 조기체결을 위해 전방위로 압박하며, 수구신문들은 지원, 선전한다. 그런데 방송은 찍소리 하나 없다. 침묵하기로 담합했나? 위로부터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 아니면 시청률이 안 나오리라는 약삭빠른 계산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미 FTA를 완전히 죽여버리고 있다. KBS, MBC, SBS 어느 채널을 돌려도 제대로 된 기사 하나 들을 수 없다.

'국익'과 '국민'의 이름으로 황우석 회견에, 월드컵 응원에 올인하던 열의는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영화인들이, 교수와 문화예술인들이, 노동자·농민들이, 시청각·미디어 운동단체들이 아무리 연이어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외쳐도 카메라는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다. 의도적 냉담이며 사보타주다. '꼭짓점 댄스'에 할애한 만큼의 보도도 하지 않는다.

한미 FTA에 대한 지금의 사회적 무관심과 대중적 무지는 바로 이런 조직적 무관심, 체계적 방임의 결과에 불과하다. 조중동은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방송3사는 일체 함구하는 반(反)소통, 비(非)언론의 판에서 다중의 관심과 의식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무리다. 이게 음모 아니면 뭔가?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대중에게 모든 걸 정확히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작동하는 게 선전이다.

***한미 FTA의 칼 끝은 공영방송의 멱을 노린다**

방송이 한미 FTA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 기막힌 현실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미 무역대표부가 통신시장 개방의 의도를 드러냈다. 방송에 관해서도 협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히지 않았을 따름이지 실상은 아무도 모른다. 어차피 통신이 개방되면, 소위 방통융합의 시대에 외국자본의 국내 방송사 소유는 거의 자동적이다.

그렇게 되면 공영방송 체제는 바로 무너진다. 수구 신문들의 방송사 소유 꿈이 실현될 것이고, 견제되지 않은 상업화의 천지가 완성될 것이며, 무한 시청률 경쟁은 프로그램의 질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외국자본은 조직감량과 인원축소를 요구할 게 뻔하고, 이는 바로 비정규직과 실직 양산을 가져올 게 명약관화하다.

스크린쿼터 축소 및 폐지는 방송쿼터도 야금야금 좀먹어갈 것이다. 한국영화를 지켜 온(편성비율 25%), 한국 대중음악을 키워 온(60%), 한국 애니메이션(45%)과 국산 프로그램/콘텐츠(80%)를 보호해 온 편성규제 정책들이 무력화된 자리에 한국의 문화가 설 자리는 과연 남아 있을까? 정부나 방송위원회에 묘책이 있다면, 당장 내놓으라.

***스크린쿼터의 불행을 되풀이할 수 없다**

영화와 방송, 통신, 대중문화는 민감하게 연결돼 있다. 시청각이 한 몸이며, 시청각은 문화, 즉 삶의 문제다. 한미 FTA는 방송의 급소를 노리는데, 시청각의 뒤통수를 넘보는데 기자와 피디들은 대체 언제까지 딴 데로 눈을 돌리고 있을 것인가? 문화다양성과 민주언론의 중대 가치를, 한국사회의 미래 자체를 위협하는 대사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작태를 당장 멈추라.

공영방송은 보호돼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무지하고 무책임하고 무력한 모습으로는 어림없다. KBS는 권력이 아닌 다중을 위한 공적 서비스의 책무를 다할 때 비로소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축소되는 것으로 결정된 스크린쿼터의 불행을 되풀이할 수 없다. 한미 FTA에 대해 단호히 연대해 맞서야 한다. 한미 FTA가 시청각·미디어를 비롯해 한국사회 전 분야에 가져올 엄청난 불행에 공익, 즉 국익의 이름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 삶의 미래는 신자유주의 정권이나 오만한 미국, 거대 재벌과 다국적 자본의 일방적 결정으로 통보될 사안이 아니라, 그 주인인 인·민 다중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선택할 사안이다. 급습하는 제국에 맞서 평등·평화·평온의 삶, 즉 문화를 위해 응당 '저항세력'으로 모두 일떠서야 할 시점이다. 교전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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