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전윤수 | 출연 차태현, 송혜교, 이순재, 김해숙 | 제작 정훈탁 | 배급 아이러브 시네마 | 등급 12세 관람가 | 시간 98분
송혜교의 스크린 데뷔작 〈파랑주의보〉는 가타야마 쿄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개봉 당시 일본 관객들의 눈물샘을 사정없이 자극했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한국 관객들에게도 사랑을 받은 멜로 영화.
〈파랑주의보〉는 원작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관객들에게 어필했던 순수한 사랑이라는 멜로 영화의 보편적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그러나 원작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복잡한 시간여행을 하는 것에 비해 〈파랑주의보〉는 주인공 수호가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 구성을 취하고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잔재미를 더한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데다 마음씨까지 착한 학교의 '퀸카' 수은(송혜교). 공부도 보통 외모도 보통인 평범한 학생 수호(차태현)는 어느날 수업시간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은의 눈길을 느낀다. 수은을 짝사랑하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수호와는 달리 수은은 적극적이다. "나 고로케 사주라" 한마디로 수호에게 다가간 수은은 수호와 그들만의 달콤한 첫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둘이서 여행을 떠난 섬에서 수은이 쓰러지면서 둘의 사랑은 어려움에 빠진다.
〈쉬리〉 〈은행나무 침대〉의 조감독을 거쳐 2001년 중년의 사랑을 그린 〈베사메무초〉로 데뷔한 전윤수 감독이 4년 만에 소년소녀의 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영화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한 순간의 기억이 삶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감독은 첫사랑의 영원성과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수호의 할아버지(이순재)의 첫사랑을 교차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길고 긴 세월 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 담아두었던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으면서 수호의 첫사랑에 대한 암시를 하는 것. 평생 그리워하지만 결국 맺어지지 못한 채 임종을 맞는 할아버지의 첫사랑은 채 피기도 전에 스러지는 수호의 첫사랑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영화는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답게 거제도의 유려한 풍경과 순진무구한 수호와 수은의 순수한 사랑을 밝고 경쾌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가 지독한 신파로 흐르면서 초반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무너지고 만다. 더없이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준 수은이 죽음을 앞두자 수호에게 평생 자신만을 영원히 사랑해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은 씩씩한 멜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파랑주의보〉를 관객의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한국 멜로 영화의 전형성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만다.
하지만 〈파랑주의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다채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원작에는 없는 수호의 동생(김신영)을 창조해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원작의 사진관 할아버지를 수호의 친할아버지로 탈바꿈시키면서 수호의 첫사랑의 영원성을 강조한다. 다양한 캐릭터는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할아버지 역의 이순재와 억척 엄마 역의 김해숙, 섬의 민박집 할머니 역의 김지영 등 중년 연기자들의 맛깔스런 연기는 영화에 감칠맛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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