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자영업 대출이 향후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서민금융규모를 확대하고, 전환대출과 신용회복과 같은 채무조정제도 등의 대책을 실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대책이 자영업 대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전문가들은 다중채무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에게는 현재보다 폭넓은 회생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장의 채무만 다소 줄여주는 수준을 넘어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침체된 내수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자영업이 대체로 내수 의존형 업종에 분포된 만큼, 자영업자 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내수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단 논리다.
은행권, 가계대출 조이자 자영업자 대출에 '올인'
자영업자 대출이 최근 빠르게 증가한 이유는 뭘까. 자영업 대출 증가는 지난해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따라 발생한 '풍선효과'라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을 조이자, 은행들이 대신 자영업자 대출로 방향을 틀었단 의미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원상회복, 신용카드사 등 제2 금융권 외형확대 억제, 그리고 서민금융 기반강화와 같은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런데 이 대책들이 추진되는 동안 자영업자 대출은 오히려 급격히 증가했다. 신한, 우리, 국민, 하나, 농협, 기업은행 등 6대 시중은행의 6월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35조2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조4000억 원이 늘었다. 같은 기간 총 대출금 잔액이 9조9000억 원 증가한 것에 비교해보면 신규대출의 64%가량이 자영업자들에게 이루어진 셈이다.
실제로 은행권에서는 "주택수요 대출도 줄고, 기업의 설비투자 수요도 크게 줄고 있어, 은행 입장에선 어느 대출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은 지난달 19일 '가계부채 동향 및 서민금융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며 "경쟁심화로 수익성이 저하되어 있는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은행권이 대출을 늘리고 있어 부실화가 우려 된다"고 밝혔다.
▲ 지난달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28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이명박대통령이 맹형규 행안부장관(가운데),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참석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동향 및 서민금융지원 강화 방안'을 보고했다. ⓒ연합뉴스 |
정부 "서민금융지원 확대하고 채무조정제도 등 활성화할 것"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 동향 및 서민금융지원 강화방안'을 살펴보면, 자영업자 부채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으로 크게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정부는 자영업자들에게 상권 정보, 교육, 컨설팅 등을 제공해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햇살론·미소금융·전환대출(바꿔드림론) 등과 같은 서민금융지원을 확대키로 했다. 마지막으로 다중채무자의 채무부담 상환을 덜어주기 위해 채무조정을 활성화할 계획도 세웠다. 다만 이 같은 정부 대책들은 당장의 대출이자를 약간 경감시켜주거나, 저리의 대출을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예컨대 한국자산공사에서 제공하는 전환대출(바꿔드림론)은 대부업체, 캐피탈사(社) 등에서 대출받은 연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은행의 저금리로(8.5~15.5%)로 바꿔주는 제도다. 하지만 이미 심각한 빚더미에 오른 영세자영업자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는 쉽지 않다. 갈아타려는 고금리 대출을 6개월 이상 연체 없이 갚고 있어야 하며 카드 연체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체 기간이 3개월 이하인 경우 대출이자를 감면해주거나, 만기를 연장해주는 제도도 있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제공하는 사전 채무조정제도(프리워크아웃)는 다중채무자가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도 홍보가 부족한 편이다. 신용회복위원회 윤여욱 서울중앙지부장은 "신용회복이라는 말이 아직 낯설다보니, 신용회복위원회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변제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파산 신청보다 신용회복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시민·사회 "회생제도 실효성 키우고, 자영업 부채관련 정보 면밀하게 수집해야"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내놨지만, 심각한 상황에 빠진 자영업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구제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부채 규모가 크고, 매출 급감 등의 이유로 채무상환능력이 현저히 낮은 경우라면, 대출금리를 낮춰주고 만기를 연장해주는 등의 조치가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파산 상태에 이른 다수의 자영업자들을 위해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제도를 더욱 폭넓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파산신청을 하고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선고를 받기까지 길게는 1년까지 소요된다. 이 동안 채무자는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의 가압류나 강제집행 등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파산조치를 통해 새 출발 기회를 갖기는 어려운 조건이 만들어진다.
참여연대와 민주통합당 박원석, 서영교, 최재천 의원은 지난달 19일 파산절차가 과정에서 채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청원했다. 개정안에는 파산 신청 후 법원이 최종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가압류, 강제집행, 채권추심 등의 행위를 금지·중지하는 중지명령제도를 두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경제정책팀 이기웅 간사는 "현재 파산과 개인회생제도 등은 지나치게 채권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간사는 또 "실효성 있는 회생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자영업 대출규모와 부실화 가능성, 주요한 파산 이유 등의 정보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법원과 공조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대기업 이익이 영세자영업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는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운용을 내수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들어 부쩍 심각해진 자영업자 문제는 거시적으로 내수 경기가 침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영업이 대체로 내수 의존형 사업인데, 내수경기가 침체되어 있으니 자영업자의 소득이 하락하고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기침체는 단순한 경기변동이 아니라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이라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라며 "이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는 수출대기업 이익이 영세자영업자에게도 전달될 수 있도록 공정거래 방안이 체계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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