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법과 해석은 조금씩 달랐지만, 6명의 참가자 모두 현장 노동자들이 진보정치에 느끼는 피로감과 실망감에 동의했으며 정파 간 세력 다툼은 멈춰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양성윤 민주노총 새정치특위 운영위원장은 "진보정치의 위기는 곧 민주노총의 위기다. 통진당 사태 이후 정말 다양한 곳에서 진보정치의 위기와 노동정치 재구성을 위한 노력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런 다양한 시도가 집중돼서 우리가 원하는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 정당이 건설돼야 한다"고 토론회의 문을 열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3일 기자회견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전 대표 왼쪽 뒤로 이상규 의원(서울 관악을, 초선)의 모습이 보인다. ⓒ뉴시스 |
통진당 사태 해결 방법 없어 이정희가 대선 나온다면 희화화될 뿐
참가자 전원이 진보정치의 위기라 표현한 통진당 사태는 지난 5월 2일 조준호 당시 통진당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본격화 됐다. 논란의 중심이 된 구(舊)당권파 이석기·김재연 후보 측은 "당진상조사 위원회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를 요구하는 등 의혹을 부인해 신(新)당권파와 대립했다.
지난 5월 12일 중앙위원회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며 통진당 갈등은 더욱 심화했다. 진보정당이 민주주의 가치를 져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검찰이 사상 초유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사태는 때아닌 색깔론으로 번져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국내 종북세력이 문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6일 의원총회 결과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이 부결되며 통진당 갈등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심상정 원내대표, 강동원 수석부대표, 박원석 원내대변인이 사퇴했다. 8월 14일에는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 지지 철회라는 결단을 내렸다.
노동계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독자적인 대선구도를 짜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급기야 지난 7일 물과 소금까지 끊는 단식을 5일째 이어오던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들것에 실려나갔다. 10일 강 위원장은 탈당을 선언했다. 결국 진보정당은 국민이 원하는 진보세력의 연대는 보여주지 못한 채 '구당권파만의 이익집단'이라는 오명만 얻은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통진당이 얼마나 민심에서 멀어졌는지 단적으로 표현했다. "(현재 상황에서) 이정희가 대선후보로 출마한다면 희화화된 후보"가 될 것이란 예측이었다.
박석운 노동인권회관 소장은 "몇 년 뒤에 100점짜리를 만드는 것보다 지금 당장 70점짜리라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절박하다"는 말로 현재의 위기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요새같이 투쟁력이 바닥일 때가 없다"며 "대중 투쟁과 함께 대선 후보 전술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노동자 정당 건설을 위한 "노동자·민중 후보 추대 연석회의"를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체제 및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민중후보 전술에 동의하는 모든 진보 사회단체와 개인을 참여 대상으로"하는 전방위적 연석회의라고 그는 설명했다.
전병덕 현장실천노동자연대 집행위원장 역시 대선 전략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씨는 "통진당도 대선후보를 내려 할 것이고 진보신당도 내려 할 것이고 민주노총도 (대선후보를) 낸다고 하면 누가 (그런 결정에) 동의하겠느냐"며 현재 구심점 없이 분파별로 찢긴 진보진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만약 대선 후보를 낸다고 하면 추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추대방식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이어 전 씨는 "당의 집권을 목표로 삼아서 권력만 잡으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했다. 당에만 올인해온 모습을 극복해야 한다"며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와 멀어진 현재의 진보정치를 비판했다.
노동 현장에는 정치 냉소만 남아…새로운 진보정치 시작해야
현장 노동자들까지도 진보정치에 등을 돌렸다는 비판은 계속 이어졌다. 김소연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현장활동가 모임' 활동가는 "현장 노동자들은 크게 실망했다"며 "'노동자 정당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존 보수 정당과 다를 바 없구나'"고 (현장 노동자들이) 말한다고 전했다.
통진당 사태는 진보정치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그 현상 자체라는 지적도 나왔다. 양경규 전 공공운수연맹 위원장은 "이석기·김재연 사태가 봉합됐다면 진보정치는 위기에 봉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양 씨는 "통진당 문제는 원래 축적돼 왔던 진보정치의 위기를 시기상으로 당겼을 뿐이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라며 문제의 본질을 강조했다.
양 씨는 1997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대통령 후보를 추대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창당을 주도했던 '국민승리21'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문제를 짚었다. 당시 후보로 나섰던 권영길 전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1.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 당시 우리(노동자)에게 국회의원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이는 대중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이후 한국의 노동자 정치를 왜곡시킨 출발점이었다"고 양 씨는 말했다.
양 씨는 의회라는 공간이 노동계의 기대와 달리 한국 사회의 진보나 노동정치를 공고히 하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노동정치는 실종되고 당이 의원중심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 현재 진보정치 위기의 본질적 문제라는 것이다.
"노동정치운동을 통일하고 노동이란 내용과 주체를 가지고 새롭게 진보정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나아갈 방향을 밝힌 그는 "노동자 민중 후보로 (대선을) 돌파하기로 했으면 돌파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영록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집행위원장은 "전국회의 1500명 회원 중 통진당 당원이 1400 명인데 (전국회의) 중앙회의에서 통진당을 사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다른 견해를 밝혔다.
이 씨는 현재 통진당에 대한 평가에 대해 "피상적 평가"라고 반박했다. 그는 "통진당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노동자들이 있는 현실이 분명히 존재한다. 노동자 노선의 독자 후보에 대한 논의가 광범위하게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막상 투쟁 현장에 가면 정치국장조차 없는 곳도 많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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