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겨울휴가를 보내기 위해 가져간 두 권의 책이 화제다.
"대통령은 독서광"이라는 트렌트 더피 백악관 대변인의 말과는 반대로 부시 대통령은 거의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나마' 읽었던 몇권의 책에서 정책적 영감을 얻었고 향후 말과 정책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저울질하던 2002년 여름 부시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역사가이자 폴 월포위츠 당시 국방부 부장관의 친구인 엘리엇 코언이 쓴 〈최고사령부〉라는 책을 끼고 다녔다.
2004년 말에는 구(舊)소련에서 유대인 인권운동을 하다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던 나탄 샤란스키의 책 〈민주주의론〉을 읽고 아랍에서의 공격적인 민주주의 확산 정책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책에 나온 일부 문구들은 2005년 취임식 연설에서도 인용됐다. 지난 6월에는 탈북자 출신 강철환 조선일보 기사의 책 〈평양의 어항〉을 읽고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국제 뉴스사이트인 〈인터 프레스 서비스〉는 29일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기 위해서는 부시가 무슨 책을 읽는지 알아야 한다는 게 정설"이라며 이번 휴가때 그가 가져간 책의 저자와 내용을 소개했다.
***먼로주의 수정해 팽창주의 물꼬 튼 루즈벨트**
첫 번째 책은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은퇴 후 생활을 그린 〈소집 나팔이 울릴 때〉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부시 대통령이 벌써부터 퇴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미확인 추측을 내보냈다. 패트리시아 오툴이 쓴 이 책은 루스벨트가 퇴임 후 아프리카에서 1년 동안 사냥을 하며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던 시절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 프레스 서비스〉는 부시 대통령이 과거부터 흠모해오던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인물과 정책에 주목한다.
19세기 말 미서전쟁을 일으켜 미국 팽창주의의 신호탄을 쏘아 오렸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04년 '먼로주의 보충이론'이라는 유명하면서도 악명높은 정책을 제시했다. 일명 '곤봉이론'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의 경찰이 되어 이곳에서 일어나는 "고질적인 병폐와 무능"에 맞서 어디에라도 일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대유행이었던 "위인사관(탁월한 리더에 의해 역사가 움직여왔다는 일종의 영웅주의 사관)"에 동의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루즈벨트의 책을 선택한 것은 그가 퇴임후 매우 활발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이 사이트는 전망했다.
그 활동은 부시 대통령이 여행에 별다른 취미가 없는 점으로 볼 때,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오지를 탐험하는 루즈벨트식의 활동이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력히 유지시킨다거나 루즈벨트가 신봉했던 공격적인 국가주의를 실현하는 노력을 실천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카플란의 초강경 제국주의론**
부시가 선택한 또하나의 책 〈제국의 보병들〉의 함의도 그의 남은 임기 3년을 우려하게 한다.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미국을 지키기 위한 임무를 수행중인 미군들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인 로버트 카플란은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뚜렷이 보여주는 인물로 '제국주의'란 말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카플란의 관점에서 현재 벌어지는'테러와의 전쟁'과 각종 무력 갈등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의 전쟁(인디언 전쟁)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 대평원과 서부는 필리핀에서 아프리카 모리타니에 이르는 이슬람 세계로 치환된다.
카플란에 따르면 '제국의 보병들'은 언론과 국무부, 싱크탱크, 학계를 지배하는 "엘리트" 혹은 "코스모폴리탄"과 달리 "사냥을 하고, 픽업트럭을 몰고, 신에 대한 맹신은 있지만 뭐가 신성모독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익은 그들에 의해 지켜진다.
카플란은 또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존치를 주장하는 남부연방군의 전쟁 전통과 현재 남부 지방에서 나타나고 있는 "호전적 복음주의"를 찬양한다.
카플란은 미국의 군대가 세계 모든 대륙에 퍼져 있는 "홉스적 세계"에서 미국에 있어 제국주의는 19세기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하며 "자유로운 사회와 훌륭한 정부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미국의 정당한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카플란은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는 "피의 숙청"과 아랍 자유화의 역풍으로 규결되고 시리아인들에 의해 전체주의적인 레바논의 재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또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며 "인도네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인도네시아 군인은 어떤 식으로건 중국군에게 포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휴가가 끝나면 루즈벨트와 카플란이 지배하게 될 부시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2006년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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