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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DO 인력 전원 철수, 신포경수로 건설 완전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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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DO 인력 전원 철수, 신포경수로 건설 완전중단

제네바합의 부정해온 미 부시 행정부의 '결실'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 경수로(신포경수로) 부지에서 시설물의 유지·보수를 위해 남아 있던 57명의 인력 전원이 8일 오후 철수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단 5명과 한전 관계자, 시공단 관리인력 등은 이날 오전 11시 경 대아고속해운 소속 '한겨레호'를 타고 현장을 떠나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강원도 속초로 귀환했다.

그러나 93대의 중장비와 190대의 일반 차량, 공사자재 등 455억원 상당의 장비와 자재는 북한측의 반출 반대 때문에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일부에서는 '추방'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철수 결정은 신포경수로 사업이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유지·보수 활동조차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장선섭 통일부 경수로기획단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측에서는 오늘 떠날 때 손을 흔들며 아쉬워했다. 추방이면 그랬겠냐"고 반문했다.

***잔류 무의미…불필요한 '추방' 논란**

현장에 남아 있는 장비·자재의 반출, 최대 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청산비용 분담 등 신포 경수로를 둘러싼 몇 가지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잔류 인력의 최종 철수는 신포 경수로 사업이 사실상 완전 중단됐음을 뜻한다.

1995년 12월 북한과 KEDO가 경수로공급협정을 체결한 지 10년여, 1997년 8월 공사가 시작된 지 8년 4개월 만의 일이다.

공식 발표는 아직 없었지만 KEDO 이사회는 지난해 11월 신포경수로 사업을 종료한다는 데 합의했다. KEDO는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하자 2003년 2월부터 공사 속도를 늦췄고 그해 11월에는 12월부터 1년간 공사중단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어 2004년 11월 공사 중단 조치를 1년 추가 연장했다.

보다 넓은 의미로 볼 때 인력 철수는 1994년 북한과 미국이 체결했던 제네바 기본합의의 실질적인 종말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가로 에너지를 지원키로 한 제네바합의의 핵심이 2003년까지 100만kW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2차 북핵 위기 발발 후 지금까지 합의 불이행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제네바합의가 파국을 맞았음을 각기 선언했고, 대북 위협과 핵보유 선언으로 맞서왔다. 그러나 KEDO는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참가하는 컨소시엄이기 때문에 그같은 위기의 와중에서도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KEDO가 그처럼 미국의 일방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기구였다 하더라도 제네바합의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신포경수로가 제네바 합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9.19공동성명에서 신포경수로 대체 공식화**

전체 공정률 34.5%에 이르는 신포경수로가 한낱 콘크리트 더미로 버려지게 된 것은 지난 해 7월 12일 우리 정부가 경수로 대신 200만kW의 전력을 직접 제공한다는 '중대 제안'이 발표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중대 제안 자체가 신포경수로 사업의 폐기를 주장하는 미국·일본의 입장과 경수로에 대한 북측의 집착을 절충해 마련된 고육책임을 감안하면 신포경수로의 종료는 송전 계획이 나온 순간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4차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에는 "한국은 북한에 200만㎾의 전력을 제공하는 2005년 7월 12일의 제안을 재확인했다"는 문구가 포함돼 신포경수로의 대안으로 중대 제안이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은 공동선언에 "적당한 시점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 경수로가 KEDO의 신포경수로가 아니라는 것에는 잠정 합의했다. 북한 역시 신포경수로의 종료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파탄의 뿌리**

지금까지 15억6200만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신포경수로가 공사 중단의 비운을 맞게 된 근본 원인은 제네바 합의에 대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부정과 혐오 때문이었다.

'제네바 합의는 미국 외교의 실패'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부시 행정부는 경수로 발전소 제공은 "악행에 대한 보상"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제네바 합의를 뒤엎을 기회를 엿보던 부시 행정부는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지 불과 1개월 후인 2002년 11월 14일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하고 경수로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2차 북핵 위기는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의 방북 과정에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측의 발표와 함께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북한이 그같은 시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중유 공급 중단은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우세하다. HEU 계획의 존재 여부는 아직까지도 '진실게임'에 머물러 있다.

그에 앞서 미 공화당은 부시 대통령의 집권 전부터도 의회를 통해 신포경수로 건설 과정에서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제네바 합의의 이행을 지연시켜 파탄의 불씨를 키워 왔었다.

***신포, 핵발전소 건설의 최적지…아쉬움만 커져**

경수로 제공을 논의할 '적절한 시점'을 두고 북한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북한은 에너지 부족의 해소를 위해 앞으로도 끝까지 경수로에 집착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경수로 제공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폐기가 우선이고, 그때 제공되는 경수로도 신포가 아닌 제3의 장소에 건설돼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미 기반 공사가 끝나 있고 신포지역이 핵발전소를 짓기에 가장 적절하기 때문에 북핵의 폐기만 빨리 이뤄진다면 신포경수로의 공사 재개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일부 관계자들의 희망이다.

그렇게 된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부지는 물론 터빈발전기, 각종 보조기기 등 두산중공업 등에서 만들다가 중단해 고철덩어리가 돼버릴 처지에 놓여 있는 각종 설비도 되살릴 수 있다.

하지만 신포경수로의 종료를 전제로 한 9.19공동성명마저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문제로 공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포경수로의 종말을 아쉬워하는 이들의 한숨만 길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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