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한나라당의 혁신위 안이 의총에서 원안대로 확정됐다. 대선후보 경선인단의 비율을 '당원 50 대 비당원 50'이 되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하려던 혁신위의 당초 안이, 당내 최고의사 결정기구인 운영위에 넘어가선 '최대 당원비율 80%'가 가능하도록 뒤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였다.
운영위 결정이 발표된 10일부터 나흘간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를 경계로 한 이른바 '주류 대 비주류'의 대결로 '쑥대밭'이 됐고, 그 '쑥대밭'의 중심에는 원희룡 최고위원이 있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까지 만나며 '국민 50% 참여경선' 관철에 주력했던 원 최고위원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번 파동의 핵심을 "한나라당이 국민참여경선이란 기본개념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원 최고위원은 "이번엔 제도적 혁신이었지만 정치적 알맹이를 채우는 과정에서도 혁신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당 운영이 점점 어려워 질 것"이라고 경고해, 향후 당직 개편 등 혁신안의 이행 과정에서도 분명한 '역할'을 예고했다.
이에 원 최고위원이 좌장격인 '수요모임'도 오는 17일 당원대표자회의 이후 당직 개편시 혁신·통합형 인사가 필요하다는 인적 쇄신론을 제기할 것으로 의견을 모아 그의 행보가 다시 한번 주목된다.
***"국민참여경선, 적어도 민심과 괴리된 후보 내지는 말자는 것"**
프레시안: 혁신위 안을 원안대로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수훈을 세웠다. 그런데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선 경선인단의 당원 비율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지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원희룡: 경선인단 당원 비율에 따라 특정 후보의 유불리가 갈리지는 않는다. 다만 운영위에서도 한나라당 책임당원의 분포나 구성을 보면 경선에 책임당원이 많이 참여할수록 현재 당권을 잡고 있는 세력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기본 계산 정도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계산보다 더 위험한 것은 한나라당이 국민참여경선이란 기본 개념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사람들이 모여 당의 대표를 뽑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국민참여경선의 기본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당에 많다.
프레시안: 경선인단의 절반이 당원인데 국민경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또 국민들이 국민경선을 한번 경험한 만큼 2002년 대선만큼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원희룡: 국민참여경선이 100% 민심의 결과라고 보장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민심과 괴리된 인물을 당의 후보로 내세우는 실수는 막아줄 것이다. 당원의 의사와 국민의 의사가 분리 됐을 때 국민의 의사를 수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절장치인 셈인데 이마저 없애자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당이 국민을 향해 문을 열고 지지를 구해야지 문 안에서 쑥덕쑥덕 입맛에 맞는 후보를 뽑아 놓고 국민에게 지지해 달라면 누가 표를 주겠나.
***"이미 당원들은 기득권 포기했는데…" **
프레시안: 운영위에서는 한나라당 당원이라는 이유로 국민경선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원희룡: 당원에게 투표권을 아예 안 줬으면 역차별이란 주장이 가능할 테지만 이미 절반을 당원의 몫으로 떼 놓았다.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당원들이 탈당할까봐 걱정된다는 소리도 하는데 애초에 당원들이 모두 투표하길 원했다면 책임당원들이 모두 투표한 결과를 비율로 반영하는 방법도 강구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 일반 민심에 근접한 후보를 가려내기 위해서 연령, 지역, 성별 간의 안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그런 비율을 맞추다 보니 유권자가 되지 못하는 당원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같은 취지에서 국민들은 국민경선제 도입을 결단한 것인데, 당에서 다시 당원 비율을 높인 국민경선제를 하겠다는 수정안을 내 놓은 것은 '뜨거운 얼음' 같은 식이다. 국민경선제를 도입한다는 것 자체가 당원들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다. 당원들은 정권 창출을 위해 기득권 포기를 감수하고 국민경선제를 결단한 것인데 이제와 의원들이 역차별 운운하며 당원 투표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국민경선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면, 자체 모순이다.
프레시안: 논란 과정에서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를 만나 협의한 데 대해 곽성문 의원은 "편 가르기", "줄 세우기"라고 비난했다. 곽 의원 외에도 당 안팎에선 "대권주자들을 찾아가 협조를 구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는 않았다"는 비판이 만만찮다.
원희룡: (언성이 갑자기 높아지며) 줄 세우기라니, 말도 안 된다. 당직자들이 실무 선상에 있다는 프리미엄을 갖고 운영권을 악용해 당내 많은 의지가 담긴 혁신안을 왜곡했다. 몇몇이 회의 주재권을 이용해 몇 달간 공청회를 통해 마련해 놓은 혁신안을 예전으로 되돌리려는 상황이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못할망정, 누가 누구에게 줄 세운다고 손가락질 하냐. 곽 의원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얘기냐. 주객전도도 정도가 있지 그런 식으로 폄하한다고 해서 당을 혁신하려는 나의 의지가 훼손되지 않는다. 나는 개의치 않을 뿐 아니라 손가락질이 두렵지 않고 국민들이 나를 대신해 손가락질 해줄 것으로 믿는다.
***"박대표, '혁신안 갈등' 간과하면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 **
프레시안: 운영위에서 수정안을 만들어 낸 당직자에 대해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원희룡: 고진화 의원이 의총에서 한 말이다. 당내 논의구조를 왜곡하고 폐쇄적이고 퇴행적인 당 분위기를 조성해 분란을 일으키면서 문제가 되면 쉬쉬 하고 넘어가는 구조를 지적한 것이고 나 역시 동의한다. 한나라당 전체에 독이 퍼지기 전에 독소를 뽑아내야 한다.
프레시안: 어차피 혁신안이 통과되면 임명직 당직자들은 일괄 사퇴하게 된다. 앞으로 인선이 관건이 될 텐데….
원희룡: 혁신안은 틀일 뿐이다. 혁신의 알맹이는 인적 구성에서 또 정책적 내용으로 채워야 한다. 이번 논란을 겪으며 지도부는 혁신을 하려는 기류에 역행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번엔 제도적 혁신이었지만 정치적 알맹이를 채우는 과정에서도 혁신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당 운영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이번 논란에서 배운 교훈을 이행 과정에서 간과해선 안 된다.
프레시안: 서울시장 후보들이 제각각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원 의원도 계속 물망에 오르고 있고 소장파 앞에 서서 총대 메는 것이 소위 '자기 선거운동' 아니냐는 의심도 한다.
원희룡: 나는 몇 번 입장을 확실히 했다. 당이 큰 길로 나가는데 이를 추동할 역할이 나에게 있다. 당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 이런 데는 아무 지적도 안하면서 도지사 나가고 시장 나가면 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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