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황우석 교수 사태를 통해 한 가지 분명히 드러난 것은 한국사회의 현실인식이 구체적 진실보다는 막연한 희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16일 황 교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인위적 실수' '치명적 실수'라는 말로 〈사이언스〉 2005년 논문이 조작됐음을 실토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이 그의 논문 조작을 비판하기보다는 '줄기세포 원천기술 보유'를 강조하며 그를 감싼 것도 이러한 자기기만적 현실인식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한국언론의 자기기만적 현실인식이 황우석파동을 거치면서도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7일자 〈뉴욕타임스〉의 사설 "복제에 대한 좌절된 주장(The Collapsing Claims on Cloning)"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를 보자. 다음은 이 사설에 대한 YTN의 18일자 보도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란이 줄기세포 분야의 장래성이나 한국내 치료용 복제 연구의 중요성을 감퇴시켜서는 안된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한 연구팀의 실수나 잘못이 있다고 해서 급속히 발전하는 과학분야의 유망성이나 한국내 줄기세포 연구와 치료용 복제 가속화의 중요성을 감퇴시켜서는 결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이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사진과 자료의 문제점을 폭로한 것은 한국의 과학과 언론이 독립성을 갖고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YTN, 12얼 18일 보도)
YTN은 이 보도에서 〈뉴욕타임스〉가 이번 파동에도 불구하고 "한국내 치료용 복제 연구의 중요성을 감퇴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했으며, 나아가 황 교수 논문의 문제점이 폭로됨으로써 "한국의 과학과 언론이 독립성을 갖고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했다.
그러나 YTN의 이 보도는 전적으로 틀렸거나, 아니면 부분의 진실만을 전하고 있다. 우선 '황우석 사태로 한국 복제연구 후퇴 안돼'(YTN 기사의 제목)라는 부분에 대한 〈뉴욕타임스〉 사설의 관련 대목을 읽어 보자.
"어느쪽이건 이는 (줄기세포 분야에서) 주도적 과학강국이 되겠다는 한국의 노력에 엄청난 후퇴를 초래했으며, 전세계의 줄기세포 연구 및 치료에도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먼 나라(a distant land: 한국)의 한 연구팀의 실수 또는 비행이, 궁극적으로 고의적 조작인 것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급속하게 뻗어가는 이 분야의 유망성을 감소시켜서는 결코 안 되며, 또한 훨씬 면밀한 감시체제가 돼 있는 이 나라(this country: 미국)의 가속화하는 줄기세포 연구 및 치료용 복제의 중요성을 감소시켜서도 안 된다."
("Either way, this is a stunning setback for South Korea's efforts to become a leading scientific power and a black mark for the whole field of stem cell research and therapeutic cloning. But the mistakes or misdeeds of a single research team in a distant land, if misdeeds are ultimately proved, should in no way diminish the promise of this fast-emerging field of science or the importance of accelerating stem cell research and therapeutic cloning in this country, where it can be more closely monitored.")
한마디로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줄기세포 연구 파동이 미국의 줄기세포 연구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좀더 확대해석을 해서 이번 연구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줄기세포 연구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명백히 한국을 지칭한 귀절은 없다. 오히려 연구윤리나 연구정직성에 대한 면밀한 감시체제를 갖춘 미국에서는 황교수 파동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도대체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한 한국의 강력한 경쟁상대인 미국이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가 후퇴하는 것을 안타까와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데도 YTN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언론은 이러한 기본상식조차 무시한 채 원문에도 없는 "한국"을 끼워넣어 작문에 가까운 오보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이 기사는 뉴욕발 연합뉴스 기사를 전재한 것으로 오보 내지는 오역의 근본적 책임은 연합뉴스 측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언론이 연합뉴스의 번역문을 그대로 전재한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언론은 '사실확인'(이 경우에는 원문 확인)이라는 언론의 기본조차 모른단 말인가.
한편 YTN은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이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사진과 자료의 문제점을 폭로한 것은 한국의 과학과 언론이 독립성을 갖고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는데 이 또한 정확한 보도는 아니다.
아래의 번역문에서 드러나듯 〈뉴욕타임스〉 사설은 황 교수의 논문 조작이 밝혀진 것은 "주로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과 위험을 무릅쓴 언론인들"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한국의 과학과 언론이 활력에 차 있으며 독립적"임을 과시했다고 평가했다.
"(〈사이언스〉 논문의) 사진과 기타 자료의 문제점들은 주로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과 위험을 무릅쓴 언론인들에 의해 밝혀졌는데, 이는 이번의 커다란 오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과학과 언론이 활력에 차 있으며 독립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신호이다."
("The discrepancies in photos and other data were largely brought to light by young Korean scientists and crusading Korean journalists, a heartening indication that science and journalism in South Korea are vigorous and independent despite this huge black mark.")
다시 말해 한국의 모든 과학자와 모든 언론인이 아닌 "젊은 과학자들과 위험을 무릅쓴 언론인들"이 "한국의 과학과 언론이 활력에 차 있으며 독립적"임을 보여주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말하는 젊은 과학자란 BRIC이란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황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익명의 소장과학자들을 말하며, 위험을 무릅쓴 언론인이란 이른바 주류언론의 온갖 음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실추구를 위해 헌신한 MBC 〈PD수첩〉의 제작진 등 극히 일부의 언론인을 말한다.
이에 앞서 〈뉴욕타임스〉의 연구부정 전문기자인 니컬러스 웨이드는 16일자 기사("한국 과학자, 복제연구 조작을 인정하다" Korean Scientist Said to Admit Fabrication in a Cloning Study)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번 폭로가 한국 과학계에는 타격이 되겠지만, 한편으론 황우석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밝혀낸 한국의 잘 훈련된 소장과학자들에게는 승리로 기록될 수 있다. MBC TV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활기찬 보도가 한몫을 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황 교수를 쓰러뜨린 비판의 거의 모두는 이들 젊은 과학자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들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Although the new disclosures are being presented as a blow to Korean science, they can also be seen as a triumph for a cadre of well-trained young Koreans for whom it became almost a pastime to turn up one flaw after another in his work. All or almost all the criticisms that eventually brought him down were first posted on Web sites used by young Korean scientists, although vigorous reporting by MBC television and the online newspaper Pressian also played a leading role.")
물론 〈뉴욕타임스〉의 보도와 평가가 절대적 잣대가 아님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러나 이 신문의 기사가 보도의 대상이 되었다면 적어도 그 기사 만큼은 정확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이라는 보통명사 뒤에 숨어 자신의 과오를 숨기려는 듯한 작태는 역겹기까지 하다.
과학이든 언론이든, 또는 사회 전체든 합리적인 상호비판과 검증이 보장돼야만 건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권력의 힘을 빌거나 대중들의 막연한 기대 뒤에 숨어 합리적 비판과 검증을 억누르는 사회라면 미망과 아집의 늪을 결코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황우석의 잘못을 누가 밝혀냈는가, 이른바 주류언론의 과오는 누가 드러냈는가. 이번 사태는 한국사회의 자기교정 능력이 한 단계 성숙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YTN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황 교수가 그랬듯이, 교정과 비판의 대상이었지 그 주체는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주류언론은 이번 황우석 파동의 교훈을 심각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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