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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에서 아이 낳기 싫다" 왜?

[저출산고령화의 덫 2] 사회서비스 없는 성장모델의 파산

"솔직히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기 싫고 키울 자신도 없다. 경제적 여건도 그렇지만 한국은 교육, 의료, 환경등 모든 면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혼 2년차인 신석호(34) 씨는 딱 잘라 말했다. 이른바 '결혼퇴직'의 풍조가 사라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당연히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나아가 아이를 돌봐줄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에 없으면 선뜻 아이를 낳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경제가 그만큼 성장한 데서 연유한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가 아니라 둘이 벌어도 아이를 낳기가 두렵다면서 출산을 아예 포기하거나 무한정 미루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출산율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고, 출산율 하락은 다시 경제성장에 장애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성장이 고용을 늘리고 부분적이나마 복지를 개선했던 '한국형 경제모델'의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말하는 경제전문가들이 많다. 이제는 성장이 고용을 보장하지 못하고 고용이 빈곤을 해결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으며, 그런 가운데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고용-복지의 순환고리가 단절된 지점에 저출산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일자리가 불안한데 아이를 낳고 싶겠나**

한국형 경제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불균형'이고 이는 '양극화' 현상으로 이어진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보험연구센터 소장은 "제한된 자원을 소수 대기업에 집중시켜 수출을 통해 성장동력을 얻는 한국형 경제모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고 말한다. 그 결과 한국경제에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한국의 기업구성에는 허리가 없다. 다시 말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조금 넘는 51%가 30인 미만의 소기업에 취업하고 있고 23%는 300인 이상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데 비해 30~299인의 중간규모 기업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의 비율은 26%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고용기회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전체 취업인구 중 27%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프 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같은 우리나라의 자영업 종사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셋째, 서비스업이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에 집중돼 있는 반면 보건의료업과 보육서비스업 등은 아예 시장형성에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특히 40~50대 여성의 경우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에 몰려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그래프 1: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의 국가 간 비교>
<그래프2: 취업자 중 비임금노동자 비율의 국가 간 비교>
<표 1: 서비스업 구성의 국가 간 비교>

금 소장은 "외환위기 이후 새로 늘어난 일자리의 대부분은 임시 일용직이고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함께 고용의 안정성이 전반적으로 매우 취약해졌다"며 "자영업 부문도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의 대형화와 전문화 추세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50대 이상 영세상인들의 빈민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서비스의 부족으로 가정과 개인에 과부하**

특히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에 집중된 서비스업 부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행정, 보육, 보건의료, 복지 등의 '사회서비스'는 국민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그 규모가 확대되는 우등재인데도 한국에서는 시장형성이 실패해 결과적으로 턱없이 과소공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서비스의 발달이 부진함에 따른 부담이 고스란히 각 가정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보육, 간병, 교육 등의 부담이 각 개인에게 과부하로 걸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과부하가 출산의 포기 내지 무한정 유보로 이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프 3: OECD 회원국의 사회서비스업 취업자 비율>

미흡한 사회서비스가 각 가정과 개인에게 과부하를 초래하는 중간 메커니즘을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계에 봉착한 가족중심주의'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장 교수는 "지금의 세계화 시대에 가정의 경제위기는 가족의 희생으로 직결된다"며 "그럼에도 사회적 성공전략은 더욱 더 가족동원을 핵심으로 하게 되는 등 지금의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가족중심주의의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오히려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은 서구에서는 2~3세기에 걸쳐 전개된 사회변동을 불과 몇십 년만에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식민통치, 전쟁, 군부쿠데타, 산업화의 격랑을 헤쳐올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자신을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보호하는 일을 국가나 사회공동체에 믿고 맡길 수가 없었고, 그 대신 '가족'을 중심으로 뭉치는 태도를 익혔다는 것이다.

각종의 위기에 대처하고 새로운 기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흔히 드러나곤 하는 한국인들의 가족의존적, 가족중심적 생존방식은 재벌, 가족관계, 가족영농 등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인다. 개별 가족이 각각 하나의 단위주체가 되어 전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학력투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학력투쟁은 세계 최대의 사교육비 지출로 이어지면서 국가의 부족한 공교육 투자를 메꾸고 있다. 게다가 노인, 아동, 장애인에 대한 사회서비스의 책임도 국가가 아닌 각 가정이 대부분의 책임을 지다 보니, 가정과 각 개인에 누적된 과부하가 걸리게 됐다.

장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한국의 급격한 출산율 하락과 동시에 진행된 이혼율의 증가는 국가가 사회복지 책임을 방기함으로써 초래된 '가족 피로감'과 '누적된 개인 과부하'가 폭발한 결과"라며 "이는 이제 더 이상 국가가 사회복지의 책임을 각 가정에 떠맡길 수 없게 됐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저성장-양극화-저출산,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

장 교수의 진단을 받아들인다면 사회복지, 다시 말해 사회서비스의 확충이야말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다. 게다가 사회서비스의 확충은 한국사회에서 고용창출을 할 수 있는 미개척의 돌파구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국노동연구원 전병유 연구위원은 "저성장, 저출산, 양극화 시대에 새로운 양질의 고용기회는 그간 개발되지 않았던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창출되야 한다"며 "이는 정부의 재정적자를 유발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전략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우선 공공부문에서 질 좋은 사회서비스를 개발하고 그런 사회서비스 공급을 위한 인프라를 확충해나가기 시작하면 머지 않아 '공급의 수요 창출' 기능이 작동하게 되면서 사회서비스 부문의 선순환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펌프로 지하의 물을 끌어올릴 때 먼저 '마중물'을 들이붓고 나서 펌프질을 하는 데 비유하자면, 사회서비스의 경우에도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이 마중물을 들이붓는 역할을 먼저 적극적으로 해야만 민간부문의 사업자들도 이 부문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보육을 예로 들자면, 지금까지는 수요자가 민간 보육서비스의 질을 믿지 못하는 가운데 좀처럼 커지지 않는 좁은 시장 안에서 사업자들이 경쟁을 벌여 왔지만, 정부 등 공공부문이 질 좋은 보육 인프라를 적극 구축해 신뢰를 얻는다면 시장의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고 전 연구위원은 주장했다. 그렇게 된다면 민간 보육사업자들이 그 시장 안에서 활동할 공간이 넓어질 것이고, 결국은 고용창출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 연구위원은 "공공부문의 고용창출은 기존의 공공근로처럼 또 다른 '저임금의 온상'인 소득보전형 사업 시행이나 일시적 일자리 제공이 아닌 '질 좋은 일자리(Decent Job) 공급'이어야 한다"며 "특히 '가사노동의 사회화 및 시장화 전략'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고용창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가사노동의 사회화'란 '사회서비스의 확충'과 크게 다른 게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 정부는 과연 그런 역할을 할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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