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최근의 연설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과거 공산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비교하면서, 대테러전쟁의 의도와 테러집단의 본질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미국의 저명한 국제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주장했다.
***"부시, 트루먼-레이건 처럼 보이려 해"**
카터 행정부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냈고 현재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브레진스키는 4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부시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들의 도전이 세계 전역에서, '악마적' 속성으로, 적들에게 무자비하게, 삶과 생각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려는 기세로 벌어지고 있다면서 대테러전은 '완벽한 승리'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같은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브레진스키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는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다"면서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에 비유함으로써 오사마 빈 라덴을 레닌과 스탈린,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려놓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브레진스키는 "공산주의는 틀린 이념이긴 하지만, 어쨌든 1950년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운동이나 모의가 있을 만큼 큰 영향을 미쳤고 러시아와 중국 같은 나라들에서는 국가권력까지 장악한 이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테러리즘은 그런 정치적 영향력도 없고 공감도 얻지 못하는 일부 고립된 집단의 전술일 뿐으로, 이데올로기가 아닌 운명론과 허무주의에 가깝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대통령의 비유에는 빈 라덴의 '지하드'가 국경과 종교를 뛰어넘어 수십억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며 "그것은 빈 라덴에게 엄청난 찬사가 될 수 있으나 정당화될수는 없다. '이슬람' 지하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갖기 어려운, 기껏해야 일부 고립된 정파이거나 제한된 운동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사상적·정치적 도전은 엄청난 무력에 의해 뒷받침됐지만 현재의 테러리즘은 그같은 정치적 영향력이나 물리적 능력이 없다"며 "테러리즘은 근대화와 세계화의 새로운 딜레마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테러리즘의 힘은 제한적이고 폭력이라는 도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시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공산주의에 비유하는 것은, 과거 공산주의의 두려움을 다시 불러일으키려는 '공포의 확대'이자, 자신을 트루먼에서 레이건에 이르는 냉전의 역사적 승리자들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리즘 등식화가 더 큰 문제"**
그는 나아가 부시 대통령이 '이슬람 근본주의=테러리즘'으로 등식화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부시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잔혹한 사상' '이슬람 파시즘' 등의 용어들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마치 지금의 대테러전쟁이 이슬람 전체와의 전쟁처럼 비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부시의 어법이 결국 반미 항전을 '십자군'에 대한 투쟁으로 부르는 빈 라덴의 논리를 도와주는 셈이고 이슬람권으로부터 미국의 대테러전 의도와 전략마저 의심을 사는 잘못된 용어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같은 표현은 의도치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온건 무슬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지는 못하면서, 온건 무슬림들을 공격하는 격이 될 수 있고 결국 반테러 캠페인이 이슬람 전체에 대한 반대 캠페인이라는 인식을 퍼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부시 대통령이 우리의 진정한 동기를 모호하게 하거나 중동에서의 미국의 전략과 관련한 최악의 의혹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의미의 덫에 빠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훨씬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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