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린 생명의 외침, 저 아픈 생명의 아우성, 가난한 삶들의 절규, 죽어가는 삶들의 몸부림. 점점 더 어두워지네, 내 눈도 귀도 멀어 가네, 점점 더 메말라 가네, 슬픔도 눈물도 모두 다. 슬픔이 모자란 건가, 아픔이 모자란 것인가. 미움이 모자란 건가, 죽음이 모자란 것인가."(별음자리표의 노래 '생명이여' 중에서)
평화예술가 별음자리표 씨는 지난 5일부터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리고 있는 작은 문화제 '평화: 부끄럽고 슬픈 축제'에서 노래를 부른다. "미안해요 이라크. 돌아오삼 자이툰"이라는 펼침막을 내걸고 진행되는 이 '축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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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음자리표 씨는 요즘 급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도 매일 공연을 강행하다가 결국 감기몸살에 걸려 2~3일 간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 외에도 행사를 같이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혹한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지나는 시민들의 눈길은 무덤덤하다.
"날씨가 워낙 추우니까 서서 보시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이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꼬미 씨의 말이다. 그는 "하지만 지나는 분들께서 이렇게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살아 있다는 것만은 알아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자이툰 철군보다 '평화 감수성' 부족이 더 문제"**
문화제 한켠에서 공연을 바라보던 동화작가 박기범 씨도 같은 마음이란다. 2003년 '이라크 반전평화팀'과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 민중재판' 실행위원 등으로 활동했던 박 작가는 "내가 든 이 촛불이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의 촛불이 되길 바란다"며 "슬픈 것을 슬퍼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이툰 부대가 처음 파병되었을 때나 김선일 씨가 돌아가셨을 때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열었지만 결국 자이툰 부대를 철수시키지 못했다"며 "사건이 생길 때 뜻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부족한 '평화 감수성'을 차츰차츰 키워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단번에 파병이 철회되거나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며 "작년 기준으로 이라크에서 하루에 64명이 죽어간다는데, 하루라도 전쟁을 빨리 끝내면 64명이 살 수 있는 것이고 열흘을 빨리 끝내면 640명이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게 우리 모두의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매서운 바람에도 이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활기찼다. '파병 재연장안 반대'라는 팻말을 든 조약골 씨는 폴짝폴짝 뛰고 춤추거나 행인을 따라가며 팻말을 계속 보여주는 등 흥겨운 몸짓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지 않겠느냐"며 "평화운동이니 평화롭게, 즐겁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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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에도 이어지는 평화의 노래**
이 문화제는 지난 1년간 '종전과 철군을 위한 서울 길바닥평화행동(길바닥 평화행동)'을 해 왔던 사람들과 인터넷카페 '박기범의 이라크 통신(바끼통)'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열고 있다. 또 퍼포먼스팀 '이름없는 공연팀'이 자주 찾아와 공연을 한다. '길바닥평화행동'은 전쟁을 반대하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개인 네트워크' 형식의 모임이다. 오래하다 보니 고정멤버가 생겼다고 한다.
'길바닥평화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대리 씨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내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면 이라크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자연스레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14일 문화제에는 청와대 앞에서 일인시위 중인 새만금 개화도 주민 김종덕 씨도 찾아왔다. 김씨는 "갯벌 다 망치는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하는 것을 봐도, 이라크 전쟁에 파병하는 것을 봐도 정부가 한심하기만 하다"며 "한시바삐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지 14일로 꼭 1000일이 됐다. 이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평화를 호소한 지도 1000일이 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가 닿는 곳엔 찬바람만 휑하다.
"대한민국에서 평화는 왕따다." 별음자리표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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