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뷰 포인트]당신이 그녀라면 In Her Shoes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뷰 포인트]당신이 그녀라면 In Her Shoes

감독 커티스 핸슨 | 출연 카메론 디아즈, 토니 콜레트, 셜리 맥클레인 | 수입, 배급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30분 | 2005년

〈당신이 그녀라면〉은 전혀 다른 두 자매의 이야기다. 필라델피아의 유능한 변호사 로즈(토니 콜레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 때문에 자신 있게 연애를 하지 못한다. 반면 팔등신 미녀인 동생 매기(카메론 디아즈)는 언제나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지만 난독증 때문에 제대로 취직도 못한다. 한마디로 '백수' 동생인 매기는 로즈의 집에 얹혀 살면서 말썽만 일으킨다. 급기야는 로즈가 막 사랑에 빠진 직장 상사와 정사를 벌이다 들키고 만다. 파렴치한 매기는 로즈의 집에서 쫓겨나고, 자매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사실 그다지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서로 다른 자매의 갈등을 다룬 영화는 로버트 알드리치의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부터 카트린 브레이야의 〈팻 걸〉까지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다. 〈당신이 그녀라면〉 역시 출발점은 비슷하다. 외모, 지적 수준, 경제적 능력, 가치관, 연애관 등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두 여성은 다소 전형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한데 〈당신이 그녀라면〉의 이런 설정은 그야말로 더 큰 이야기를 하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삼십 대 중반의 미국 여성 작가 제니퍼 와이너의 원작을 〈에린 브로코비치〉의 수잔나 그랜트가 각색한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간다. 드라마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영화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자매의 갈등은 인간의 삶이라는 좀더 보편적인 주제로 흡수된다.

로즈와 매기의 대립관계는 외할머니 엘라(셜리 맥클레인)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갈 곳 없어진 매기는 일면식도 없었던 엘라를 무작정 찾아간다. 엘라는 플로리다의 실버 타운에서 비교적 풍족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매기는 처음에는 역시 거머리 노릇을 하지만, 냉정한 엘라의 강권에 못 이겨 요양소에서 노인들을 돌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을 앞둔 한 노교수를 위해 더듬더듬 시를 읽어주면서 점차 난독증을 치료한다. 한편 직장을 그만둔 로즈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옛 동료와 점차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사랑을 키워나간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자매는 가장 가까운 사이일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상처를 입히기 쉬운 관계이기도 하다. 로즈와 매기는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멀어진다. 영화는 이들의 지독한 애증과 거기서 비롯되는 죄책감, 그러면서도 선뜻 화해하지 못하는 묘한 자존심을 세밀하게 엮어낸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저마다 조금씩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외할머니 엘라는 자신의 딸에 얽힌 비밀 때문에 사위와 관계가 틀어져서 로즈와 매기를 만나지 못했던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깔끔하고 꼿꼿한 성품의 소유자이지만 가슴 한켠에 슬픔을 머금고 살아야 했던 엘라는 냉정한 판단력과 인자한 포용력으로 손녀들을 감싸 안는다. 매기가 난독증을 이겨내고 로즈가 진솔한 사랑을 가꿔나가는 과정은 이러저러한 상처를 치유하는 절차나 다름없다. 극중 매기가 읽는 '상실의 기술(the art of losing)'에 관한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는 바로 그런 인간 삶의 보편적인 통과제의를 감동적으로 압축한다.

〈당신이 그녀라면〉은 엄숙하거나 수선스럽지 않다. 로맨스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와는 격이 다르다. 가족애라는 흔한 명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상투적이거나 진부한 설교를 읊는 대신 보편적인 공감의 정서를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이는 전적으로 유머를 겸비한 탄탄한 각본과 저마다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는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카메론 디아즈와 토니 콜레트는 모두 각자의 배역에 더없이 어울리는 캐스팅이며, 그런 만큼 마치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착착 감기는 연기력을 펼친다.

〈LA 컨피덴셜〉 〈8 마일〉의 커티스 핸슨 감독이 이 작품을 연출했다는 사실은 의외일 수도 있다. 물론 〈당신이 그녀라면〉은 핸슨의 두 전작처럼 정교한 테크닉이 동원된 화려한 영화는 아니다. 〈배드 인플루언스〉나 〈요람을 흔드는 손〉처럼 핸슨을 유명하게 만든 스릴러와도 전혀 다른 작품이다. 오히려 〈당신이 그녀라면〉은 인간의 아집과 삶의 아이러니를 위트 넘치는 시선으로 성찰한 〈원더 보이즈〉와 궤를 같이 하는 영화다. 이제 이순(耳順)을 넘긴 커티스 핸슨은 말 그대로 인간사의 순리를 담아내는 넉넉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당신이 그녀라면〉은 핸슨의 겸허한 지혜가 느껴지는 작지만 강한 영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