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당시 리차드 닉슨 대통령의 추천으로 대법관에 내정되어 있던 루이스 파월은 미국 상공회의소에 비밀 메모를 한 장 띄웁니다.
그 내용은, "미국 기업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이 문제를 본때 있게 반격할 때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기업은 대학과 기타 교육기관, 언론, 출판, 법정 등에서 대대적인 이념 공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의해 미국사회의 기반이 새로운 지각변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세에 몰려 있던 미국 기득권 보수 세력의 역공이 시작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들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으로 말미암아 미국 역사에 대한 비판이 전개되는 것이 못마땅했고, 영광스러운 미국의 과거를 이들이 훼손시키고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미국이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시기, 시카고대학에서는 밀턴 프리드만이 자본의 활동영역을 최대한 자유롭게 하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설파하고 있었고, 레오 스트라우스가 홉스의 정치철학을 강의하면서 질서의 가치와 군사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제자들이 바로 이 루이스 파월의 뜻에 동조하면서 미국 사회 전 영역에서 보수의 기치를 들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대기업이 착취와 차별, 그리고 제국주의 정책의 추진세력이라는 비판이나 역사적 질타는 이들 미국 보수주의 세력에게 반기업적 정서와 논리라는 식으로 낙인 찍히고 있었습니다. 역사교과서에 실린 록펠러나 J.P. 모건 등에 대한 비판적 언급은 모두 이러한 반기업적 정서와 논리라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격렬한 역사논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당시 이들의 목소리는 패잔병 같은 소수파에 속했습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의 노도와 같은 변화의 요구 앞에서 별반 힘을 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루이스 파월의 지침은 이들 기득권 보수 세력에게 매우 장기적인 전략과 전술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오랜 세월 계속 주장하고 교육시키다 보면 반드시 자신들의 추종세력이 생기고 언젠가는 주류세력으로 위력을 발휘할 날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람치의 '문화 진지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모택동을 읽고, 트로츠키를 읽었으며, 그람치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전략전술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보수의 메시지와 진보의 전략을 결합시키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뒤, 보수 세력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와 신보수주의 군사학으로 무장하여 미국의 주류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는 근본주의적 기독교가 가세하여 미국을 '신의 나라'로 만드는 일에 조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른바 '뉴-라이트'라는 신우익세력 또는 신보수주의 세력의 전략도 동일한 것 같습니다. 역사교과서 논쟁부터 불을 지피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도 미화하고, 군사독재 체제와 대미 종속도 정당화시키며 대자본의 지배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왜곡과 식민지 논리가 과연 얼마나 오랜 생명력을 가지게 될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그린 영화 〈왕의 남자〉와, 사회적 양극화의 부당성을 폭로한 〈홀리데이〉에 관객이 모이는 걸 보면, 세상은 지금 엄청나게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정치권만 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거나 담아내지 못해 낙오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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