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지난 12월 15일 공식 출범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영화스태프들의 고용안정과 임금 인상, 근로조건개선을 1차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2만 5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영화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주요 과제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최진욱 위원장을 만났다.
- 이제 일주일쯤 지났다. 노동조합 가입자수는 기대만큼 늘어나고 있나?
아직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영화노동자들을 끌어 모으는 건 어차피 시간이 더 필요한 문제다. 지금까진 대략 4500명 정도가 가입한 상태다. 노동조합의 힘은 조합원의 숫자와 비례한다. 조합원이 많아야 대표성을 지닐 수 있으니까. 앞으로 2만 명 정도까지 늘어나게 하는 게 목표다.
- 영화노동자가 2만 5000명이라는 건 어떻게 나온 추정치인가?
지금 이 순간 촬영 중인 현장 스태프의 수가 대략 3천 명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최근까지 일을 했고 잠시 쉬고 있는 스태프수가 보통 1500 명 정도다. 그리고 그만큼의 스태프들이 촬영을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영화산업에서 일을 하는 촬영이나 조명, 제작 같은 현장 스태프들의 숫자는 1만 명 정도가 된다. 여기에 극장 등에서 일하는 영화 관련 산업 종사자들까지 합하면 2만 명에서 2만 5000명 정도 될 것이다.
- 영화노동자들의 반응이 더딘 건 어째서인가? 영화노조에 가입하는 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어서는 아닌가?
그건 아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게다가 촬영부나 조명부 같은 현장 스태프들의 맏형 격인 퍼스트나 세컨드 스태프들도 대부분 노조에 참여한 상태다. 다만 막내급들에겐 아직 전파가 되지 않은 것 같다.
- 처음엔 가입자수를 늘리겠다고 하다가 결국 나중에 서로 다른 노선을 가진 사람들끼리 내부에서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다른 노조의 사례가 그랬다.
그런 면에서 영화노조와 같은 직능 별 노조는 좀 유리하다. 어차피 다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 비둘기 둥지 시절 '신문고 제도'를 운영하면서 제작부들이 반발했던 적이 있지 않나?
물론 이견이 아주 없을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영화노동자들 내부의 이견쯤은 조율할 능력이 생겼다. 노조는 원칙을 지키면 된다. 그러면 모두가 동의한다. 영화노조 초기에 다잡을 부분도 바로 원칙을 세운다는 것이다.
- 당초 영화노조에 가입해야만 영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클로즈드숍'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었다.
노조가 보다 강력해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노조가 헤게모니를 얻으려면 클로즈드숍과 용역공급사업권을 확보하면 된다. 결국 두 가지 방식 모두 영화노조가 영화인력을 완전히 장악하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사업 단위의 노조도 이런 권한을 쉽게 얻지는 못한다. 얼마 전 항만노조가 이 부분을 가지고 투쟁하다 결국 깨졌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고려해야만 하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노조는 노조가입을 강압적으로 권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여론을 보면서 그런 각종 제도적 장치를 도입해나갈 것이다.
-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작정인가?
우선 영화노조의 정체성부터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 위원장의 임기는 2년이다. 영화노동현장의 모순들은 워낙 오래된 것들이고 가지 수도 많아서 그 모든 걸 한꺼번에 해결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당분간은 영화노조를 스스로 추스리고 영화산업 내부의 호응을 얻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CF 분야까지 노조 참여 의사를 밝혀온 상태다. 영화노조의 영역이 앞으로는 영상 분야 전체로 넓혀질 것이라고 본다.
- 먼저 무슨 문제부터 다룰 건가?
임금의 현실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화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도록 하는 것이다. 하루 8시간씩 일하고 합당한 임금을 받는 것 말이다.
- 구체적인 전략은 있나?
어쩌면 임금 현실화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 영화계는 부율 조정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다. 만일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부율을 현재의 6대4에서 5대5로 조정할 수 있다면 당연히 영화 스태프들의 임금도 인상될 것이다.
- 제작자들과 극장의 부율 협상에서 영화노조가 어떤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산업 전체의 이익이 늘어나는 걸 반대하는 노동자는 없다는 얘기다.
- 하지만 사용자의 이익이 노동자의 이익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문제 아닌가?
부율과 임금 인상을 직접 연결 짓는다는 건 너무 단순한 논리다. 다만 지금 한국영화산업의 체질개선이 시작되고 있고 그 문제들이 모두 연결돼 있다는 얘기다.
- 앞으로 영화노조의 협상 대상은 어디가 되는 건가? 제작자협회인가?
제작자협회는 제작사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다. 또 그들 역시 투자사의 지시를 받은 하청업체의 성격도 갖고 있다. 따라서 원청업체인 투자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제작가협회가 각 제작사들로부터 위임장을 받는다면 공식적인 협상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당장은 개별 제작자나 투자자들과 협상을 벌일 거란 말인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건 전략상의 문제다.
- 그 동안 제작자들과 개별 접촉을 한 적은 있나?
한 제작자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었다. 하지만 만나지 않았다. 영화노조는 노조간부가 혼자 제작자들을 만나는 걸 금지하고 있다. 노조간부는 반드시 세 명 이상이 함께 제작자를 만나야 한다.
- 영화노조에 대한 제작자들의 반응이나 영화계의 반응을 어떤가?
저러다 말겠지 하는 시선도 있는 것 같더라. 관심들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일을 벌일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입장들인 듯 하다. 앞으로 가장 큰 제작사와 협의를 하든, 문제가 생긴 제작사와 협의를 하든지 간에 영화계 현안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할 것이다. 영화계는 여전히 춥고 배고프고 졸리니까.
- 영화인회의 같은 영화계 내부의 단체들과도 연대하나?
아니다. 영화계 선배들은 한결같이 영화노조는 같은 성격을 지닌 단체하고만 연대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단체들과 연대하면 노조의 노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영화진흥위원회 노동조합이나 영상자료원 노동조합과 협조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계 외부의 노조들이 더 큰 지지세력이 돼 줄 것이다. 품앗이 하듯, 영화노조가 영화계 밖의 노동쟁의에서 지지의사를 밝히고 다른 노조들도 영화노조를 지지해줄 거다.
- 노조 활동 경험이 있나?
민주노총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 영화노조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나?
영화계는 매우 정치적인 곳이다. 투쟁을 외치는 전투성만으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뜻이다. 제작자들은 투자자들이나 배우, 심지어 정치권과도 관계를 맺고 영화사업을 하고 있다. 영화노조도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영화노조는 그들과 힘겨루기를 하기엔 내공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 만일의 경우, 영화계에서도 파업과 같은 노동쟁의가 있을 수 있나?
최근에 영화진흥위원회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면서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까지 모두 일손을 놓겠다고 얘기했었다. 다행히 노사가 합의를 봐서 파업을 안 일어났지만, 만일 그랬다면 서울종합촬영소에의 영화 촬영이 모두 중단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야 한다면, 영화노조도 얼마든지 파업을 결행할 수 있다.
- 지난 12월 22일 노동부에 노조 설립 인가 신청을 낸 것으로 안다. 언제쯤 인가를 받게 되나?
빨리 인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노동부는 낯선 노동 단체에 대해서는 인가를 잘 내주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노조가 설립 인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전혀 없진 않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건가?
그 땐 무조건 싸우러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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