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 말' 합의를 이끌어낸 6자회담이 9.19 공동선언을 채택하며 끝이 나고, 참가국들은 '행동 대 행동'을 규정할 세부전략 수립을 위해 다각도의 물밑접촉을 벌이고 있다. 국내외의 한반도 전문가들 역시 각국이 취해야 할 다양한 전략을 제시하며 이행협상에서 활용될 수 있는 논리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인 게오르기 블리체프 현대한국학연구소장 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북한연구부장은 지난 9월 29일 노틸러스 연구소의 웹사이트에 게재된 기고문을 통해 북미간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경수로 문제는 러시아형 경수로를 러시아 접경지대에 건설해주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서울대 원자력연구소의 강정민 박사를 비롯해 피터 헤이스, 데이비드 본 히펠, 가츠다 타다히로, 스즈키 다츠지로, 리차드 탠터, 스캇 브루스 등 7명 연구자가 최근 노틸러스 연구소에 보낸 공동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VVER 경수로기술 도입"을 권고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핵 전문가들 사이에 러시아형 경수로 건설 방안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은 게오르기 블리체프의 기고문 요약이다.
***"북한의 경수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모두에게 현명"**
북한이 경수로를 통한 핵발전에 집착하는 것은 주체사상 때문이다.
김일성이 핵발전소를 지어달라고 소련을 압박한 후 소련은 이 문제에 대해 미국보다 더 오랫동안 북한과 갈등했다. 왜 핵발전소가 필요할까. 다각도로 분석해보니 그 이유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원료를 이용해 외세로부터 독립된 에너지원을 갖겠다는 북한의 주체사상에 있었다. 핵발전소를 갖는 것은 생존을 위한 북한의 핵심 전략이었다.
2기의 경수로를 지어주겠다는 소련과 북한의 협정이 1985년에 체결됐다. 이 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러시아는 언제든지 사업을 재개하기를 원하고 있다.
공동선언 후 며칠만에 러시아의 원자력 에너지장관이 러시아는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줄 준비가 돼있다고 조급히 나선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에 러시아와의 관계가 회복된 이후 러시아가 이런 선언을 해주기를 바라왔다.
북한의 주장 이면에 있는 동기를 발견하는 것과,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모두에게 현명한 일이 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북한이 새로운 위기를 조성하거나 더 위태로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 후 결국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을 갖게 될 것이다.
***"북한은 결국 자신들의 요구를 쟁취할 것"**
미국의 핵 기술을 북한에 이전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미국, 프랑스, 캐나다, 영국, 일본식 핵 발전소 모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가능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식 모델뿐이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경수로를 건설할 재원이 없고, 북한이 안전에 문제가 있는 구식 러시아 모델을 원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나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러시아식 경수로 건설 방안을 지지한다.
북한과 러시아가 1985년에 체결한 협정은 법·행정적 절차가 이미 마무리됐고 디자인도 끝나 프로젝트 재개만 남았다. 이렇게 되면 공사와 비용 처리에 걸리는 시간이 짧아진다. 러시아는 석유 수출에서 나오는 수익을 경수로에 대한 미래지향적 투자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특히 다른 나라들이 경수로 건설에 대한 분담액을 내고 러시아의 신용을 국제적으로 보장해준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경수로 건설 참가국 출신 기업들이 건설 관련 계약을 맺는다면 러시아식 경수로 건설은 비용도 훨씬 덜 들 것이다. 또 이 프로젝트가 KEDO를 통해 행해진다면 미국은 훨씬 더 강한 정치적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식 경수로는 중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 현재 시공 중에 있다. 러시아 경수로는 값이 싸고 조작도 단순해 북한이 선호하고 있다. 북한의 배선 문제도 러시아식 배선 체계로 해결될 수 있고 러시아식 배선 체계는 한국의 시스템과도 연결이 가능해 러시아와 한국 간 협상이 이미 진행 중에 있다.
경수로를 러시아 접경지역에 건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유와 운영은 북한이 하고, 배선은 러시아 및 중국과 연결함으로써 남는 전기를 수출도 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IAEA의 안전조치, 검증, 사용후 연료 등에 관한 모든 문제가 풀린다. 미국은 경수로 건설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지고, 북한은 핵 무기 해체와 비확산 강제조항을 이행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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