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를 잘 모르면, 그녀를 '머리없는 미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섹시하긴 하지만 머리엔 그리 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식석상에 그녀가 즐겨 입고 나오는 몸에 꽉 달라붙는 의상들을 보라. 그녀는 대중 앞에서 되도록이면 자신의 몸을 노출하길 원하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과감하고 도발적이며 그래서 다소 건방지다는 느낌까지 드는 여배우 가운데 한명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정신보다는 육체에, 세상보다는 자기자신에게 더 빠져 있는 나르시스라고 생각한다.
***섹슈얼리티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배우**
하지만 김혜수를 잘 알게 되면, 그녀와 한 시간 정도 차를 마시며 자분자분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 여성이 오히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여배우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김혜수는 머리가 지나치게 좋은 사람이다. 그녀는 상업적인 게 뭔지, 비상업적인 게 뭔지 아는 배우다.
그 구분을 안다는 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절대 팔아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이고 절대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는 것이다. 김혜수는 내가 만나 본 연기자 가운데 가장 머리가 좋고, 가장 지적이며, 가장 말을 잘하는 여배우다.
이상야릇하게도 김혜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공포영화만 연달아 세편을 찍었다. 김지운 감독이 만들었던 2002년의 〈쓰리 - 메모리스〉, 지난 해에 나왔던 김인식 감독의 〈얼굴없는 미녀〉 그리고 요즘 막 화제를 모으고 있는 〈분홍신〉 등등 세편이다. 그녀는 공포영화에 출연하면 출연할수록 극단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세련된 연기를 선보인다. 무엇보다 그녀가 점점 느는 것은 샤우팅 곧 비명이다. 무엇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최고의 공포스런 표정을 만들어 낸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쓰리〉에 나왔던 김혜수 때문에 악몽을 꾼다. 예컨대 이런 장면 때문이다. 김혜수의 남편 정보석은 어느 늦은 오후 까무룩 잠이 든다. 집안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그가 잠든 사이에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서 방안에는 어스름 어둠이 깔린다. 잠깐이지만 깊게 잠든 정보석. 순간 거실에 있던 벽시계가 댕, 시간을 알린다. 퍼뜩 잠이 깬 정보석은 갑자기 이상한 기운에 소스라쳐 놀란다. 그가 누워있는 소파에서 현관으로 가는 통로 저쪽에 사람인 듯 보이는 물체가 어슴푸레 눈에 들어 온다. 찬찬히 그 물체에 집중하던 정보석은 그만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만다. 거기에는 오래 전에 실종된 자신의 아내 김혜수가 여행 가방 비슷한 걸 옆에 끼고 머리를 잔뜩 앞으로 풀어 헤친 채 몸을 앞뒤로 흔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도발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배우**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뒤를 흘깃흘깃 쳐다보게 된다. 김혜수가 똑 같은 포즈로 저기 어딘가 앉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별로 무서울 것도 없는 얘기라고? 영화의 결말을 알게 되면 그 장면을 도저히 잊을 수 없게 된다. 〈쓰리 – 메모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이 많을 터이니 결말은 밝히지 않겠다.
최신작 〈분홍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그녀는 포스터에서의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드는데 김혜수의 머리 뒤로 분홍신을 신은 다리 하나가 삐죽 나와 있고 그녀는 왼팔을 뻗어 그 발목을 잡고 있다. 아, 근데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라. 공포에 짓눌려 아예 표정 자체가 없어진 표정으로 그녀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작진은 포스터를 만들 때, 편집을 할 때 일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이거 너무 무서운 거 아냐? 역효과 나는 거 아냐? 너무 무서워서 사람들이 안 오는 거 아냐?
그녀가 잇따라 공포영화를 선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얘기를 빌면 "공포영화만큼 인간 내면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르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포영화는 그 시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코드의 영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운의 〈쓰리 - 메모리즈〉는 우리사회가 굳건히 믿고 있는 중산층 가정이 내부로부터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김인식의 〈얼굴없는 미녀〉는 철저하게 고립화되고 파편화 돼버린 현대인들의 극단적 소통부재 상황을 설파한다.
이번 영화 〈분홍신〉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 내부 저 밑바닥의 추악한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현대사회가 끊임없이 재생산해내고 있는 물신주의의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은 결국 엄청난 파국으로 끝날 것임을 경고한다. 세상에 대한 경고. 김혜수가 작금에 연기자로서는 고난이도급에 해당하는 공포영화에 자꾸 도전하고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해 경고하듯이 도발적으로 소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아, 그런데 아직도 고민이다. 〈쓰리 - 메모리즈〉의 기억과 〈얼굴없는 미녀〉의 그 끔찍했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또 한번 더 용기를 내야 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홀연히 김혜수의 매력에 빠져 다시 한번 극장을 찾을 것이다. 제작진과 달리 〈분홍신〉의 흥행이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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