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10개월 여 앞두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마침내 '의원 38% 감축' 카드를 꺼내들었다.
도로공단과 우정공사 등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 10% 감축과 인건비 절감 및 국회의원 연금제도 폐지와 같은 행정개혁을 이끌어 온 '고이즈미 개혁'의 최종 칼끝이 일본 최대의 기득권 집단인 의회로 향한 것이다.
***"선거제도도 뜯어 고쳐라" 지시**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7일 집권 자민당 간부들과 만나 중의원과 참의원의 정원을 각각 38% 가량 줄이는 등 국회개혁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중의원은 480명에서 300명으로, 참의원은 242명에서 150명 정도로 줄이는 게 좋겠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지방의원이 1만 명 이상 감축됐다'며 국회의원도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한다고 추진배경을 설명했다.
고이즈미는 또 선거 제도도 뜯어 고치라고 당에 지시했다. 이는 그가 지역구에서 낙선한 뒤 비례대표로 부활할 수 있는 현행 선거제도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인데,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최우선 과제는 (국회의원) 정원 삭감"이라는 말로 개혁의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비현실적 개혁안" 반발 만만찮아**
일본의 현재 국회의원 정원은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쳐서 모두 722명이다. 양원제라서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도 있지만 인구와 국토 면적에 비해 너무 많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따라서 1980년대 764명이던 정원을 소폭 줄였던 적이 있지만 정치권의 '밥그릇'과 관련된 문제라서 대폭 삭감은 어려웠다. 1994년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따라 추진됐던 선거제도 개혁 때도 중의원을 11명 줄이는데 그쳤다. 중의원 20명, 참의원 10명을 줄이던 2000년에도 정치권은 몸살을 앓았다.
따라서 38%인 272명을 줄이자는 고이즈미 총리의 제안은 폭탄 발언에 가깝다. "내년 정치 과제가 아니라 2010년 이후의 이야기"라고 한 발 물러섰지만 자민당 일각에서는 '천하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는 국회의원 연금도 내년 4월까지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의원연금은 10년 이상 재직한 의원에게 지급되는 연금으로 재직 중 연간 130만 엔을 불입하면 65세 이후 연간 410만 엔을 받는다. 의원 재직연수가 1년 늘어날 때마다 약 8만 엔씩 급부액이 증가하는 등 일반 연금에 비해 조건이 훨씬 좋아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가 '무모하다'고 할 정도의 이같은 의회 개혁에 착수하자 일본 정가에서는 그에게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보내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중의원 선거 압승 직후 제1야당인 민주당의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고이즈미 총리가 내년 9월 퇴임을 전후해 큰 틀의 정계 개편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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