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국회의장이 22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을 치켜세웠다. "강 의원이 '이제 우리도 비폭력적인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깊은 고뇌 끝에 나온 용기 있는 발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하루 전날인 21일 일부 언론들이 "장기간의 단식농성 경험자인 강기갑 의원조차 한국의 시위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면서 "홍콩 시위사태를 계기로 폭력적인 시위문화는 수정돼야 한다"고 보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농민 2명의 사망과 관련해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논란이 끝나지 않은 민감한 시점에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기에 22일 강기갑 의원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격렬시위는 농민 무시하는 '정부'와 무조건 봉쇄하는 '경찰'의 합작품"**
강기갑 의원은 "시위대의 폭력과 경찰의 폭력 사이의 악순환과 비폭력에 관한 원칙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언론에서 '시위대'만 겨냥하고 농민만 잘못했다는 식으로 보도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강 의원은 "격렬시위는 농민들이 피를 흘리는 난리가 나야 대책을 내놓을 뿐 그 전엔 농민들의 의견은 들은 척도 안 하는 정부와 무조건적인 진압과 봉쇄의 태도로 나온 경찰의 합작품"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지난달 15일 농민대회 때도 그렇지만 당장 농민들 희생이 너무 크다"며 "더 이상 이런 희생적 시위는 농민들 스스로에게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안 되겠다는 판단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농민만의 시위로는 한계 있어…이제 일반 국민들의 동참이 관건"**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시위문화'를 말한 또 다른 이유로 '전략적인 판단'을 들었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는 농민들만의 시위로는 상황을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농민들 스스로 절감하고 있다. 정치권은 농업인구가 7~8%에 지나지 않는다며 쳐다보지도 않는 상황이니, 국민들이 농업이 농민만의 문제가 아닌 걸 인식하고 '건강과 안전한 밥상'을 지키기 위해 동참해주지 않으면 농민들의 힘만으로 상황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폭력적 시위문화로는 광범위한 대중을 농민 편으로 이끌어내기 힘들다. 그래서 보다 비폭력 평화시위로 가야한다고 봤다."
강 의원은 홍콩에서 원정시위를 벌인 한국 농민들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목격하고 '새로운 시위문화'의 가능성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나는 단식을 한 뒤에는 밀가루 독 때문에 빵을 먹지 않는데, 홍콩 시민들이 건네준 빵은 도저히 받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홍콩에 간 우리 농민들 모두가 다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빵을 일일이 손에 쥐어줬다. 따뜻한 빵을 베어 먹는데 눈물이 주르르 나더라."
홍콩 현지에 취재차 가 있었던 기자 또한 한국 농민들의 시위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고 '한국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뜨거운 호응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다가 곧바로 중국 공안에 억눌려 민주화의 욕망을 발현할 기회가 없었던 홍콩 시민들이 한국 농민들의 시위에 자극을 받은 거라고 본다. 17일에 격렬시위가 벌어지고 난 뒤에도 우리 농민들의 시위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지지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홍콩 〈명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60%가 여전히 지지한다는 것 아닌가. 민주화의 싹을 틔우고자 하는 홍콩 시민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것은 홍콩 경찰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기도 하다."
***"정부도 평화시위 유도하려면 '시위장소'를 배려해야"**
다시 물었다. "홍콩 언론들은 우리 농민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담는 데 연일 지면을 할애했고, 시위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이해도도 높았다. 그런데 왜 굳이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컨벤션센터로 가야만 했는가?" 강 의원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시위장소 통제'의 문제를 말했다.
"컨벤션센터 근처에서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의 의사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어느 나라 정부든 폭력시위를 근절하려면 누구나 평화적 의사표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시위를 하려면 저 멀리 한적하고 소리도 들리지도 않는 곳에 가서 하라'고 하면 누가 듣겠나. 같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 의원은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이 홍콩 WTO 각료회의 기간 중 기자들에게 "농민이 350만이라지만 진짜 농민은 100만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부재지주들"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유감스러울 정도가 아니다. 그건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다. 국회 농해수위(농림해양수산위원회) 의원으로서 재경부의 목소리를 대신 낸 격이다.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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