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폭탄주를 소탕하겠습니다."
3일 오전,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한 손에는 폭탄주를, 다른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은 폭탄주 음주 후 발생한 '취중사건'이니 이 참에 한나라당은 폭탄주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 박 의원의 회견 요지였다. 박 의원은 폭탄주를 소탕하자는 국회의원 클럽의 회장이다.
말을 마친 박 의원이 카메라 앞에서 폭탄주 잔을 높이 들고 가차 없이 망치로 폭탄주 잔의 목을 쳤다. 폭탄주 소탕을 의미하는 '퍼포먼스'였다. "주풍(酒風)에 지방선거 승리를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 외침과 함께였다. 박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맥주잔과 양주잔이 함께 깨지고 파편은 회견장 곳곳으로 튀었다. 양복에 묻은 유리조각을 탁탁 털고 나오는 박 의원과 달리, 수건을 든 보좌역들이 황급히 단상으로 뛰어 들어갔다. 행여나 유리 조각에 사람이 다치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서둘러 파편을 주어 담았다.
5분간의 짧은 기자회견에서 깨진 것은 폭탄주잔 하나가 아닌 듯했다. 후덕한 '젠틀맨'으로 굳어 있던 박 의원에 대한 '이미지'가 깨졌다. 시쳇말로 '확 깼다'.
이와 함께 박근혜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의원 전원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국민 앞에 다짐했던 '진지한 반성', '자중'에 대한 신뢰에도 금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사실, 반성하겠다는 한나라당을 고운 눈으로 지켜볼 수 없게 만든 건 박 의원 하나가 아니다. 전날 한나라당 지도부는 "기강을 쇄신하고 새 모습을 보이겠다"며 소속의원 전원의 해병대 훈련을 검토했었다. 술 먹고 여성을 추행하는 '퇴폐적인' 이미지를 벗고자, 군복을 입고 구슬땀을 흘리는 '건전한' 장면을 연출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연세 많으신' 의원들에 대한 배려로 해병대 훈련은 물 건너갈 분위기지만, 한번의 이벤트로 실수를 만회하려는 한나라당의 발상에 국민들은 쓴 입맛을 다셔야 했다.
최 의원이 '칩거'에 들어간 지 벌써 나흘째다. 성범죄를 저지른 동료 의원을 두고, "목을 치자니 법이 없다"는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구책이랍시고 눈속임에만 골몰하는 게 아닌지…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맛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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