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의 뇌출혈은 신이 내린 천벌이다."
"샤론은 신의 땅을 팔레스타인에 내주려고 한다."
중태에 빠진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에게 이스라엘 극우 강경파이 저주를 퍼붓고 있다. 이들은 한때 자신들의 영웅이던 샤론이 지난해 8월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를 밀어붙여 "신과 성서를 거스르고 조국을 배신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샤론이 어서 죽기를 바라고 있다.
샤론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주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은 또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도 샤론이 없으면 중동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며 그의 병세 악화를 환영했다. 하마스 대변인은 "세계는 이제 최악의 지도자를 제거할 문턱에 서 있다"고 말했다. 친(親)시리아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관계자도 샤론의 병세는 "신의 선물"이라며 반색했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5일 "기대하건대 '사브라와 샤틸라'의 죄인이 앞서 간 그의 조상들과 합류할 것이라는 소식이 임박했다"며 "다른 죄인들도 그와 함께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브라와 샤틸라는 레바논 베이루트 부근의 팔레스타인 난민캠프가 있던 곳으로 1982년 당시 국방장관이던 샤론은 '갈릴리에 평화를'이란 작전명으로 약 1800명의 난민을 학살했다. 그 사건으로 아랍인들은 그를 "베이루트의 살육자"라고 부른다.
정반대의 세력에서 똑같은 저주를 받는 샤론 총리. 그는 과연 '신의 배신자'인가 '살육자'인가, 아니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의 말처럼 '용기와 평화의 지도자'인가.
***정착촌 건설 주역에서 철수론자가 된 까닭은**
14살에 군에 입대해 반평생을 군인으로 살던 샤론은 1948년 팔레스타인과의 첫번째 전쟁에 참가한 이후 53년 요르단전투, 67년 6일전쟁에 참전했다. 특히 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수에즈 운하 도하작전을 성공시켜 불리한 전세를 일거에 뒤집은 뛰어난 전쟁 지휘관이었다.
시온주의자들이 평화로운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 점령해 벌인 피의 살육전 한복판에는 늘 그가 있었고, 그는 이스라엘인들의 영웅이 됐다.
1973년 전역해 정착 유대교도들을 등에 업고 리쿠드당을 창당한 샤론은 농업장관과 건설주택장관을 거치면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등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당시 샤론의 별명은 '불도저'였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8월 가자지구 정착촌의 철수를 밀어붙인 것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는 '온건파로의 변신' 혹은 '실용주의'라고 치켜세웠고 부시 미 대통령은 심지어 '평화의 사도'라는 찬사까지 보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겨 왔던 샤론이 스스로 만든 정착촌을 없앤 것 역시 '안보'라는 전략적 이유 때문이라는 게 중동문제에 정통한 이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라는 작은 '콩고물'을 던져주는 대신 서안지구에 있는 거대한 정착촌의 안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1981년 국방장관이 된 샤론은 이듬해 레바논 침공을 주도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베이루트에서 쫓아냈고, 같은 해 9월 유명한 '베이루트의 도륙'을 감행했다.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 과대 포장된 불안정**
2001년 선거에서 에후드 바라크 노동당 당수를 누르고 총리에 등극한 자양분도 팔레스타인인들의 피였다.
샤론은 2000년 9월 28일 예루살렘의 이슬람성지인 알 아크샤 사원을 방문해 제2차 인티파다(봉기)를 유도했다. 팔레스타인과의 무력충돌로 불안감을 느낀 이스라엘인들은 '미스터 시큐리티(안보)'라고도 불리는 샤론을 총리로 선택했다. 그후 이어진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3700여명과 이스라엘 민간인 45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역시 샤론의 지휘에 따른 것이다.
샤론은 또 유대인 정착촌의 확대를 추진해 서안지구와 예루살렘에 50만 명에 가까운 정착민들을 거주시켰다. 지난해 8월 밀어붙인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겨우 몇천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샤론의 '평화 프로세스'가 과대평가라는 것을 보여준다.
샤론은 정착촌 철수로 서안지구와 최소한 반 이상의 예루살렘 땅을 영원한 이스라엘 땅으로 만들기 위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동시에 샤론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 행동을 강화했는데, 예를 들어 이스라엘 공군은 지난달 2일 가자지구 북부를 공습해 3명의 이슬람 지하드 사령관들을 살해했다. 샤울 모파즈 국방장관은 그같은 '안보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이스라엘 공군은 샤론이 병원으로 실려가던 바로 그날 밤에도 가자지구 북부에 폭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방위군 포병 부대도 가자 북부에 대한 폭격을 강화했고 서안지구에서는 무장 단체원 9명을 체포했다.
샤론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고통도 안겨줬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2004년 보고에 따르면 4년간의 유혈 충돌로 팔레스타인인의 절반 이상이 빈곤선 이하에서 허덕이고 있고 16%는 기본 생필품마저 구할 수 없는 처지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수입은 3분의 1 이상 줄었고 노동력의 4분의 1이 실업 상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뒤흔들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샤론의 강공책은 이처럼 모두 완벽한 승리를 가져왔다. 이는 팔레스타인의 급진화를 가져 왔고 이스라엘의 폭정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양산했다.
***샤론, 불안정과 폭력의 기획자?**
샤론 치세 동안 이스라엘 내부의 사회ㆍ정치적 불만도 높아졌다. 주요 정당들은 민심을 잃고 노동자ㆍ서민들의 생활도 어려워졌다.
비판자들은 리쿠드당이 팔레스타인과의 충돌을 지속해 경제적 부담을 키워 왔고 우파적 경제 정책으로 사회적 지출은 줄어들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동당은 2004년 샤론의 가자 철수 정책이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치켜세우며 연정에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노동당에 대한 불신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몬 페레스 당수는 결국 지난해 아미르 페레츠에게 당수직을 빼앗겼고 샤론이 새로 창당한 카디마당에 합류했다.
이같은 과정을 종합해 볼 때 '평화의 사도'라는 샤론에 대한 평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시각에서 본 '위선'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입장을 취할 경우, 샤론은 평화가 아닌 불안정과 폭력의 기획자이자 집행자에 불과한 것이다. 서방측이 말하는 중동평화는 이스라엘의, 이스라엘을 위한 평화이지 팔레스타인인들의 평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시각을 취하든, 샤론의 유고가 이스라엘 정치와 중동 전체에 미칠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3월 28일 총선에서 제1당의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던 카디마당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다. 샤론의 부재로 선거 결과도 점치기 어려워졌고, 카디마당 지지자들이 리쿠드당으로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샤론 유고의 최대 수혜자가 리쿠드당이 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리쿠드당 당수인 벤야민 네타냐후 전 총리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력 행동을 더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쿠드당이 제1당이 될 경우 군사주의와 우파적 경제 정책을 제어할 길은 없어진다.
중동의 평화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샤론의 숨소리처럼 가늘게 헐떡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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