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중인 동성애자가 성 정체성을 인정받으려면 성관계를 하는 사진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는 등 군대 내 동성애자의 인권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비롯한 35개 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주노동당 인권위원회 등은 15일 오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대 내 동성애자의 인권 침해에 대한 군 당국의 조속한 해결과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인권단체들 "군대 내 동성애자 차별은 심각한 인권침해"**
이들은 이날 군대 내에서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동성애자 A씨의 사례를 공개했다. 지난해 6월 모 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A씨는 얼마 뒤 담당 간부에게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나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들이 동성애자이니 잘 부탁드린다'는 아버지의 의견서마저 관리소홀로 유출되는 바람에 함께 훈련받는 병사들도 A씨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A씨는 강요에 의해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했고, 동성애자임을 입증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시달렸다. 심지어는 휴가 때 다른 동성애자와 성관계를 한 사진을 가져오라는 요구까지 받았다. 그는 수치심에 치를 떨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간부들의 폭언과 성적 모욕감을 주는 내무반 동료들의 언행이 계속 이어졌고, 심한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A씨는 결국 자살을 결심하고 다시 휴가를 나왔다.
A씨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동성애자인권연대에 상담을 요청했다. 이후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관련 사안을 제소했고, 국가인권위는 14일 해당 부대를 방문해 조사를 벌였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그동안 동성애자들의 상담요청이 작년 이래로 계속됐다"며 "이번 일 역시 새로운 사례는 아니지만 인권침해의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군법상 동성애 행위 처벌조항을 삭제하라"**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관계 사진까지 요구한 것은 명백한 성폭력 사건"이라며 "지난해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 15.4%의 군인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를 비롯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구제수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들은 이날 배포한 기자회견문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성관계 사진과 성관계 횟수가 필요한 사회가 과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민주주의 사회냐"고 반문하면서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차별받을까봐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생활하고 있는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받고 있는 차별과 인권침해의 대표적인 표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함은 물론이고 군 당국이 인권침해 가해자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피해자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는 상태에서 피해자를 조속히 전역시킬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군 당국은 군법상 존재하는 동성애 행위 처벌조항을 삭제하고 군대 내 인권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이 말한 동성애 행위 처벌조항은 '계간(동성애 행위)'을 금지한 군 형법 92조와 동성애를 '질병 및 심신장애'로 규정하는 징병신체검사 규칙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발표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에서 "성적 소수자의 생존권, 안전권, 노동권, 편견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동성애 혐오와 동성애자 차별을 내포하고 있는 군형법 92조의 계간(동성애 행위) 금지조항을 삭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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