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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쇄국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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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쇄국하는 나라"

김민웅의 세상읽기 〈203〉

오늘날 세계는 서로에게 문을 열고 있습니다. 경계선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영역도 접근이 상대적으로 쉬워졌습니다. 경제나 문화나 모두 이러한 과정을 통해 풍요한 내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개방의 흐름이 대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개방의 대상을 제한 없이 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웃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던 집이 손님을 초대하고 서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살림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면 그 집은 이전의 폐쇄적인 생활태도에서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변화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웃집의 총각이 자기 집 딸이 있는 방에 함부로 들어가게 하거나 그 몸에 마음대로 손을 대게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개방은 개방이고,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은 지키는 것입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 곧 폐쇄적인 것은 아닙니다. 개방이 소중한 것까지 다 내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노력조차 아예 포기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릅니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어떤 식의 보상이 있다 해도 원상복구는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내세우면서 미국이 지적 재산권, 특허 등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우리의 법까지 바꾸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미국이 자신들의 소중한 것을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마구잡이로 다 열어서 가져가고 싶은 것은 다 가져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라면 협상도 있을 까닭이 없고 정책이 필요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오늘날 세계는 개방의 정도만큼 상호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의존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경부의 고위관리인 권태신 차관은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FTA는 불가피하다, 스크린쿼터는 이제 없애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영원한 패배주의적 발상입니다.

게다가 그는 스크린쿼터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영화가 무너지면 그때는 선택의 자유고 뭐고 없습니다. 무지한 발언입니다.

우리만 대외의존도가 높은 것이 아닙니다. 미국도 대외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상대적인 격차는 존재하지만, 일방적 관계라고 단정 지어서 미리 알아서 길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엄연히 상호의존의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미국이 필요하지만 미국도 우리가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주고받을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종속의 심화입니다. 국가의 정책을 맡은 이는 상호의존의 세계에서 종속의 심화를 막아낼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의존도가 높다면서 종속의 심화를 불가피하게 여기고 정책을 종속의 과정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자칫 매국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농업과 문화, 금융과 기타 산업의 기반을 지켜낼 의지 자체가 없는 정부와 관료집단이 한-미 자유무역 협정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세계자본주의 체제 연구의 대가인 사미르 아민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세계적 불평등의 구조가 영원히 확대 재생산된다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가 바로 그 불평등 구조의 심화를 가져올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모순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닌 듯싶습니다.

대통령은 쇄국해서 성공한 나라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쇄국하자고 그랬습니까? 더군다나, 자기를 지킬 방도 없이 개방해서 잘 된 나라는 더욱 없습니다. 권력이 민주주의적 요구와 논의를 "저항"이라고 못박고 귀를 "쇄국"하고 있는 것이 정작 문제가 아닌가요?

"무지와 모순"을 먼저 넘지 못하면, 뭘 해도 모두를 고생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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