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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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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

감독 로만 폴란스키 | 출연 벤 킹슬리, 바니 클라크, 제이미 포어맨 | 수입 ㈜팬텀 | 배급 시네마서비스 | 등급 12세 관람가 | 시간 128분 | 2005년

로만 폴란스키와 찰스 디킨스의 결합이라니, 이들의 작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먼저 의문이 앞설 것이다. 아무리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라지만 디킨스의 소설은 이미 너무 많이 영화화되었으며, 아동 영화를 만들기에는 폴란스키의 세계가 상당히 음험하고 괴팍하지 않은가. 게다가 디킨스의 1838년 원작 〈올리버 트위스트〉를 각색한 데이비드 린의 〈올리버 트위스트〉(1948)와 캐롤 리드의 뮤지컬 〈올리버!〉(1968)는 거의 흠 잡을 데 없는 '웰메이드 영화'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지 오래다. 더구나 캐롤 리드의 〈올리버!〉는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볼거리, 배우들의 명연으로 1969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상을 휩쓸면서 디킨스의 원작을 옮긴 결정적 영화로 명성을 누려왔다. 일흔이 넘은 노장이 이 '불행한 소년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무엇일까.
〈피아니스트〉(2002)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폴란스키는 가족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영화를 물색하다 아내이자 배우인 엠마뉴엘 세이너의 권유로 〈올리버 트위스트〉에 손을 댔다. 폴란스키 역시 처음에는 연출을 주저했으나, 디킨스 특유의 보편적인 풍자 정신과 사회적인 함의에 매료돼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영국, 프랑스, 체코, 이탈리아가 공동 제작하고 〈피아니스트〉의 주요 스탭과 명제작자 알랭 사르드가 뭉친 〈올리버 트위스트〉는 고전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격조 높은 시대극으로 완성됐다.

줄거리는 익히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19세기 중반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 고아 소년 올리버(바니 클라크)는 강제노역소에서 밥을 더 달라고 했다가 소장의 눈 밖에 나서 장의사에 팔려간다. 하지만 주인의 아들과 불화를 일으킨 올리버는 무작정 런던으로 향하고, 소매치기 소년 다저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소매치기 집단의 노회한 악당 패긴(벤 킹슬리) 밑에서 일하던 올리버는 우연히 도둑으로 누명을 쓰게 되지만, 부유한 브라운로우 씨의 도움으로 소매치기 소굴을 벗어난다. 그러나 악랄한 빌 사익스(제이미 포어맨)와 패긴은 올리버의 뒤를 추적한다.

폴란스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상당히 어둡고 침울하다. 프라하에 재연한 빅토리아 시대 런던 거리는 〈피아니스트〉의 유대인 게토에 버금갈 정도로 암울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캐롤 리드의 〈올리버!〉가 보여주었던 유쾌하고 활달한 스타일과는 정반대로, 폴란스키는 위선과 위험, 배신과 협박, 살인의 공포와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교차했던 한 시대의 징후를 포착한다. 19세기 런던은 산업혁명의 기치 아래 계급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무질서와 혼란 속에 어린 아이들이 노동력을 착취 당하면서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사회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올리버의 모험은 바로 그 혼란을 집약하고 있으며, 이기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악당들은 우울한 시대가 낳은 돌연변이다.

전체적인 드라마는 절묘하게도 로만 폴란스키의 전작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폴란스키는 〈리펄션〉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 〈하숙인〉 등 전성기 시절의 대표작뿐 아니라, 최근작인 〈나인스 게이트〉 〈피아니스트〉 등에서도 거대한 힘에 쫓기는 개인의 운명을 그려왔다. 그 정체가 심리적인 망상이든 사회적인 실체이든, 자신을 억누르는 압도적인 권력에 굴복하거나 파멸당하며, 운 좋게 구원을 받는다 해도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는 인간의 모습을 묘파했던 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역시 폴란스키 특유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영화다. 위선적인 악당과 어른들 틈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도주해야 했던 소년 올리버는 어떤 면에서 매우 폴란스키적인 인물인 셈이다.

물론 이 영화는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무거운 운명을 짊어진 소년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올리버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들, 천박하고 야비하지만 시대의 희생자로서 연민을 일으키는 다채로운 사람들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문학사상 가장 특이한 악당 캐릭터 패긴을 연기한 벤 킹슬리는 배우로서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지운 채 완벽하게 변신한다.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주인공 올리버 역의 바니 클라크는 캐롤 리드의 〈올리버!〉에서 주연을 맡았던 가냘픈 마크 레스터보다는 존재감이 약한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깔끔한 연기를 선사한다.

'전체 관람가' 판정을 받긴 했지만, 〈올리버 트위스트〉에는 상당히 잔인하고 암울한 장면이 배치돼 있다. 특히 영화의 주요 고비마다 반복 등장하는 죽음과 살인의 모티프는 성인 관객이 보기에도 꽤 섬뜩하다. 디킨스의 원작에 유머와 풍자, 활력과 기괴함이 교차했다면, 폴란스키는 이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데 성공한다. 비록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는 없을지라도, 폴란스키의 팬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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